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8

바라쿠다 2012. 6. 23. 00:30

" 누구야, 그 여자..  꼴에 남자라고 치마만 두르면 다 좋아하니? "

'모래시계' 박연숙이를 보더니 강짜를 부린다.      기가 막혀서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들어 먹을 미진이가

아닌지라 참고 넘어가는게 피차에 좋을듯 싶다.      졸지에 여자의 눈치를 보는 버릇까지 생겼다.

" '모래시계' 사장이야, 남편이랑 같이 있던 아가씨를 보고 싶대.. "

" 금희한테 해꼬지라도 하는건 아니겠지.. "

옆에서 지켜보던 혜영이가 동영상을 촬영한 아가씨를 걱정하고 나선다.

" 별 걱정을 다하네, 그러면 깡패가 가만히 있겠니.. "

" 하여간에, 말 뽄새하고는..   깡패한테 대드는 넌 뭐냐..    혜영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더라, 오히려

아가씨한테 상을 준다면 몰라도.. "

" 애가 겁이 많걸랑, 오빠가 옆에 있어줘야 해요..   금희야 이리와 봐.. "

옆 테이블에 있던 아가씨를 부른다.      가까이서 보니 동영상에서 팬티를 뺏기곤 난감해 하던 그 아가씨다.

" 내일은 좀 일찍 나와서 여기 삼촌이랑 '모래시계' 좀 같이 다녀와.. "

" 어머~ 그 아저씨 보기 싫은데, 변태짓만 시키고.. "

" 괜찮어, 금희야..  이 언니가 같이 가줄께.. "

뭣땜에 같이 가겠다는건지 미진이까지 거들고 나선다.

" 너는 왜 끼여들어, 나 혼자 가도 되는데.. "

" 당연히 내가 가야지, 우리집 아가씨 일인데다가 오빠가 말빨이 약하잖어.히히.. "

" 그냥 같이가 오빠..   미진이가 '모래시계' 여사장이 궁금해서 그러는거야.. "

" 모르겠다, 니 맘대로 해라..   언제 내 말 듣는 놈이냐.. " 

" 이번 일요일에 오빠네 엄마한테 인사 드리러 가자.. "

느닷없는 말에 마시던 술을 쏟고야 말았다.       돌발스런 미진이의 행동에 자주 놀랠 일이 생길 예감이다.

" 너 진짜로 결심했구나..   오빠도 이제 좋은시절 다 갔네.호호.. "

뭐가 좋은지 혜영이가 박장대소를 한다.       조만간에 온 동네에 소문이 퍼지지 싶다.

 

" 나중에 천천히 가도 될텐데 뭘 미리 갈려구 그러냐.. "

포장마차를 대충 정리하고 혜영이 차에 얹혀 집으로 돌아왔다.      모친한테 인사를 가겠다는 미진이에게 노파심인지도

모르겠지만 확인이라도 해야 했다.      부모에게 인사를 하겠다는건 가벼운 일만은 아닐 터다.

" 나 장난 아니거든..  오빠 엄마한테 이쁘게 보이고 싶어.. "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한테 잘해줄 자신은 없는 놈이야.. "

혼자 사는 아들을 안쓰러워 하는 모친에게 인사를 가겠다는 미진이가 이쁘긴 하지만, 노인네에게 또 다시 실망을 안겨

줄까봐 걱정스럽다.

" 오빠 너무 쪼잔하다, 어쩜 여자보다도 배짱이 없다니..   왜 사람들이 이런 오빠를 깡패라고 무서워 하는지 몰라.. "

" 근데, 너 그말 좀 안할수 없냐?   깡패가 뭐냐, 깡패가..   남들이 흉봐, 임마.. "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은 인상인데, 남자처럼 말투가 드센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 깡패를 깡패라고 하는데,뭐..    그리고 내 껄 가지고 내 맘대로 부르는게 어때서.. "

" 니가 뜻없이 그러는건 알지만 남들은 그렇지 않은거야, 임마..   내가 직업적인 깡패도 아닌데.. "

" 어이구~ 그러셨어요..  그렇게 남들 눈이 무서우면 그러질 말아야지.. "

되도록 고운 말투를 쓰게 하고 싶어 달래는데도, 뉘집 개가 짓느냐는 듯 비아냥 거리기까지 한다.

" 내가 뭘 어쨌다구 그러냐, 그러길.. "

" 지금 오빠 나이가 몇인데 칼에 찔리고 다니냐구.. "

언성이 날카로워 진 미진이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이제서야 깡패라고 놀려먹던 미진이의 속내가 짐작이 된다.

제 딴에는 칼에 찔린 내가 걱정스러워 속을 끓였지 싶다.     의도적으로 충격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 그래, 알았다..  이제부터는 조심할께.. "

내 몸을 걱정해서 울기까지 하는 미진이의 마음이 짠하게 다가온다.

" 또 한번만 그랬다간 국물도 없어.. "

" 알았다니까, 이제 그만해..  그렇다고 아침부터 울기는.후후.. "

미진이의 뺨에 흐른 눈물을 닦아주고 어깨를 안아 가볍게 토닥여 줬다.     나를 걱정해주는 응원군이 생긴 기분이다.

" 시간없어, 빨리 안아줘..   초희 학교 보내야 돼.. "

내 목에 팔을 두르고는 입을 맞춰온다.       그녀를 침대위에 눕히고 눈물자욱이 있는 뺨부터 혀로 씻어갔다.

 

'모래시계'에 도착한 시간이 6시쯤 됐지 싶다.

미진이와 금희를 데리고 들어섰더니, 안쪽 테이블에 박연숙 부부와 중년의 여자가 앉아 있다가 아는척을 한다.

" 일찍 오셨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

여섯명이 앉기엔 좌석이 협소하게 보이자, 바로 옆 테이블로 안내를 하는 박연숙이다.

박연숙과 남편이 우리쪽으로 건너오고, 남아있는 여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오래전 기억이라 가물거리지만

중년의 여인이 이십년전의 영희지 싶다.

" 당신,여기 오빠 알지..   일단 사과부터 드려.. "

주뼛거리며 일어선 남편이 고개를 숙이는데 눈두덩이가 시퍼렇다.

" 죄송합니다.. "

" 미안해요,오빠..   변변치 못한 인간이라.. "

종업원이 인원수에 맞춰 음료를 내 와 테이블에 올려 놓는다.

" 같이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 피해를 주면 되겠어.. "

" 다신 안 그런다고 했으니까 괜찮을거예요.. "

" 그래야지, 불쌍한 분이야..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애들을 키웠다고 하더라구.. "

" 그 분한테는 제가 직접 사과를 할께요, 그러지 말고 지금 그쪽으로 가죠.. "

여자지만 거침이 없는 성격이다.      남편에게 가게를 맡긴 연숙이와 함께 욕쟁이 할머니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장사 준비를 마친 욕쟁이 할머니와 딸인듯한 여자가 가게를 지키고 있다.

" 선배께서 어쩐일로.. "

" 누구신가.. "

다섯명이 들어서서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자 젊은 여자가 아는척을 한다.

" 저 미희랑 친구에요.. "

" 아, 그러면 초등학교 후배시구만.. "

" 선배님이랑 동갑이에요, 띠 동갑.호호..   저도 용띠거든요.. "

" 그러네, 여기 이분이 '모래시계' 사장님이셔..   남편이 자꾸 신고를 했나봐, 이분이 대신 사과하시겠다고.. "

" 내 잘못이지,뭐..   큰 가게를 얻을 돈이 없어놔서.. "

뒤에서 지켜보던 욕쟁이 할머니가 끼여든다.      70 이 넘은 나이에도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 죄송해요, 할머니..  제 남편이 못나서 앞집이 장사가 잘 되니까 배가 아팠나봐요..    앞으로 그런일은 없을겁니다.. "

연숙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욕쟁이 할머니에게 공손하게 사과를 한다. 

" 살면서 너무 야박하게 그러면 못쓰는 법이야, 그래도 이렇게까지 찾아와 주니 고맙구먼.. "

예전과는 달라진 세상이다.     비록 가난했지만 이웃끼리 정을 주고 받으며 힘이 돼 주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다가 이다지도 각박해 졌는지 모르겠다.      소문과는 달리 점잖은 분이지 싶다.

" 선배님, 고마워요..  미희가 부탁했다는 소리 들었어요.. "

" 내가 나선다고 될 일인가, 다행히 여기 사장님이 이해를 해줘서 그런거지.. "

" 여기 안주 좀 주세요, 오늘은 내가 쏠께요.호호.. "

'모래시계' 연숙이가 술과 안주를 시킨다.       욕쟁이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환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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