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사냥

남자사냥 55

바라쿠다 2012. 7. 9. 15:46

" 아가씨는 이리로 오고 아가씨는 저쪽으로 앉으면 되겠네.. "

동료 아가씨와 지하에 있는 노래방에 들어서자, 술이 취해 눈이 풀린 남자가 앉을 자리를 정해준다.

노래방 도우미 생활을 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소연이는 친정집부터 들려서 남편과 헤어지게

됐노라고 털어 놓았다.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씻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제 평탄한 결혼생활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친정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시댁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행복하게 살던 딸이, 하루아침에 말도 안되는 소식을

들고 나타났으니 집안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온 집안식구가 나서서 일방적인 통보를 한 자신의 결정을 되 돌리려 했지만, 독하게 마음을 먹은 일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깨진 도자기다.        울고불고하는 친정 엄마의 통곡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핸폰도 새로이 개통을 하고, 가지고 있던 핸폰은 전원을 끄고는 옷가방 속에 쳐 박았다.        집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화곡동 쪽에 원룸을 얻고 밤거리를 헤맨지 며칠, 아가씨들을 노래방에 내려주는 봉고차를 발견하고, 스스로 그 봉고차를

운전하는 지금의 실장과 얘기를 했던 것이다.

" 아가씨, 몇살이야..   중국 교포인 모양인데 옷이 세련됐네.흐흐.. "

첫날엔 적응이 되질 않아 두시간만 하고 들어 갔었다.      한시간에 25,000원 밖에 안되는 푼돈을 주면서, 멋대로

치마속으로 손이 들어오는가 하면, 강제적으로 껴안고 키스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 서른 둘. 호호..  고향이 연변이라 돈 벌러 왔어요.. "

조금씩 요령이 생겨 손님들의 짐작에 따라 맞춰 줄 정도가 됐다.       어차피 이곳에선 과거의 부유했던 시절은 아무런

도움이나 자랑거리가 될수 없었다.     그저 손님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노래방 도우미만 있을 뿐이다.

" 나한테 잘 보여 봐..  큰 돈을 벌게 해줄테니까.. "

옷 입은 모양새로는 현장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자기과시를 하고 있다.

" 어머 ~ 어떻게 해야 큰 돈을 벌까.. "

돈이 아쉬워서가 아니다.      이렇게라도 시간을 보내야, 무거운 마음의 짐을 잠시나마 덜수가 있기 때문이다.

 

" 장사는 잘 되지.. "

" 응, 다행히 자리가 잡혔어..  언니는 요즘 어때.. "

일요일 오후 성미의 냉면집으로 찾아 갔다.       며칠동안 오피스텔에서만 쳐박혀 지내느라 답답함을 달래고 싶었다.

" 옷가게 접었어, 박사장 와이프가 찾아와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지 뭐야.. "

" 저런..  앞으로 어쩔 생각이유.. "

" 글쎄, 일단 이사는 가야겠지..  박사장이 알아봐 준다고 했지만 부담주기는 싫고.. "

예전 친구들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지만, 달리 갈곳도 없었기에 이곳에 들려본 것이다.

" 언니..  소연이 소식 모르지.. "

" 소연이가 왜.. "

" 가출했어, 소연이..   저녁에 이쪽으로 올거야.. "

" 어머 ~ 걔가 왜.. "

소연이만큼 자기 삶을 행복하게 누리는 여자도 드물다고 생각했다.      시댁에서 금쪽같은 대접을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겠다는 사고를 지닌 동생이었다.      그런 소연이가 가출을 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 오랜만이다, 언니..  미진이 언니네서 보고는 처음이지.. "

" 그러게, 벌써 한달도 더 지났네.. "

" 조금만 기다려, 안주라도 챙겨 올께.. "

성미가 안주를 가져온다며 내실에 우리 둘을 남겨놓고 일어섰다. 

" 집을 나왔다며..  성미 얘기가 무슨 말이야.. "

" 그렇게 됐어, 벌을 받았는지도 모르지.. "

그 동안의 일을 잔잔하게 털어놓는 소연이의 얼굴에 회한이 어린다.

" 그래도 참고 기다렸어야지, 무턱대고 나오면.. "

" 뻔뻔하게 버티기 싫었어, 시아버지 눈치를 보는게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

처연한 소연이의 말에는 공감이 간다.    자신만 하더라도 멸시하는 남편의 눈총을 견디지 못했으니 말이다.

" 어찌 지내는거야, 아픈데는 없구.. "

" 그냥저냥.. "

" 나도 같이 있으면 안되겠니..  며칠간만이라도.. "

연주 역시 박승우에게서 떨어지고 싶은 것이다.     소연이에게도 그간의 사정을 설명해 줬다.

그의 와이프한테 멸시까지 당하고도, 계속 그곳에 머문다는건 자존심이 허락치를 않는 것이다.

" 원룸이라 불편할텐데.. "

" 불편한게 대수니..  우선 나와야겠어, 다른곳에 거처를 마련해야지.. "

" 한가지 약속을 해 줘, 아무한테도 내가 있는곳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

동병상련이랄까, 처해진 신세가 어찌 이리도 똑같은지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밖에 나갔던 성미가 안주를 주섬주섬 나르기 시작했다.

" 성미, 너도 우리가 여기서 만난걸 비밀에 부쳐줬으면 좋겠어.. " 

" 그래 언니, 나도 가끔 연락을 줄테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른척 해줘.. "

 

조금씩 집안살림을 챙기기로 했다.     그동안 영호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느긋하게 편안함을 만끽했다.

영호가 출근을 시작한지도 여러날이 지났다.      가까이 계시는 어머니가 수시로 들리셨고, 시어머니도 이틀이 멀다하고

며느리를 돕는다고 오셨기에, 더 이상 행복한 게으름을 피우기가 죄송스러웠다.

" 천천히 해라, 한꺼번에 너무 많이 움직이면 안 좋아.. "

항시 자신이 낳은 딸처럼 아껴주시는 시어머니다.      영호가 어머니를 닮은것 같아 친근감마저 들었던 것이다.

" 그냥 놔 두세요 사돈, 움직일때가 한참 지났어요.. "

" 그래도 노산이라, 쉴수 있을때 더 쉬는게 좋은데.. "

" 우리 사위가 지석이 에미를 다 버려 놨어요.호호..    원래 부지런한 아인데 지 남편이 받들어 주는 재미에 빠져설랑.. " 

세상을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은 어른들이다.        바라만 봐도 딸과 아들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신다.

진작부터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자 했지만, 퇴근한 영호가 정색까지 하며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따뜻한 영호의 보살핌에 그저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 할머니 오셨어요.. "

" 그래, 우리 지연이 공부하느라 힘들지.. "

학교에서 중간고사를 본다고 일찍 집으로 돌아온 지연이가 할머니들의 틈새에 앉는다.

" 그건 괜찮은데, 삼촌이 엄마만 챙긴다니까..  어떨땐 아침밥도 안줘요, 글쎄.. "

" 아침은 니가 차려 먹어야지, 언제까지 애들처럼.. "

" 할머니는..  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얼마나 졸린데.. "

영호와 가깝게 지내는건 좋지만 너무 버릇이 없는게 문제다.

" 졸립다는 애가 동생 옆에만 붙어사니..  너 요즘에 너무 심해..  그리고 삼촌이 뭐냐, 이제는 아빠라고 해야지.. "

" 피 ~ 아빠는..  오빠라면 몰라도.. "

기어코 사고를 치는 지연이다.       시어머니까지 계신데 나이를 들먹여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 이제는 호칭을 바꿀때가 됐어, 할아버지도 걱정이 많으시더라.. "

 

 

 

'남자사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사냥 57  (0) 2012.07.14
남자사냥 56  (0) 2012.07.11
남자사냥 54  (0) 2012.07.05
남자사냥 53  (0) 2012.07.02
남자사냥 52  (0) 2012.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