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18

바라쿠다 2012. 8. 29. 16:02

정신이 들고 보니 병원이다.      간호원의 연락을 받은 영식이 놈이 제일 먼저 병실을 찾아왔다.

" 도대체 누굽니까, 형님.. "

" 모르겠다, 나도.. "

" 형님이 깨어난게 하루 반나절만이유..    어떤 새끼들인지 감도 안 잡힌단거요? "

" 아직까진 확실히 몰라, 그것보다 미진이 소식이 더 급해.. "

" 미진씨도 형님이랑 똑같이 어제 아침에 발견됐어요, 지금 이 병원에 입원중이고.. "

일산쪽의 외진 창고앞에서 발견이 됐다고 한다.       연락을 받은 혜영이가 응급처치를 받은 미진이를 이곳으로 옮겼단다.

설 익은 예상이겠지만, 미진이를 납치까지 한 놈들의 의도란 나에게 앙심을 품었기 때문일게다.     어떤 놈인지 알아야 한다.

" 많이 다쳤드냐.. "

" 그런것 같아요..   형님처럼 응급실에 있으니까.. "

" 좀 데려다 줘야겠다.. "

온 몸에 통증이 있어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형편이지만, 미진이가 어느 정도인지 내 눈으로 직접 봐야만 했다.

" 형님 몸 상태로는 아직 안돼요, 그리고 미진씨가 말을 못 한다던데.. "

" 너, 언제부터 내 말에 토를 다는 버릇이 생겼냐..    그리고, 앞으로는 형수라고 불러.. "

간호원에게 고집을 부려 침대에 실린 채 미진이가 누워있는 옆자리로 갔다.      마침 혜영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침대의 머리맡을 세우고 고개를 돌려 보니, 미진이의 얼굴이 온통 퉁퉁 부은 상태로 눈을 감고 있다.

"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얼른 자리로 돌아가세요.. "

응급실의 당직인 듯한 젊은 의사가 다가왔다.      응급실 통로를 내 침대가 가로 막았으니 사람들 눈에 띄일만도 했다.

" 의사 양반, 우리 형님이 잠깐 보신다니까 그냥 계슈..    기분도 꿀꿀한데 성질 돋구지 말고.. "

" 안되는데.. "

" 무슨 일이야? "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의사가 소란스러운 가운데로 끼여 든다.

" 여기 이분들이 응급실 통로를 막아놔서.. "

" 두사람 모두 일반실로 옮겨, 응급처치는 다 됐으니까.. "

챠트를 펼쳐 보던 의사가 간호원들에게 지시를 하자, 병실 확인을 하느라 부산들을 떤다.

" 이왕이면 2인실로 하나 주시죠.. "

미진이를 곁에 두고 지켜주고 싶었다.      앞으로는 잠시라도 내 옆에서 떨어 뜨리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 그건 곤랍합니다, 비어있는 방이 없어요..   일단 따로따로 계시다가 빈 방이 나오면 그때 옮겨 드리죠.. "

" 영식아..   의사양반이 곤란하단다.. "

" 아 ~ 씨바..   지금 옮겨주란 말이야..   웬 말들이 그렇게 많어..   그냥 확 엎어 버릴까 보다, 씨바 ~ .. "

영식이 놈이 큰 소리로 거칠게 나가자, 응급실의 의사들과 간호원들이 어쩔줄을 모르고 눈치만 살피는 중이다.

 

2인실에 있던 환자 한사람을 다른 병실로 옮기고서야 2인실 하나를 차지할수 있었다.

" 영식이 너는 지금 송경장한테 연락 좀 해라.. "

" 형님, 일단 몸이나 추립시다..   깨진데가 한두군데가 아니라니까..   갈비뼈도 나갔지, 어깨뼈도 부러졌고, 그 뭣이냐.. 머리도

사진을 찍었는데 피가 뭉쳤다고 합디다.. "

" 너 자꾸 말 시킬래, 우 ~욱.. "

" 하여간에 성질머리하고는, 에잉 ~ .. "

나도 모르게 울컥이며 흥분을 하는 바람에, 가슴쪽에 통증이 일며 숨을 쉬기가 힘들다.      내 고집을 꺽지 못한 영식이가

핸폰을 한다고 병실을 나갔다.

" 미진이는 어디를 다쳤다디.. "

" 그 새끼들 가만히 놔두면 안돼, 오빠..   어 ~헝~ ~ "

영식이가 병실을 나가길 기다려 미진이의 안부를 묻자, 그제서야 설움이 북받치는지 혜영이가 소리내어 울고 있다.

평소에는 말투가 조신하던 혜영이의 입에서 욕설이 나왔을 때는, 미진이의 상태가 어떨른지 지레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 애가 떨어졌대, 오빠..     자궁을 뭘로 쑤셔 댔는지 그냥 찢어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헐어 버렸대, 허 ~엉~~ .. "

딴에는 소리를 죽여 운다고 하지만,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려 하는것이 더 서글퍼 보인다.

" 그랬구나..   내 애가 세상 구경도 못하고, 지 엄마 뱃속에서 죽었구나.. "

" 허 ~엉 ~~ .. "

한참을 흐느끼며 울고있는 혜영이를 바라만 봤다.      그나마 미진이와 내 대신 울어주는 혜영이가 고마워 보인다.

" 저녁에 장사는 하거라..   니 혼자 몸이 아니잖어, 아가씨들 생각도 해야지.. "

울음이 잦아들 때를 기다려 혜영이를 다독여야 했다.      더 울도록 놔두고 싶었지만 혜영이의 우는 모습을 지켜 보자니

나까지 울분이 터질것 같았기 때문이다.

" 다 시들해, 뭣 땜에 사나 싶기도 하고..    미진이가 정신을 차릴때까지 만이라도 옆에 있을래.. "

" 그냥 일이나 해, 여기는 미희가 있으면 되니까.. "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미진이도 진작 정신이 들었지만 충격 때문인지 도통 입을 열지 않는다.

의사 말로는 실어증에 걸렸는지도 모르니 지켜보자고 했다.      덩달아 나까지 우울한 기분에 빠져 있는 중이다.

초희와 초희 할머니가 다녀 갔을때가 생각난다.

미진이의 상태가 좋지않아 집에는 알리기 싫었지만, 이틀이나 지나 초희에게서 연락이 왔더랬다.

노심초사 하실 노인네와 초희를 혜영이에게 시켜 병원으로 데려오게 했던 것이다.

"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퍼? "

그때까지 미동도 않던 미진이가 초희를 본 순간 눈동자에 힘이 실리더니 초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에구 ~ 아가, 이게 무슨일이냐.. "

초희와 할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던 미진이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흐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중에도, 한참을 미진이의 병세를 살피던 할머니와 초희를 보는 내 가슴도 찢어지는것 같다.

" 김서방, 나 좀 보세.. "

할머니의 부름에 병실을 나서 복도끝에 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 실은, 미진이는 내 딸이 아닐세..   며느리야.. "

" ........................ "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동안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말을 아꼈던 이유를 알듯도 하다.

" 천애고아로 자란 미진이가 아들놈과 연을 맺어 부부가 됐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이 갑자기 세상을 등지게 됐어..  하늘이

무너지고 앞날이 깜깜했지만, 앞길이 구만리 같은 미진이를 편하게 놔주기 위해 몰래 집을 나왔지 뭔가.. "

" ........................ " 

" 저것이 근 일년을 찾아다닌 모양이야..    내가 신세지고 있던 복지관에 찾아 왔더라구..    울면서 애걸복걸을 하더구만, 나를

시어머니가 아닌 친정 엄마로 알고 살겠다구..    처음 만난 사람들은 저것이 불뚝 성질이 있다고 오해들을 많이 하더이..

하지만 미진이처럼 따뜻한 심성을 지닌 사람도 드물게야..     자네에게 부탁하나 함세.. "

" 말씀 하십시요.. "

" 이제 저것을 감싸줄 사람은 자네밖에 없는것 같으이..   세상에 누가있어 저 불쌍한 것을 감싸 주겠는가..   자네가 그리만 해

준다면 나도 편안하게 떠날수 있을것 같애.. "

자신이 걸림돌이 된다고, 홀로 떠나겠다는 말씀이다.     미진이가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 들였다면, 나한테는 둘도 없는

장모님이다.     그렇게 되도록 놔 둘수는 없는 일이다.

" 아닙니다, 어머니..  저도 죽을때까지 어머니를 장모님으로 알고 살겠습니다, 떠나신다는 말씀만 하지 마세요..  초희 에미도

그걸 바랄겁니다.. "

이제서야 미진이가 외로운 독거 노인들을 위해 마음을 쓰던게 이해가 된다.     어릴적부터 부모없이 혼자 살아왔을 그녀의

사무친 외로움도 조금은 알것 같다.

작은 행복을 꿈 꿨을 그녀에게 무자비 한 린치를 가한, 극악무도한 놈들을 그냥 놔 둘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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