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13

바라쿠다 2012. 8. 15. 12:37

포장마차로 같이 출근을 해서는 안주 만드는걸 배운답시고 몇시간씩 주방일을 거들었다.

처음엔 달가워 하지 않던 미희와도, 며칠이 지나자 격의없이 웃으며 재잘대기도 한다.

속이 없는 미진이의 장점일수도 있다.       쓸데없는 말을 툭툭 던지기도 하지만, 나쁜 뜻이 아니란걸 미희가 알고부터다.

땡중인 청송스님과 만나기로 한 날이다.

몸을 깨끗이 하겠다고 목욕탕까지 다녀온 미진이와 산에 올랐다.

얕으막한 산길을 올라 절에 들어섰다.      모든 법당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자그마한 절이다.

절을 지키는 부처님의 형상은 한없이 자애로왔으나, 산을 지킨다는 산신각의 신령님 형상은 섬뜩할 정도로 무서워 보인다.

절에서 허드렛 일을 도와 주신다는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땡중이 기거하는 사무실로 갔다.

" 어서 오시게..  시원한 차 좀 내 오세요.. "

작은 교탁 앞에 앉아 책을 보고있던 땡중이 반긴다.

" 호오 ~ 땡중께서 공부도 하시네.후후.. "

" 자꾸 들여다 봐야 땡중 노릇도 할수 있는거야.. "

" 오빠는..  땡중이 뭐야, 주지 스님한테..   남들이 들으면 어쩔려구.. "

미진이 눈에는 제법 고명한 스님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결혼하는 길일까지 잡아주고, 액운이 낀 것도 없애 준다니

그럴만도 하지 싶다.

" 그냥 놔 두시게나,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건달 눈에는 건달만 보이는 법이지.후후.. "

" 이런 땡중 같으니라구..   말로는 못 당한다니까.. "

" 또..  오빠, 자꾸 그럴래? "

눈까지 치켜뜨고 토라진 듯 목소리마저 갈라진다.       아무래도 단단히 땡중에게 씌운듯 하다.

" 아이구 ~ 어느새 우리 미진이까지 한편이 됐을꼬.. "

" 이런..  자네를 구원해 준 여시주한테 질투는..    하늘이 내린 복이야, 감사하고 살어.. "

" 됐다, 됐어..  빨리 날짜나 알려 줘.. "

" 추석이 지난 엿새후야, 음력 팔월 스무하루..    그날을 놓치면 반년이나 더 기다려야 해.. "

" 그날이 그렇게나 좋단 말이죠.. "

목소리에 생기가 도는 미진이다.      하여간에 여자들은 손에 떡을 쥐지도 않았는데, 맹신을 하는 경우가 많은 동물이다.

" 한가지 더, 둘 사이에 애가 생기면 반드시 낳아야 해..   부처님이 점지하신 애야, 건달 가문을 빛내 줄 생명이란 말이지.. "

" 이 나이에 무슨..   초희도 있는데.. "

" ....................... "

무엇을 생각하는지 미진이의 얼굴이 심각하다.       어찌됐든 땡중이 나서서 미진이를 다독여 주는건 고마운 일이다.

" 그리고 액땜도 빨리 해 치워..   내가 해주고 싶지만, 불자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이거든.. "

" 그럼 누가.. "

" 속리산 보은에 신통한 친구가 있어, 내가 미리 얘기를 해 뒀으니까 찾아만 가면 다 알아서 해 줄거야.. "

" 네, 그럴께요.. "

완전히 땡중을 신봉하는 눈치다.       미진이 얼굴에 장난스런 표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 가능하면 딸아이도 같이 데려가..   그 친구가 아이 장래도 빌어 준다니까.. "

 

" 오빠, 날 잡으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호호.. "

'모래시계' 박연숙이다.      소문이란 무서운 법이다.      후배 영식이에게 알려준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온 동네에

소문이 퍼진것이다.

" 축하는 감사하게 받지, 바쁠테니까 일부러 올건 없구.. "

" 섭하게 무슨 소리를..    오빠 결혼식인데 무슨일이 있어도 가야죠.. "

" 영식이 그 녀석도, 참..    식구들만 모일려고 했는데..     그런데 무슨일로.. "

굳이 만나고 싶다는 바람에 영희와 그 남편, 박연숙까지 넷이서 마주한 자리다.

" 처음 뵙겠습니다.. "

" 아, 네..  반가워요.. "

영희 남편이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한다.      첫 인상이 순박해 보여 정감이 간다.

" 집사람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늦게나마 이렇게 만나뵐수 있어 다행이구요..   정말 감사합니다.. "

" 그게 언젯적 얘긴데..   별거 아니에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게고.. "

이미 20 년도 더 지난 얘기다.     영희에게 도움을 주긴 했지만, 이제와서 다시 꺼낸다는 것이 쑥스럽기만 하다.

"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해요,  만약 그 사람들한테 끌려갔으면. 에휴 ~ "

비싼 이자가 붙는 돈을 갚지 못해 술집으로 팔려갈 뻔 했던 영희다.     다행히 근처를 지나던 내가 그녀를 빼 냈던 것이다.

" 그래서 뵙자고 한겁니다, 그때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애 엄마도 못 만날뻔 했죠.. "

" 네, 이이가 오빠를 뵙고 고마움을 갚아야 한다고..    나보다 이이가 더 우기는 바람에.. "

" 됐다니까 그러네, 영희가 잘 사는걸 보니까 기분은 좋구만..   앞으로도 행복하게만 살어.. "

옛날 일이지만 뿌듯한 보람은 있다.        큰일도 아닌지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고마움을 표한다니 흐뭇하긴 하다.

" 연숙씨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공짜는 싫어하실거라구.. "

" 맞아요, 그러니까 신경쓰지 마시고 영희한테나 잘 해주세요..    다행이구만, 좋은 남편을 만나서.. "

" 그렇지만 우리는 맘이 불편하네요, 은혜를 입었는데 그냥 지나치는건 도리가 아닌듯 싶어서..     그러지 말고 우리들 맘이

편하게끔 제 성의를 받아 주시죠.. "

" 허허 ~ 사람 참..     그래, 그러면 TV나 하나 사 주시죠..   마침 거실에 TV가 없는데.. "

신세를 갚겠다는 영희 남편의 성의를 자꾸 내치는 것도 고역이다.      마침 미진이 집에 있는 TV가 낡아서, 초희 할머니가

좋아하는 연속극을 볼때 화면이 겹쳐 보이던 참이다.      그 정도면 받아도 무난하지 싶다.

" 연숙씨가 그러더군요, 가게를 새로 얻으려고 하신다고..     다행히 제가 돈을 좀 벌었어요, 가게를 하나 내 드리고

싶습니다.. "

" 그건 아니지..    그렇게 큰 돈은 받을수 없어요..     내가 동생분 마음은 받은걸로 칠테니까 그 말은 없던걸로 합시다.. "

새로 가게를 얻으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5천만원 이상은 가져야 할 것이다.      고맙다는 성의를 표시하는 수준이면

못 이기는척 받으려 했지만 이건 좀 심하지 싶다.      너무 과한 액수를 내미는 영희 남편땜에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

" 형님한테는 큰 돈이지만 저한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건방지게 생각하지 마시고 제 말대로 해 주시죠.. "

" 그래요, 오빠..    영희 남편 부자예요, 그냥 받으세요.호호.. "

'모래시계' 박연숙까지 거들고 나선다.      영희 남편의 선물이 고맙기는 하지만 너무 부담스럽다.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

 

신이 난건 미진이다.      졸지에 원하던 가게가 공짜로 생기는 마당이다.

가게 자리를 알아 보겠다고 어느틈엔가 영희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며칠을 같이 붙어다니는 중이다.

" 자기야 ~ 가게 계약했다..   영희 언니도 마음에 든대.호호.. "

초저녁 포장마차에서 안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미진이와 영희가 들어선다.

" 그래, 어딘데.. "

" 오빠도 알걸, 왜 큰 길가에 있는 갈비집 있잖어.. "

" 뭐야, 거긴 평수가 커서 권리금도 꽤 달라고 할텐데.. "

" 응, 좀 비싸더라..   보증금 5천에 권리금이 1억이야.. "

" 야, 임마..  그렇게 큰 포장마차가 어딨어..   아무리 공짜로 얻는거라도 그래선 안되지.. "

" 나도 좀 그렇긴 했는데, 언니가 그걸로 하자고 해서.. "

자기 딴에도 양심이 찔리는지 말끝을 흐리는 미진이다.     지금의 포장마차와는 비할바가 못될 정도로 평수가 큰 곳이다.

" 그냥 그걸로 해요, 오빠..   오빠가 날 도와준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녜요.. "

" 안돼..   웬만해야지, 그렇게 넙죽 받을순 없어..    얼른 가서 계약한거 물르자.. "

" 해약하면 계약금 못 받는대..    언니가 계약금을 3천이나 줬어, 자기가 반대할지도 모른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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