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사냥

남자사냥 51

바라쿠다 2012. 6. 20. 18:07

"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

욕실에 있는 남편에게 얘기를 하고서, 현관문을 나서는 시아버지를 따라 나설수 밖에 없었다.

아파트에서 찻길 방향쪽에 있는 작은공원 벤치에 시아버지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앉았다.

한참동안을 먼 곳에 시선을 두고 말이 없는 시아버지다.      괜스레 가슴이 콩닥거린다.

" 내 생전에 이런 말을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구나, 가장 아끼고 이뻐하던 며느리가 .. "

땅이 꺼질듯이 한숨까지 내 뱉는다.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뿐, 어찌 대처를 할지도 막막하다. 

" 조금전에 받은 사진이야, 너도 직접 보는게 좋을듯 싶다.. "

여러장의 사진이 전송돼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택시를 타는 사진을 시작으로, 압구정 백화점 주차장에서

명근이와 갑용이를 만나 반갑게 포옹을 하고, 경춘가도를 달리는 차량의 번호판과 청평 유원지의 가든에서 내리는 모습,

두 애인의 사이에서 팔짱을 끼고 방갈로로 들어가는 사진, 심지어 여의도에서 차를 내려 남편과 만나는 순간까지, 오늘

하루의 일정이 시아버지의 핸폰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방갈로 안에서 두 애인의 품에 안겨 쾌락에 빠져있는 사진만이 없는것이다. 

일부러 누락을 시킨건지, 아니면 창 밖이 한강변이라 촬영하기가 용이하지 못했는지는 알수없는 일이다.

" 여지껏 널 믿고 살았구나, 주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을때도 설마했었지.. "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는것 말고는 할일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들어야 했다.

" 아직은 나밖에 모른다, 나도 어찌해야 할지 쉽게 움직여지지가 않는구나..  며칠 더 생각해 봐야겠다.. "

흐린 가로등 밑을 휘적휘적 지나치는 시어버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 무슨 일이야, 음악회라도 다녀오라고 또 용돈 주신거야.. "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있던 남편이 시아버지한테 불려간게 궁금한 모양이다.

" 네, 식사나 마저 해요.. "

머리가 혼란스러워 뭐가뭔지 정리가 되질 않는다.       남편이 잠자리에 들어야 생각을 정리할수 있지 싶다.

" 오랜만에 와이프랑 같이 누워 볼까나.후후.. "

" 오늘은 그냥 자요, 몸이 좀 안좋아.. "

서운해 하는 남편이 서재로 들어가고도 한참을 식탁에 앉아 생각에 젖었다.

꼬여버린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방에 불을 끈채로 침대에서 뒤척거리다 하얗게 밥을 지새운 소연이다.

 

오전에 쇼윈도에 있는 마네킨의 옷을 갈아 입히던 연주는 손님이 가게로 들어서는 인기척에 허리를 폈다.

" 어서 오세요.. "

본인의 또래로 보이는 두 여자가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다.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들의 표정에 독기까지 서려

있는듯 하다.

" 당신이 우리 양반을 꾀어내는 여자로구만.. "

사뭇 도전적인 말투에서 그녀들이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

" 꼭 여시같이 생긴게 남자 꽤나 후리게 생겼네..   언니, 저런년은 말로 해서는 안돼.. "

덩치가 큰 여자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나서는, 아무런 생각도 할수 없을만큼 때리는대로 맞아야 했고, 가게 바닥에

내 동댕이 쳐 진채로, 그녀들의 발길질도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또 다시 박승우를 만나면 그냥 두지 않겠다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 붓던 그녀들이 가게를 나간 후에도, 몸을

웅크린채 한참의 시간이 흐른후에야 정신을 차릴수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소란스런 소리에 가게안을 기웃거리던 이웃들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에 설치된 햇빛 가리개를 내려 그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전신 거울을 보니 자신의 모습이 말이 아니다. 

머리는 죄다 뜯겨 봉두난발의 형상이고, 얼굴이며 목과 팔뚝에 할퀸 자국이 가히 목불인견이다.

너무도 어이없게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에, 더군다나 아무런 대처도 할수 없는것이 기가 막힐 뿐이다.

가게문을 안으로 잠그고는 저녁 늦게까지 꼼짝도 못한채, 집을 나온후 처음으로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을 했다.

 

" 왜 이렇게 늦어지는거죠..  뭐가 잘못됐나.. "

산부인과 분만실 앞에서 사위인 영호가 서성이고 있다.     출산 예정일이 이틀이나 남았는데 미진이가 갑자기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병원으로 왔다고 한다.     담당 의사가 애기의 성격이 급한지 일찍 나올려고

한다며 분만실에 들어간지 4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 김서방, 괜찮을거야..  의사가 아무 이상 없다고 했잖어.. "

" 그래, 영호야..   아무일도 없을테니까 그만 자리에 좀 앉아, 너 땜에 더 정신이 사납구나.. "

연락을 받은 후 병원에 도착을 했더니 먼거리의 사돈이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 미진이가 힘들면 어떡하죠, 요즘 잘 먹지도 못했는데..   이 놈의 자식이 왜 엄마를 힘들게 하나.. "

" 이보게, 김서방..  아빠가 되는게 그렇게 쉬울줄 알았나.호호.. "

" 괜히 애기를 낳아 달라고 했나봐요, 이럴줄 알았으면 조르지 말걸.. "

" 애기를 낳는게 얼마나 힘든지를 직접 봤으니, 앞으로 집사람한테 더 잘 하거라.. "

안절부절 못하는 사위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을때, 분만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온다.

" 장미진씨 보호자분 ~ "

" 네에 ~ "

산모의 가족을 찾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는 영호다.

" 축하합니다, 아들입니다.. "

" 산모는요, 산모는 어때요.. "

" 걱정 마세요, 산모도 이상없어요.호호.. "

허둥대는 영호를 쳐다보는 간호사는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창을 통해 애기와 첫 만남을 가진 식구들이 회복실로 왔을때, 마침 미진이도 실려온 침대에서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내려진다.

" 힘들었지..  미안해, 자기야.. "

" 수고했구나, 애기가 영호를 쏙 빼 닮았더라.. "

사위와 사돈이 미진이 곁에 둘러앉아 딸아이의 손을 쥐고 안타깝게 바라본다.

" 집에 계시지 뭐하러 오셨어요.. "

" 무슨 소리야, 우리 며느리가 산고를 겪고 있는데 집에서 마음이 편하겠니.. "

땀에 젖은 미진이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고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는 사위의 얼굴이 미진이 못지않게 수척해 보인다.

귀한 손을 얻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미진이를 아껴주는 사위와 사돈의 정성이 극진하다.

" 하루쯤 더 있다가 산후 조리원으로 옮겨야지.. "

예전이야 집에서 산받이를 하느라 식구들이 덩달아 고생을 한것에 비하면 더 없이 편해진 세상이다.

" 그냥 집으로 갈래요, 회사에서 출산휴가도 얻었으니까 제가 미진씨 옆에 있을겁니다.. "

" 자네 맘은 알겠지만 산모를 돌본다는게 쉬운일이 아닐세..   그냥 조리원으로 가는게 좋을듯 싶으이.. "

" 아뇨, 미진씨가 없으면 제가 더 불안해요..  집에서 돌보는게 맘이 편할거예요.. "

와이프를 위한다는 맘이야 기특하지만, 살림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사위한테 맡길일은 아닌것이다.

" 엄마, 그냥 놔둬요..   이사람 고집은 아무도 못 말리니까..   여지껏도 그랬듯이 영호씨가 더 잘할지도 몰라.. "

" 지연이도 있는데..   도대체 왜 힘든일을 하겠다는건지.. "

" 사돈..  그냥 한번 맡겨보죠, 떨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모양인데.호호..  도움이 필요하면 저도 와서 도울테니까.. "

" 글쎄, 아무리 그래도.. "

 

'남자사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사냥 53  (0) 2012.07.02
남자사냥 52  (0) 2012.06.30
남자사냥 50  (0) 2012.06.14
남자사냥 49  (0) 2012.06.08
남자사냥 48  (0) 2012.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