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사냥

남자사냥 57

바라쿠다 2012. 7. 14. 15:45

근처에 시장이 있어서인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편인 골목 어귀다.     

" 정말 오랜만이다..   니들 둘이서 무슨 장사를 한다구.. "

맏언니인 정희가 연주언니와 소연이를 보더니 기가 막힌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두사람 다 전혀 해 보지도 않던

호프집을 한다는게, 내 눈에도 어울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게 평수는 30여평 남짓 되는데 주변 상가들의 분위기로 봐서는, 점잖은 손님들을 기대 한다는건 어렵지 싶다.

" 뭐라도 해야지, 언제까지 시간만 보낼수도 없고.. "

" 그래도 너희들한테 어울리는 장사라면 더 좋았을텐데.. "

보는 눈은 비슷하기 마련이다.     어쩌다 술에 취한 손님들의 주사도 대응 못 할 사람들인 것이다. 

" 안 그래도 커피 전문점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게 좀 밋밋할것 같애서.. "

" 차라리 커피 전문점이 훨씬 낫지..  니네들이 술손님 뒤치닥거리를 어찌 한다는건지.. "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는다는 정희 언니다.      세상풍파를 모르고 살아온 연주언니나 소연이를 보면 걱정스러운 것이다.

" 그런 얘기 그만하고 이리로 앉아요, 조금 있다 손님들이 오면 정신없어.. "

" 그래요, 언니..  애들도 아닌데 두사람이 오죽 잘할까.. "

보다 못한 소연이와 성미가 한쪽 테이블로 이끈다.     호프집에 어울리지 않게 소연이가 커피를 내온다.

" 그나저나 박사장은 안 만나는거야.. "

" 오지 말래도 가끔씩 들려..   당분간은 만나기 싫은데, 오는 사람을 매정하게 굴기고 그렇구.. "

오랜만에 다섯명이 모였으니 할말들이 많은듯 싶다.      그 중에서 장사를 하는 성미가 궁금한게 제일 많은듯 하다.

소연이에게 할말이 있다고 나머지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구석진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 너희 시아버지가 우리집에 찾아 왔었어, 널 만나고 싶다더라.. "

" 난 만나기 싫어, 그럴거면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을거야.. "

예상했던 소연이의 반응이지만 애원이라도 하는듯한 소연이 시아버지의 눈빛을 잊을수가 없다.

" 나도 그렇게 생각은 했었지, 니가 웬만해선 연락을 끊지 않았을거라구..    근데, 그분의 눈빛이 너무 절박해 보이더라..

니 남편이나 시어머닌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너랑 통화라도 하고 싶으시다구.. "

" ................... "

" 그분이 오죽이나 널 이뻐했니..   마음의 상처가 크신 모양이야.. "

" .... 내가 알아서 할께, 언니는 모른척 해 줘.. "

" 나야 당연히 그럴수 밖에 없지..   너한테도 말을 전할까,말까 많이 망설였어.. " 

 

다섯이서 얘기를 나누는 중에 연주 언니의 애인인 박사장이 왔고, 손님들도 들어차기 시작했다.

주방으로, 손님 테이블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연주언니와 소연이를 어이없어하면서 지켜 보는건 우리들 모두가 똑같았다.

결국 박사장과 나머지 멤버들은 바쁜 그녀들을 뒤로 하고 호프집을 나서야 했다.

" 제부..  바쁘지 않으면 성미 가게에서 술 한잔 하고 가요.. "

정희언니의 제의에 따라, 네사람이 성미의 갈비집에 마주앉아 가볍게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 둘이서 그런 장사를 한다는게 영 어울리지가 않어.. "

" 그게 그런 이유가 있어요.. "

이곳에 오는 내내 찜찜해 하는 정희언니의 걱정스런 말에 박사장이 맥주 한컵을 숨도 안쉬고 털어 넣는다.

" 우리 와이프 땜에 연주가 좋지 못한 일을 겪은건 여러분도 알게고..   연주가 호프집을 하겠다고 했을때 말도 안된다고

여러번 말리기도 했지..   그런데 연주가 그러더라구,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술이라도 마셔야 지금의 자기 심경을

달랠수 있지 않겠냐구..   그래서 그 가게를 얻어준거야, 나도 마음이 편치 않지만 현재로선 지켜보는것 말고는 달리

할게 없어.. "

박사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조금은 이해가 된다.     오죽 견디기 힘들었으면 그런식으로 마음을 다 잡으려 할까 싶다.

" 그렇겠네, 언니..  나는 이해가 되네, 좋아서 하는게 아니고 잊어 버리려고 몸부림이라도 치는거겠지.. "

" 연주보다 소연이 처제가 더 힘들어 하더라구..   나도 다시 봤어, 예전에는 그저 밝고 철없는 여자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니까..   잠시도 쉬지를 않는거야, 술도 엄청 마시고.. "

성미의 말에 이은 박사장의 설명에 우리들 모두는 할말을 잊을 정도였다.    어렴풋이 힘드리란 짐작은 했었지만, 그

정도까지 견디기 어려워 하는줄은 몰랐던 것이다.

" 그전에 우리가 몰려 다닐때 막연하나마 불안했었어, 그래서 연주한테 가끔 자제하라고 얘기도 했었구..   이렇게 현실이

될지는 몰랐지만..   좀 더 말릴걸 그랬나 봐.. "

연주언니와 소연이의 입장을 전해들은 정희언니가 아쉬워 하고 있다.    맏언니로서 자신이 동생들을 잘 이끌지 못한것에

대한 자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희언니의 잘못이랄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이 우리네 여자들 위주로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사회적인 통념상 유부녀의 향락까지 덮어 줄리는 없다. 

아무리 너도 나도 애인을 만드는게 자연스런 유행이 됐다 한들, 통 넓게 이해를 해주는 남편은 없는 것이다.

 

" 오랜만이네요, 형님..   큰 언니도 별고 없으셨죠.. "

핸폰이 왔길래 금방 들어가겠다고 했는데도 기여코 이곳까지 온 영호다.      그렇게 얘기를 해도 언니라는 표현을 쓴다.

" 그러게..  아들을 낳더니 얼굴에 웃음꽃이 폈네, 그려.후후.. "

" 우리 제부께서 미진이 산받이까지 했다면서..  부럽다, 미진아.호호.. "

영호가 오는 바람에 무겁게 가라 앉았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진다.       영호 앞에서는 거론할 얘기가 아니었기에, 잠시

덮어 두기로 무언중에 각자의 머리속에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 이 사람이 힘들게 지석이를 낳았으니 당연히 제가 해야죠.후후.. "

" 지석이는 어쩌구.. "

" 지연이도 있고 장모님도 오셨어..    장모님이 오랜만에 당신이랑 데이트나 하고 들어오래.. "

" 오랜만에 내 술 한잔 받지.. "

" 네, 연주언니는.. "

연주언니의 근황을 알리없는 영호다.       같이 사는 남편이지만 무에 좋은 일이라고 알릴수는 없었다.

" 잘 지내고 있지..  그나저나, 백일이 언제쯤이야.. "

" 십여일 남았어요.후후.. "

" 지석이 얘기만 나오면 저리도 좋을까, 웃느라고 입속에 파리가 들어 가겠네.호호.. "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아슬아슬했던 순간이 많았다.       다른 멤버들처럼 남편이 있는 상태로 영호를 만났다.

하늘의 뜻인지는 몰라도 남편과 갈라서게 됐고, 그 자리를 영호가 메우고 들어왔다.

남편과 이혼이 되지 않았더라면 자신 역시 연주언니나 소연이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었을 것이다.

" 그 때 불러주게, 자네들 애기가 보고 싶어.. "

" 그러세요, 그냥 간단하게 집에서 하기로 했으니까 오셔서 약주라도 한잔 하셔야죠.. "

" 술은 됐고..  자네들이 하도 이쁘게 사니까 애기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거야.. "

연주의 안타까움을 지켜볼수 밖에 없는 박사장의 말이다.     연주뿐 아니고 소연이까지 지켜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영호만 빼고는 각자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고 헤어졌다.      많은것을 돌이켜 보게 하는 하루였다.

 

" 뭐 하느라고 이제와, 배고파 죽겠는데.. "

현관에 들어서자 지연이가 저녁을 안 먹었다고 툴툴거린다.

" 얘가 밥 차려준다고 해도 에미랑 같이 먹겠다고 버티더라.. "

" 삼촌이 차돌배기 구워 준다고 했단 말이야.히히.. "

둘이 티격태격 하면서도 잘 지내는걸 보면 그나마 안심이 된다.

" 계집애가 고기를 밝히고 그러니, 그러다 살이라도 찌면 어쩌려구.. "

" 그냥 놔 둬, 미진씨..   공부하느라 힘들텐데 보신이라도 해야지..   장모님도 같이 드시고 가세요.. "

거실 탁자에 불판까지 올려놓고 저녁 준비를 하는 영호다.     지연이와 식구들을 챙기는 영호가 사랑스러워 보인다.

" 확실히 삼촌이 고기 하나는 맛있게 굽거든.히히.. "

지연이 앞에 핏물이 가신 차돌배기를 놓아주는대로 입속으로 가져가는 지연이다.     어머니와 내 앞에 고기를 올려 주느라

정작 영호 자신은 차례가 오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익은 고기를 나르는 영호다.

" 고기만 잘 굽는다, 그거지..   너 지연이 이제 각오해, 내일부터는 과목별로 진도를 체크할거니까.. "

" 피이 ~ 누가 겁 날줄 알구, 맘대로 하셔.. "

" 자기도 그만 굽고 좀 먹어..  참, 반주로 소주 한잔 마실까.. "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와 어머니와 영호의 잔을 채웠다.     장모와 사위가 소주잔을 부딪치고는, 한모금씩 넘기는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 자네 어머니도 술 좀 하시나 몰라.. "

" 글쎄요, 그리고 보니까 한번도 술 드시는걸 못 봤네요.. "

" 어머니한테도 잘 해 드리게, 혼자서 얼마나 쓸쓸 하시겠어.. "

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시작된 영호가 우리 집안의 중심에 들어와 있다.     어머니나 지연이조차 한식구처럼 스스럼이 없다.

처음 자신을 좋아한다고 했을때부터 나이어린 영호의 진심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의 진심을 받는다는게 쉽지 않을만큼

여러가지 여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졸지에 늦은 나이로 임신을 하고부터 모든일이 급박하게 돌아갔고, 하늘의 뜻이라고 여길만큼 만사가 쉽게 풀려나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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