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사냥

남자사냥 53

바라쿠다 2012. 7. 2. 21:37

제주도의 밤바람이 너무나도 시원하다.     막힌 가슴을 씻어주는 기분이다.

작정을 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 틈에 섞여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행복에 겨워 들떠 있는 신혼부부들의 모습이 부러워, 무작정 그들을 쫒아 제주도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시꺼먼 밤바다의 파도는, 세상의 모든것을 덮어 버릴듯이 맹렬하게 짓쳐 들어왔다가 저 멀리로 쓸려가곤 한다.

거친 파도마저 아늑해 보인다.     저 파도에 몸을 던져 딴 세상으로 떠나고 싶다.

잘못 꼬여버린 인생을 바꿀만한 새로운 세상이, 파도 너머에 있을것만 같은 착각마저 든다.

얼마나 오래 바람을 맞았는지 쌀쌀한 기운을 느낀 소연이의 눈에, 멀치감치 바닷가 회집의 불빛이 따뜻해 보인다.

두어곳의 테이블을 제외하곤, 넓은 회집이 한산한 편이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간단한 회와 소주를 시켰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과 아들녀석이 떠 오르는데, 시아버지의 허탈해 하는 모습이 겹쳐 져 심란스럽다. 

" 저.. 잠시 앉아도 될런지요.. "

복잡한 심경으로 소주잔을 바라보던 소연이 앞에 낯선 군인이 다가와 있다.

" ..저를.. 아시나요.. "

" 그게 아니라..  친구들이랑 내기를 해서.. "

뒤를 돌아보는 그의 눈길을 쫒아보니, 역시 같은 제복을 입은 군인 둘이 이쪽을 쳐다보는 중이다.

앞을 가로막은 그의 모습을 다시 한번 훓어봤다.     대위 계급장이 말해주듯 인생의 시련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고

상의를 팔뚝에 접어 올려, 근육 진 살갗이 검게 그을려 건강해 보인다.

"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기를 했단 말이네요.. "

" 죄송합니다, 그냥.. "

잛은 머리가 강인해 보이지만, 수줍어 머뭇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

" 호호.. 무슨 내기인지 궁금하네.. "

" 같이 앉아서 소주 한병을 비우면 저 친구들이 술값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

" 그럼, 내 술값은.호호.. "

" 그야, 당연하죠..  저라도 책임지겠습니다.. "

그때까지도 엉거주춤 서있는 모습이 남들 눈에 어색해 보이지 싶다.

" 앉으세요.. "

 

" 휴가를 나오셨나 보죠.. "

" 아닙니다, 여기 제주도에서 근무중입니다.. "

가슴에 빨간색 명찰이 붙어있다.     이름표를 본 소연이는 쓴 웃음을 질수 밖에 없었다.     첫사랑인 철수는 이씨지만

앞에 있는 군인은 강씨로 성만 다를뿐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다.

" 철수씨는.. 아, 미안해요.. 장교분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 "

"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

군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말투에 절도가 있는만큼 풋풋해 보인다.

" 나보다는 어려 보이는데..  올해 몇살이죠.. "

" 네, 32살입니다.. "

32살이면 미진이 언니와 결혼한 영호씨랑 동갑이다.     자신보다 5살이나 어린 것이다.

" 한참 동생이네.호호..   아무리 여자가 궁해도 그렇지, 나같은 아줌마를 타켓으로 삼았을꼬.호호.. "

" 꼭 꼬실려고 했던건 아닙니다, 그냥 동료들과 한잔 하다가 치기가 생겼다고 할까..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차가

많아 보이지도 않은데, 굳이 거리를 두시네요.. "

소주잔이 빌때마다 술병을 두손으로 받쳐 술을 따라준다.     예의가 있는 젊은이 같아 믿음이 간다.

" 어쨋든 내가 한참 누나인건 맞아요, 거기다가 유부녀고.호호.. "

잠시나마 집 생각을 떨칠만큼 위로가 된다.      사면초가인 지금, 작은 위안이라도 얻고 싶다.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쁜 마음은 없습니다, 그 점만은 믿으셔도 됩니다..   대한민국이 보증하는 해병대 장교입니다. "

" 보증까지 안해도 믿어줄께요, 나이많은 누나한테 들이대는 못난이는 아닐테니까.. "

"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주도엔 어쩐일로 오셨는지.. "

" 글쎄요, 심심해서 놀러 왔다고나 할까.. "

잠깐이지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기에, 슬며시 호기심 섞인 장난끼가 발동한다.

" 할수만 있다면 재밌게 해드리고 싶군요.. "

" 어떻게 재밌게 해줄건지 몹시 기대가 되네요.호호.. "

어느덧 소주 두병이 비워진다.      처음 본 젊은이를 상대로 우울한 기분이나마 떨쳐내고 싶었다.

" 누님의 의사에 따라야겠죠, 나이트에 가셔도 좋고, 스트레스를 풀러 노래방에 가든지 원하시는 대로.후후.. "

" 나를 위해 봉사씩이나 하려는 이유를 묻는다면.. "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려는 그가 살갑기까지 하다.       편안하게 얘기를 나눠도 좋을듯 싶다.

" 어차피 내일까지 비번인데 서울에 다녀오긴 틀렸고, 대신 이쁜 누님의 미소를 보는걸로 만족하겠습니다... "

" 제법 여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재주도 있으시네.. "

" 진심입니다, 절대로 바람둥이 체질은 아니죠.. "

" 호 ~  그럼, 한번 믿어 볼까..   근데 어쩌나, 난 번잡한건 싫은데.. "

" 친구들을 보내고 오겠습니다.. "

말귀를 알아 듣는걸 보면 총명한 젊은이다.      어차피 호텔방에 홀로 있어봐야 잠도 오지 않을듯 싶다.

 

동료들을 보내고 온 강철수가 맞은편에 앉는다.

" 한가지 약속부터 해 줘야겠는데.. "

" .............. "

" 나쁜 사람이 아니란건 믿지만, 내 허락없이 신체 접촉을 한다면 화낼거예요.. "

가뜩이나 온전한 정신을 추스리기도 힘든 지금, 남자의 무례한 행동까지 겪는다면 더 할수없이 비참해 질것 같아서다.

" 제 부모님을 걸고 맹세하죠..    절대 누님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는다고.. "

" 그 말 믿죠,,   결혼은.. "

" 작년에 했습니다..    이곳으로 발령 받고는 못 만났으니까 벌써 반년이 지났네요.. "

" 저런, 한참 신혼일텐데..   와이프가 힘들겠네.. "

" 미안할 뿐이죠, 군인의 아내가 된 와이프한테는.. "

" 와이프한테 잘 할 사람으로 보여요..  또 잘해야 될게고.. "

남편에게는 사랑도 없었고 기대도 없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부부란 허울만을 안고 살았다.

" 태평한 척 하시네요, 누님을 처음 봤을때 쓸쓸해 보였어요..   친구들을 이용했죠, 저 여자를 웃게 만들고 싶다고.. "

처음 만난 나이어린 젊은이에게 허물을 들켜 버렸다.      기본적으로 감싸고 있던 체면까지 발가 벗겨진 느낌이다.

" 철수씨가 잘못 봤겠지, 인생이란게 마냥 좋은날만 있을라구.. "

" 죄송한 얘기지만 안아주지 않으면 쓰러질것 같더라구요.. "

남들 눈에 보여질만큼 빈 껍데기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종일 거울을 들여다 본 기억이 없다.

" 바람이 쐬고 싶은데.. "

" 나가시죠, 술과 안주도 필요하겠죠.. "

회집 주인을 불러 비닐봉투에 남은 술과 안주를 담게 한다.      시원한 밤바람이 술로 달궈 진 뺨을 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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