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일요일이다.
절에 다니는 신자들이야 오래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일이겠지만, 주위에 있는 업주들은 봉사활동이란게 대부분 처음이다.
단란주점 최여사와 영식이는 두어번 경험이 있지만, '모래시계' 박연숙이나 영희는 처음인데도 얼굴이 밝아보인다.
미희와 욕쟁이 할머니 딸인 선미까지 따라 나섰고, 혜영이도 아가씨 하나와 동행을 했다.
얕으막한 산 중턱에 조성된 양로원은 나라에서 보조를 받기도 하지만, 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후원금으로
꾸려 나간다고 한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 회비도 한달에 3 만원으로 묶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씻겨주는 일은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신자들이 맡기로 했다.
대신 절에 다니는 신자들과 함께 섞여 이불도 빨고 독거노인들이 기거하는 방과 주변을 청소하는 일을 분담했다.
" 이보시게.. 잠깐 좀 앉지.. "
빗자루를 들고 건물 주변을 청소하고 있는데 땡중이 다가왔다.
" 주지가 좋긴 좋구만, 신자들은 땀까지 흘리면서 일하는데 누구는 뒷짐만 지고 농땡이를 치고 있으니.. "
산 밑에서부터 양로원 건물로 오르는 소로길에, 작은 벤치가 그림처럼 놓여져 있다.
" 어허 ~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중생이로세.. 그렇게 부러우면 자네도 중이 되던가.. "
" 됐어.. 얼굴도 두껍지 못한 놈이 어찌 땡중 노릇을 한다구, 그냥 생긴대로 살려네.. "
" 탐욕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그것도 자네 복이야.. 액땜을 가라고 했는데 왜 여지껏 못 간거야? "
" 며칠 지나서 가려고.. 가게 개업 하기전에는 다녀와야지.. "
모든 준비가 돼야 마음이 편하다면서, 가게 내부수리나 끝내고 다녀 오자던 미진이다.
" 그런일보다 급한건 없는 법이야, 빨리 다녀와.. "
" 그러지, 뭐.. 오늘 처음나온 사람들 얼굴이 밝아 보여 다행이야.. "
" 당연하지, 남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수 있다는 것도 큰 복이거든.. "
강요에 못이겨 억지로 봉사활동에 끌려 나왔다면 저렇듯 해맑은 모습은 아닐것이다. 미진이와 내가 앞장선 일이 괜스레
그네들에게 부담이 될수도 있어 조심스럽기도 했었다.
" 시간도 늦었는데 그만하지 그러니.. "
" 안 그래도 오늘까지만 할려구.. 내일부터는 개업준비도 해야 되고.. "
미진이가 도우미 생활을 하는게 싫은 혜영이다. 먹고 살기위해 그 숱한 모멸감을 참아내며,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긴
했지만 영훈이와 함께 새 삶을 살아보겠다는 미진이가 이 일을 계속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정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전과는 다르게 돈에 대해서 악착을 떨어대는 것도 맘에 들지가 않는다.
" 오빠한테 잘해 이년아, 보통 남자들은 제 마누라가 이러고 다니면 이혼하자고 드는데.. "
" 지가 돈이 없어 마누라를 고생 시키면서 무슨 자존심이래.. "
" 하여간에 지지배가 말 뽄새하고는.. "
봉고차 안에서 미진이랑 얘기를 나누는 중에 핸폰이 울린다.
" 네, 알았어요.. 아방궁에서 너를 찾네, 단골인가 봐.. "
" 나 혼자만.. "
" 그렇다네, 손님은 둘이라는데.. "
" 둘이면 팁도 더 나올지 모르겠다. 호호.. 돈 벌어야지.. "
" 돈 좀 그만 밝혀 이년아, 죽을때 싸들고 갈래? "
" 됐어, 이년아.. 다 알면서.. "
아방궁이란 간판이 걸린 노래방에 미진이를 내려주고, 다른 아가씨를 태우기 위해 핸들을 돌렸다.
" 그럼 내일까지만 장사하는거야? "
" 그래야지, 며칠있으면 개업인데.. "
새로이 넓은 가게에서 장사 할 생각을 하니 일손이 잡히질 않는다. 평일이라서 손님도 별로 없는 편이다.
" 일할 사람은 뽑았어? "
" 홀에서 서빙할 사람은 구했는데, 주방이 문제야.. 당분간 니가 고생 좀 해 줘야겠다.. "
" 언니가 열심히 배운다지만 걱정이야, 의욕만 가지고 되는것도 아니고.. "
미진이가 미희를 도와 주방을 꾸려 간다지만, 애초부터 기대를 하기가 어려운 그림이다. 음식 솜씨와는 담을 쌓은 여자가
하루 아침에 변할리는 없는 것이다.
" 나도 알어.. 당분간만 참어, 잘하는 사람으로 구해볼께.. "
" 나도 힘들어, 오빠.. 되도록 빨리 구해 줘.. "
미희와 한가하게 가게 일을 의논하는 중에 핸폰이 울린다. 평소에는 통화가 없었던 혜영이다.
~ 오빠, 큰일 났어.. 빨리 와.. ~~
무엇에 놀란듯 혜영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직감적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 무슨 일이냐.. "
~ 미진이가 납치됐어, 어쩜 좋아.. ~~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혜영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까지 혼이 반쯤 달아나는 기분이다.
" 그게 무슨 소리야, 납치라니.. "
~ 방금, 어떤 자식들이 미진이를 강제로 승용차에 밀어넣고 도망간단 말이야.. ~~
" 거기가 어디야? "
~ 노량진에서 용산쪽으로 가는 중이야, 빨리와.. 무서워 죽겠어.. ~~
" 알았어, 놓치지 마라.. "
부리나케 큰 길가로 뛰어나가 택시를 잡아야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빈 택시가 잡히질 않는다.
순식간에 별의 별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봉고차로 미진이를 쫒고있긴 하지만 혜영이의 운전 실력은 뻔한 것이다.
조급한 마음에 신호에 걸려 멈춰있던 택시의 문을 다짜고짜 열어 젖혔다.
" 저기, 미안한데 지금 사람이 납치가 됐걸랑요.. 미안한데 좀 내려 주실래요? "
택시 뒷좌석에 앉아있던 여자 손님이 황당한 표정으로 내리고, 택시기사도 놀랐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 빨리 갑시다, 그 차만 따라잡으면 백만원 드리리다.. 중앙선을 넘어도 좋고, 다른차를 박아도 내가 다 책임을 지겠수다..
그 차만 따라잡자구.. "
머리가 벗겨진 택시기사가 사정이 급박한걸 알아 차렸는지, 바퀴에 연기가 날 정도로 악셀을 밟아댄다.
" 그래서 놓쳤단 말이야? "
" 그럼, 어떡해.. 좌회전이 안되는데서 차를 꺽는걸.. 따라 갈려고 했는데, 차들은 계속 밀려오고.. "
한강다리를 지나자마자 갑자기 핸들을 꺽어 불법 좌회전을 하더란다. 똑같이 좌회전을 하려고 했는데 직진 차량들이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미진이를 태운차가 사라지는걸 멍하니 눈뜨고 지켜 봐야만 했단다.
어찌해야 할지 머리속이 뒤죽박죽이다. 졸지에 황당한 일을 당하고 보니 그저 애만 탈뿐,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 오빠.. 여기 차 넘버.. "
혜영이가 넘겨준 쪽지에 미진이를 납치해 간 차량 번호판이 적혀있다.
급한 김에 송경장의 얼굴이 떠 오른다. 핸폰을 열어 송경장의 연락처를 검색하는데 자꾸 오타가 난다.
~ 웬일이야, 이 밤중에.. ~~
" 큰일났어, 미진이가 납치됐어.. 빨리 차량 조회 좀 해 봐.. "
~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다시 불러 봐.. 침착해야지.. ~~
" 지금 내가 침착하게 됐냐? 빨리 좀 서둘러.. 어느 놈인지 잡히기만 하면 죽여 버릴거야.. "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목소리가 커졌나 보다. 곁에서 발을 동동거리던 혜영이와 아가씨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차량들이 쉬임없이 왕래하는 한강대교 북단 중앙선에서, 미진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서 있을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