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20

바라쿠다 2012. 9. 3. 10:03

새로 시작할 가게를 마냥 비워둘수도 없기에, 일단 가게문을 열기로 했다.

병원에서도 미진이의 실어증이 별 차도를 보이지 않자 통원치료를 권한 시점이다.

" 사장님, 축하드립니다.. "

술을 대 주는 주류 대리점 직원이, 냉장고와 술들을 들여놓고 개업축하 화분까지 내민다.

미진이의 몸이 정상이라면 주변에 개업식을 알리고, 친한 이웃들의 축하를 받으며 떠들석하게 잔치라도 열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단지, 가게를 오픈하는 날이라 미진이에게 이쁘게 꾸며진 인테리어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미희와, 홀에서 서빙을 맡은 아주머니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본 미진이의 얼굴이 밝아 보인다.

" 너무 욕심내지 마라, 가게문도 일찍 닫구.. "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기엔 무리가 있지 싶었다.      목이 좋은 장소인만큼 가게를 죽인다는 건물 주인의 성화에, 기본적인

매상만 올리라고 미희에게 당부를 했다.

" 그래도 불안해, 오빠도 없는데 내가 잘 할지 걱정도 되고.. "

" 그저 가게세나 낸다고 생각하고 맘을 편히 가져, 돈에 집착하지 말란 말이야.. "

돈을 밝히는건 욕심이 있기 때문이고, 그 욕심 때문에 왕왕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욕심만을 쫓다 보면 크나 큰 반탄력에 튕겨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 때는 후회를 해도 늦기 마련인 것이다. 

" 어때..   우리 가게 맘에 들어? "

내 허리춤에 꼭 붙어 다니는 미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마 자기 의사를 표하는 것만도 다행스럽다.

미희 정도면 무난하게 가게를 꾸려 나갈수 있을 것이다.      미진이나 내가 없더라도 미희라면 믿을만한 동생이다.

당분간은 집에서 미진이의 병 간호를 하며 지내야 한다.      미진이의 병이 호전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너무 오래 바람을 쐬면 부작용이 있을까 싶어 미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초희와 장모님하고 하루종일 같이 있기 때문인지 미진이의 상태가 좋아 보인다.      부쩍 미소짓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다.

같이 쇼파에 앉아서 TV를 보던 미진이가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가져오더니 발 끝에 내려 놓는다.     아마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신의 발을 씻어 줬던것이 좋았던 모양이다.

" 발 씻겨 달라고. 후후..    우리 마님이 재미들렸네.. "

차츰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듯 싶어 반가운 마음까지 든다.     기쁜 마음으로 미진이의 발을 씻겨주기

시작했다.

잛지 않은 시간동안 미진이의 발을 매만지다 보니 그녀의 발에 정감이 갈 정도다.

" 아이구 ~ 우리 김서방이 이렇게 잔 정이 많은 사위인줄 몰랐구먼..    초희 에미가 남편감은 잘 골랐네, 그려.. "

거실 바닥에 앉아 미진이의 발을 닦아주는 모습을 본 장모님이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 네, 초희 엄마 발이 이뻐서요. 후후..    자꾸 씻어주고 싶네요.. "

미진이의 발을 정성스레 닦고 있는데 핸폰이 울린다.

" 잠깐, 기다려..    전화부터 받고, 마저 씻어 줄께.. "

~ 저, 춘식입니다..    오늘 그 녀석이 흑석동에 나타 난다네요.. ~~

" 몇시에, 어디서.. "

~ 이따가 저녁에 흑석시장 순대국 집에서 만난답니다.. ~~

" 고마워, 이따 봄세.. "

이유도 모른채 린치를 당한지 한달이 넘은 시점이다.    이제야 실마리를 풀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 진다.

부리나케 영식이에게 전화를 했다.     박광호란 놈을 잡으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한다.

" 애들 좀 모아라, 똘똘한 놈으로 다섯명 정도.. "

~ 연락이 왔나 보네요.. ~~

" 그래..   차는 두대로 가자.. "

 

영식이와 통화를 끝내고도 흥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몸 상태를 살필 요량으로, 두팔을 허공으로

펼치고 옆구리를 구부려 봤다.      아픈곳은 없더라도, 아직까지 몸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어쩌지, 오빠가 볼일이 있는데..    나중에 또 씻어줄께.. "

미진이의 발을 씻던 세숫대야를 욕실에 가져다 놓고, 방으로 들어가 편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 오빠 ~ .. "

" ....................... "

현관에서 운동화를 꿰차다 뒤를 돌아다 봤다.      여지껏 벙어리로 지내던 미진이가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너무 뜻밖이라 잠시 내 귀를 의심했을 정도다.      다시 신발을 벗고는 쇼파에 앉아 있는 미진이의 앞으로 다가 갔다.

" 다시 한번 말해 봐..   지금 날 부른게 맞지? "

" 조심해, 오빠.. "

여지껏 내 동선을 주시하고 있던 미진이였기에, 춘식이나 영식이와의 통화 내용을 들었을 것이다.      더불어 지금 내가

어디로 가려는지 짐작하기에, 걱정을 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 미진아..   고맙다.. "

내심 미진이의 변화가 반가웠다.      겉으로 나타내진 않았지만, 미진이가 이 모양새가 된것이 내 잘못인양 내내 자책감을

떨칠수가 없었던 것이다.

" 오늘 좀 늦을지도 몰라..    늦더라도 전화 할테니까 니가 꼭 받어.. "

나를 쳐다보던 미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느낌인지는 몰라도 내 안위를 염려하는 미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혜영이의 차를 빌렸다.      아가씨들을 태우고 영업을 해야 하는 차량이긴 하지만, 기동력이 있어야 하기에 오늘만 참아

달라고 했다.

흑석동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들려 회 칼 하나를 샀다.      절실한 만큼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심정이었다.

어느덧 어둠이 짙어져 차의 전조등 스위치를 켰다.    

약속 장소인 흑석동 대학병원 앞이다.       입구를 지나치니 초등학교 앞에 영식이와 춘식이가 기다리고 있다.

" 어때, 그 놈이 맞어.. "

" 네, 형님..   광호놈이 틀림없습니다, 셋이서 같이 술을 마시던데.. "

춘식이가 순대국 집 밖에서 유리문 틈새로 확인을 했단다.

" 이렇게 하자, 세 놈 모두 묶어서 일산으로 가자..     사람들 눈이 있으니까, 순대국 집 안에서 묶어서 봉고차에 실어야 돼..

그럴려면 봉고차를 시장 입구에 바싹 붙여야지.. "

" 형님은 밖에 계세요, 애들하고 들어가서 일단 기를 죽여 놀테니.. "

기세가 등등한 영식이가 품속에서 쇠절구 방망이를 꺼내 든다.

" 아니다, 대신 춘식이가 밖에서 망을 좀 봐 주게..    어떤 놈들인지 내가 직접 봐야겠어.. "

" 그러시죠..   시장에 사람들이 많으니까 단단히 묶어서 빨리 끝내야 되지 싶네요.. "

" 그래야지, 영식이가 애들하고 앞장서라.. "

" 네, 형님..    얘들아, 가자.. "

몇놈은 나와 안면이 있는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 잘들 하겠지만 오늘 신세 좀 지자.. "

시장 입구에는 과일가게가 있고 안쪽으로는 음식점들이 두엇 있을뿐, 다행스럽게 반찬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보다는 

한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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