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거야.. "
포장마차로 돌아와 전전긍긍하는 중인데 미희도 애가 타는지 조바심을 낸다.
" 경찰서에서 연락이 올거야, 일단 그 차의 주인을 찾아야 한대.. "
혜영이와 도우미 아가씨들도 영업을 접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진이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 미희야 ~ 가게문 닫고 술이라도 가져와라, 답답해 미치겠다.. "
벌써 시간이 새벽 두시가 넘어선다. 아무것도 할수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리자니 미칠 지경이다.
혜영이와 미희가 같이 앉아서 내가 술 마시는걸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고, 도우미 아가씨들도 건너편 테이블에 모여 낙담스런
표정으로 앉아있다. 분위기가 초상집과 진배없는 상황이다.
" 아가씨들도 요기라도 하게 해 줘.. "
" 어머 ~ 우리는 괜찮어요, 언니가 사고를 당했는데 밥이 넘어 갈리도 없고.. "
예전에 '모래시계' 사장에게 팬티를 뺏겼던 아가씨가 자신들은 신경쓰지 말라며 극구 사양하고 있다.
얼추 소주 한병을 비웠는데 송경장이 포장마차로 들어선다.
" 어떻게 됐어? "
" 그놈 이름이 박광호야, 나이는 39살이고.. "
느닷없이 자다가 깨어났을 송경장에게 고마운 마음도 전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미진이의 안위가 걱정이 될 뿐이다.
" 지금 어디 있냐구.. "
" 일단 진정 좀 하라니까.. 흥분하면 당신만 손해야.. "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진 모양이다. 소주병을 들어 술을 따라 주면서 나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
" 전과가 3개나 있는데, 흉악스런 놈은 아니고 잡범 수준이야.. "
" ...................... "
" 폭력하고 사기 전과가 있긴 한데, 그릇이 작어.. "
" 그 놈 집은 어디야.. "
" 사는곳은 흑석동이야.. 후임 하나를 근처에다 잠복시켰어.. "
" 주소 좀 불러 봐, 한번 가보게.. "
" 그냥 있으라니까, 괜히 들쑤셔 놓으면 아예 꼭꼭 숨을지도 몰라.. "
" 그럼, 이대로 마냥 기다리란 말이냐? "
" 그게 좋아, 그 놈 차가 구형 소나타더라.. 그 놈 얼굴이랑 차 넘버를 후배한테 줬으니까, 나타나기만 하면 곧바로 연락이
올거야.. "
" 혜영이가 그러는데 한 놈이 더 있대.. "
" 그 놈이야 모르지, 차적 조회를 해서 알아낸게 전부니까.. 힘든건 알지만 참고 기다려야 해.. "
" 그래요, 오빠.. 송경장님 말처럼 일단 기다려 보자구요, 괜히 그 놈이 알게되면 미진이한테 해꼬지 할수도 있고.. "
혜영이가 행여 미진이에게 나쁜일이라도 생길까 봐 전전긍긍이다.
"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납치를 해서 어쩌자는 건지..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에휴 ~ "
시간이 새벽 4시가 지나서 송경장과 도우미 아가씨들이 돌아가고, 혜영이와 미희만이 남았다.
" 오빠.. 저기.. "
" 왜, 할말이 있으면 해 봐.. "
혜영이가 무슨 얘기를 하려다가 주저하는 폼이다. 미진이 걱정에 다른건 돌아볼 틈이 없었다.
" 사실은.. 미진이가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걔 임신했어.. "
" ....................... "
" 어머 ~ 언니가 임신한 몸으로 납치가 됐단거야, 지금.. 어쩜 좋아.. "
" 처음엔 미진이도 고민이 많았나 봐.. 나중엔 애기를 낳겠다고 결심을 했고, 그래서 한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악착을
떨었는지도 몰라.. 지금 3개월째야.. "
마른하늘에 천둥과 벼락이 내리치고 있다. 온 세상이 암흑에 뒤덮이고, 땅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지옥불이 끓어오른다.
그저 내가 못난 탓이려니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고, 남들에게 모진 행동이나 말을 삼가면서 나름 내 기준에
맞춰 양심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터이다.
늦은 나이지만, 못나빠진 나같은 놈을 그나마 남자로 여겨주는 미진이를 만나 큰 욕심없이 작은 행복만을 꿈 꾸고자 했다.
이건 아니지 싶다. 전생에 무슨 크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겠지만, 하늘이 나에게 이런 형벌을 내릴수는 없다.
" 그 얘기를 왜 이제서야 하냐.. 미리 귀뜸이나 해 주지.. "
" 미안해, 오빠.. 미진이 년이 하도 신신당부를 하길래.. 이젠 일하지 말라고 내가 얼마나 말렸는데.. "
가슴 깊은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나를 좋아하는 여자 하나도 지켜주지 못하는 내가 못 마땅해 견딜수가 없다.
초조하게 미진이의 소식만을 기다리면서 술병이 하나둘 비워져 간다.
" 놔, 이 새끼야 ~ 이거 못 놔.. "
뒤에서 몸을 끌어안고 차안으로 밀쳐놓은 놈이 입을 틀어 막으려 한다. 노래방에서 갖은 설레발로 허풍을 치더니
타임비를 두배로 계산을 하겠다고 했다. 시간이 끝나자 지갑을 두고 왔다며 자신의 승용차까지 가자고 했다.
차문을 열고 옷을 꺼내는 걸 지켜보며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뒤에 있던 다른놈이 자신을 밀쳤던 것이다.
" 야 ~ 좀 조용하게 만들수 없냐.. "
" 이 년이 보통 앙칼져야지. 흐흐.. 퍼득거리는게 귀여워 죽겠네. 흐흐.. "
" 니들 내가 누군줄 알어, 좋은말로 할때 정신들 차려.. "
정신을 차리고자 했다. 어떡해서든지 일단은 이 위기를 벗어나고 싶어 이들을 달래고자 했다.
" 호 ~ 이 년 봐라.. 겁까지 주네, 니가 누군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흐흐.. 누굴 호군지 아네.. "
하지만 말이 통할것 같지가 않다. 자신의 허리를 두다리로 감아 제압을 한 놈의 한손이 젖가슴을 아플만치 쥐고는 희롱까지
한다.
남자의 거센 힘에 눌려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힘이 아쉽다. 문득 영훈이의 얼굴이 떠 오른다.
이럴때 그가 옆에 있었으면, 이런 놈쯤은 쉽게 혼줄을 내 줄수 있다는 희망만이 있을 뿐이다.
가슴을 희롱하던 놈의 손이 이곳저곳을 징그러운 벌레가 기어다니듯, 목이며 얼굴까지 더듬는다.
입 가까이 지나치던 녀석의 손을 있는 힘껏 깨물어 버렸다.
" 아이구 ~ 이런 씨팔.. "
잠깐이나마 녀석의 힘이 느슨해 지는 바람에 몸을 일으킬수 있었다. 언뜻 뒤쪽에 혜영이의 차가 쫓아오는게 보인다.
실낱같은 희망이 보인다. 홀로 내쳐진게 아니라 응원군이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가다 듬었다.
앞에는 한강대교 중간에 순경 두명이 검문을 하기 위해서인지 철로 된 구조물을 옮기는 중이다. 그네들에게 차안의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뒷문을 열어 봤지만 이미 잠겼는지 헛탕이다. 운전을 하는 녀석의 머리카락을 쥐고 뜯었다.
" 아야 ~ 이런 쌍년이.. "
졸지에 머리카락을 쥐어 뜯겨 아픔을 느꼈는지, 차가 굉음을 일으키며 차선을 두어번 바꾸며 이리저리 흔들린다.
순경들의 눈이 이쪽을 바라보는게 보인다. 그 순간 손을 물렸던 녀석의 주먹이 눈두덩이에 날아 들었다.
" 악 ~ "
불에 데인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느새 차가 순경들의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 이런 쪼다같은 자식아, 그 깟 기집애 하나를 못 당하냐.. "
" 이런 씨팔년이.. "
눈 두덩이에 이에 또 다시 턱에 아픔이 전해진다. 몇번의 주먹질이 얼굴 주위에 무차별적으로 꽂힌다.
정신을 차리고자 했지만, 아픔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고통에 주위의 사물이 아득해 져 간다.
" 그만 패, 임마.. 형님이 싫어할지도 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