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사냥

남자사냥 52

바라쿠다 2012. 6. 30. 15:22

" 당분간 친정에 가 있을께요.. "

" 갑자기 친정엔 왜.. "

" 어머니가 편찮은가 봐, 식사는 위층에서 해결해요.. "

더 이상 집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틀밤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새웠다.

" 많이 아프신가, 나도 한번 가봐야겠네.. "

" 그렇게 많이 아프신건 아니니까 오지 말고 회사일이나 잘 해요.. "

남편이 회사로 출근을 한 후에 간단하게 옷가방을 꾸린 소연이는 집을 나섰다.

마땅히 갈만한 곳이 있어 나온건 아니다.     그저 집안에 있다는 것이 숨이 막혀 싫었을 뿐이다.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한참을 달리던 지하철이 남편의 회사가 있는 여의도를 지난다.

남편과 처음 대면했던 날이 떠 오른다.      교회 근처에 있던 스테이크 전문 체인점이었다.

" 한번 만나 보거라, 그쪽 집에서 너를 이쁘게 본 모양이더라.. "

엄마한테 등을 떠 밀려 나간 자리에서 오히려 남편이 더 수줍어 했다.      또래 남자들의 끈적거리는 시선을 당연하게

받던 시절이었기에 자신이 넘쳤다.      남편이 자신의 미모에 반해 어쩔줄 모르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 네 아빠의 사업을 도와 주신다는구나.. "

한번의 만남 뒤에 집에 돌아온 소연이에게, 남편 집안의 재력을 자랑하듯 늘어놓는 부모의 강압에 못이겨 결혼이란걸

하기에 이른 것이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시아버지가 친 딸처럼 끔찍하리만치 이쁘게 여기는 통에, 시집살이는 커녕 모든걸 맘대로 누리면서

멋대로 살아온 지난날이다. 

그런 시아버지에게 외간 남자와의 불륜이 들통 난 것이다.      하루아침에 평탄하던 생활이 지옥으로 변한 순간이다. 

김포공항에서 지하철을 내린 소연이는 사람들 틈에 섞여 길고긴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 제법이죠.. "

" 그러네요, 여자들보다 더 잘하네요.. "

아이를 낳고 이틀이 지난 후에, 사위의 고집스런 바램대로 딸과 손주를 집으로 데려왔다.     출산후 감염은 없는지

집으로 의사가 한번 왕진을 왔었고, 산부인과적인 세척을 위해 간호사가 두번 다녀갔을 뿐이다.

이틀에 한번 꼴로 들리는 안사돈과 함께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중이다.

" 김서방 ~  이리와서 커피 한잔 하시게나.. "

부득불 애기 기저귀와 와이프 팬티는 직접 손 빨래를 하겠다며, 욕실에 쭈그려 앉아 있다.

" 놔 두세요, 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호호.. "

" 그래도 안사돈까지 계신데..  영 남새스러워서.. "

" 웬걸요..   내 자식이지만 며느리한테 다감한게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몰라요.. "

" 제가 도와준다고 해도 얼마나 막무가내로 버티는지, 원..   약한 피부에는 친환경 세재가 좋다면서.호호.. " 

산후 조리용품을 산다고 백화점에 간 사위가 얼마나 꼼꼼이 물건을 챙기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복잡한 진열대를 전부 뒤지다시피 해서는 맘에 드는 상품을 고르고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볼때는, 저절로 기특할만큼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잠이 든 마누라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 정이 담뿍 담긴 눈으로 온 종일 바라 보면서 피곤한 줄도 모르는 듯 했다.

특히나 콧 잔등에 땀이 맺힌걸 보고는 행여 잠이 깰새라 조심스레 손수건으로 땀을 찍어 낼 때는, 아무리 사위라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워 안아주고 싶었다.

소변이 마렵다는 딸아이를 번쩍 안아 욕실 변기위에 앉히고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마누라의 오줌 떨어지는 소리도

개의치 않는 사위를 볼때는, 오히려 장모인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 애기 얼굴이 조금씩 펴지네요.후후.. "

병원 신생아실에서 처음으로 아기 얼굴을 보고는 주름이 많다며 울상짓던 사위였다.

" 아직 몰라, 보름은 지나야지..   크면서 자꾸 얼굴이 바뀌는 법이거든.. "

" 그럼, 안사돈 말씀이 맞으이..   내가 보기엔 자네 코를 쏙 빼 닮았는데, 뭐.. "

" 그래, 아이 이름은 지었니.. "

" 글쎄요..  난 지연이 이름을 따서 지석이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저 사람이 어머니랑 의논하겠다고 하네요.. "

" 뭘, 나한테까지 미룰려고 그래..   그냥 너희들이 알아서 하지..   어떠세요, 사돈..  지석이가 친근감이 있네요.. "

" 좋은것 같네요.호호..   김지석이라..   할아버지한테도 가르쳐 드려야겠네.. "

첫 만남부터 호감이 가던 사위다.     잘못된 선택으로 힘들어 하던 딸의 결혼생활을 지켜 보면서 내내 초조해 했었다.

늦게나마 복덩이같은 사위가 딸아이를 지켜준다는 생각에 절로 뿌듯해 지는 이여사다.

더군다나 안사돈마저 며느리를 귀한 보물 여기듯이 아껴 주는걸 보면, 더 할 나위없이 만족스러운 것이다.

 

" 저녁 드시고 가세요, 반찬이 미역국밖에 없지만.후후.. "

" 그러자, 니가 만든 미역국이 그럴듯 하더라.호호.. "

" 말도 마세요, 얼마나 찐하고 맛있는지 바깥 양반도 두그릇이나 드셨다니까요.호호.. "

식탁에 저녁을 차려 놓고는, 쟁반에 미역국과 밥을 받쳐들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영호다.

제 마누라를 위해 출산 휴가까지 얻어 산받이를 자청하는 아들이 대견해 보인다.

핏덩이나 다름없는 영호와 헤어져 수많은 세월을 눈물로 지새웠던 고여사다.      뒤늦게나마 장성한 자식이 번듯한

가정을 꾸리는걸 옆에서 지켜보게 됐다.     

비록 애가 딸린 연상녀라고는 하지만 자식의 뜻이 더 중요했다.

그만큼 고여사에게 영호는 살아가는 이유, 그 한가지였다.

며느리감인 미진이가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걸 알게 되고는 저으기 안심을 했다.

무엇보다 외로운 영호를 감싸줄 여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모와 상견례를 하게 됐을때도,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영호를 아끼는지 맘에 와 닿았더랬다.

아들집에서 자고 가라는 안사돈과 며느리를 뒤로하고 집을 나서는 고여사다.

 

" 도대체 왜 이러니, 이 상태로 어딜 간다는거야.. "

연주가 대책도 없이 오피스텔을 나간다는 말에 초조해지는 승우다.

" 나 혼자 헤쳐 나가야 했어, 오빠한테 기댄게 잘못이야.. "

오전에 가게에 들렸더니 문이 닫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오피스텔로 찾아 왔더니 연주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미루어 짐작하지 않아도 집에 있는 와이프의 짓이란걸 알수 있었다.      반갑지도 않은 처제가 수시로 집에 들러서는

제 언니를 들쑤시곤 했었다.     

제 남편의 앞가림도 못하면서 형부인 내 동선까지 체크하던 처제였다.

" 우선 진정해라, 잠시 숨이라도 돌리고 앞으로 어찌할지 의논하자구.. "

무턱대고 보낼수는 없었다.      집에서 쫒기듯이 나와 가뜩이나 힘들어 하던 연주다.    와이프한테 폭력까지 당하는

바람에, 마음의 상처가 깊을텐데 그냥 가게 놔 둘수는 없는 노릇이다. 

" 그냥 놔 줘, 더 이상 비참해지기 싫어.. "

" 안돼, 이대로는 못 보낸다..   너도 생각해 봐, 신중하지 못했던 내 잘못이지만, 갈데도 없는 너를 이대로 보낼순 없어.. "

"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

침대 끝에 걸터 앉았던 연주가 침대에 몸을 엎디고 울고있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통곡을 하고 있다.

" 조금만 기다려보자, 내가 무슨 수라도 내 볼께.. "

하염없이 울고있는 연주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승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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