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7

바라쿠다 2012. 6. 16. 11:37

벌써 이십여년도 더 지난 일이다.        오래 지난 그 세월이 엊저녁 꿈인양 새롭다.

아는 지인이 영등포 시장에서 그릇 도매상을 했는데, 워낙 장사가 잘 되는지라 창고의 관리를 맡아 달라고 했었다.

하는 일이래야 물건이 들고,나가는 수량을 파악하고 배달하는 점원들을 다독이는 정도라 어려운건 없었다.

어느날엔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골목길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골목 안으로 몇 발자욱 들어 섰더니, 희미한 방범등 아래에서 건달티가 나는 젊은 녀석 둘이 여자 하나를 벽에 세워

놓고 좀 심하다 싶을만큼 매질을 가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제대를 한지도 몇년되지 않은만큼 혈기가 왕성하던 때였기에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해병대에서도

온갖 어려운 훈련을 섭렵하고, 특수부대에 배속되어 힘든 작전에는 항시 차출이 되었던만큼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시절이었다.

다짜고짜 두 녀석을 두들겨 패서 쫒아버리고 보니, 구타당한 여자의 상태가 심해 보였다.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부탁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중에 험상궃게 생긴 녀석들이 들이 닥쳤다.

" 형씨, 잠깐 좀 보지.. "

그들중에 우두머리인듯 다부지게 생긴 녀석이 나를 지목하며 앞을 가로 막았다.

대기실에는 환자들과 가족들도 있었기에, 그들을 따라 병원 뒷골목으로 따라 들어섰다.

당연히 숫적으로 불리한지라 밝은곳에서 버티고 추이를 봐야 했지만, 그 시절의 만용이 허락치를 못했다.

대여섯명이 나를 둘러싸고 어두운 골목안으로 들어섰을때 어깨에 통증이 왔다.

뒤를 따르던 녀석중 하나가 쇠 파이프로 내 어깨를 내리친 탓이다.

" 건방진 자식,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

아찔해지는 아픔에 허리를 굽히는 순간, 빈병이 쌓여진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땅바닥에서 한바퀴 몸을 굴려 높게 쌓여진 박스더미를 차지하고는, 되는대로 병을 집어들어 앞에 있는 놈을 겨냥해서

던져 버렸다.

" 아니, 저 새끼 잡어.. 욱 .. "

콜라병인지, 사이다 병인지도 모르지만, 손에 잡히는대로 녀석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집어 던졌다.

졸지에 자신들을 향해 빈병들이 날아들자, 어느정도의 거리가 생기고 더 이상 다가서지를 못하고 주춤댄다.

" 뒈지고 싶은 놈은 앞으로 나와, 머리통을 부셔 줄테니까.. "

양쪽 손에 빈병 두개를 들고 녀석들을 마주했다.     머리수만 믿던 놈들이 내가 드세게 버티자, 어쩔줄을 모르고 잠시

허둥대는 표정들이다.

" 너, 임마..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못 벗어나..   그만 사과하고 기집애나 내 놔.. "

처음부터 내 앞을 가로 막았던 놈이 한발짝 앞으로 다가선다.

" 사과는 니들이 먼저 해야지, 치사하게 뒤통수나 치는 똘마니 주제에.. "

" 너, 우리가 누군지나 알고 까부는거냐.. "

가까이 다가설수가 없으니 말로라도 기세를 꺽을 심산이다.

" 너야말로 짝손이라고 들어는 봤냐.. "

 

당시의 영등포 나와바리는 셋으로 나뉘어 져 있었다.      

가장 번화한 술집 골목들은 건달들이 장악을 했었고, 시장이 있는 쪽은 중앙동 출신의 토박이들이 설쳐대고 있었다.

그들 두 세력간에 이권을 챙기느라 가끔 충돌을 해서 패싸움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역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 창녀촌이 있던 영등포 역전이다.    

어릴때 가출을 해서는 어찌어찌 해서, 그곳의 전설까지 된 짝손이라는 인물이 바로 내 외삼촌이였다.

창녀들의 기둥서방이나 넝마주이, 상이군인등이 모여 살던 그곳의 분위기는 번화가인 영등포 중심과는 사뭇 달랐다.

사회에서 낙오가 되었다는 모멸감을 안고 매일매일을 술에 쩔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다 건달들이나 토박이들이 그들과 다툼이 생겨도, 삐뚤어진 자격지심 때문인지 목숨까지 내 놓고 달겨드는 바람에,

그들에게는 한수 양보하는 선에서 끝내곤 했다. 

지금이야 밤 업소에서 쉽게 돈을 벌기위해 여자들 스스로가 그곳으로 찾아가지만, 당시로는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팔려가는 여자들이 많았지 싶다.

영희도 그들중 하나였다.     동생들의 학비를 벌겠노라고 고향에서 올라와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는, 비싼 이자가 붙는 돈을 감당하지 못해 룸싸롱 호스티스로 끌려왔던 것이다.

다행히 외삼촌인 짝손의 도움을 받아 영희를 그곳에서 빼내서는, 지금의 구로동 디지탈 단지내의 봉제공장에 취직을

시켜 줬더랬다.

그 후로 몇번인가 나를 찾아와서는 고마움을 표시했던 영희지만, 차츰 세월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갔다.

당시 나와 대적했던 중심가의 철수와 중앙동의 친구와는 지금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지내고 있다.

 

" 그래, 영희는 지금 어떻게 지내요? "

" 오라버니, 우리 나가서 한잔해요..   제가 살께요.호호.. "

'모래시계'의 영업시간이 끝났는지 종업원들이 가게를 정리하는 중이다.

새벽까지 장사하는 '모래시계'가 끝났으니 갈데라고는 포장마차 뿐이다.

조금전까지 미희와 어색해 했던 가게로 다시 들어 갈수밖에 없었다.

" 웬일로 오라버니가 우리 가게를 오셨대요, 그것도 혼자서.. "

미희에게 소주와 닭발을 시키더니 자신이 궁금해 하는 것부터 물어온다.

" 글쎄, 여사장한테 얘기를 해야하나.. "

" 연숙이예요, 박연숙..   영희 친구니까 편하게 이름을 불러주면 더 좋구.호호.. "

처음 느낀 인상대로 털털하면서도 시원스럽다.     여자인데도 손의 살집이 남자처럼 강인해 보인다

" 남편 얘기라서..  내가 혼 좀 내줄까 싶었는데, 이렇게 박사장을 만나고 보니 그것도 좀 그러네.. "

차라리 모르는 사이였더라면 남편의 추태를 보여주기가 쉬웠을텐데, 막상 조금이나마 인연이 있고 보니 망설여진다.

" 편하게 얘기하세요, 오빠..  그 인간한테는 기대도 안 하니까.. "

" 이것 참..   그냥 부탁이나 하나 할께.. "

굳이 남편의 못난꼴을 들추지 않아도 될듯 싶어 용건만을 꺼내기로 했다.     쓸데없이 구청에 신고를 해서 귀찮게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면서 설명을 해 줬다.

" 하여간에 남자새끼가 하는 짓이..  어머~ 죄송해요, 제가 성질이 좀 못돼서.호호.. "

" 뭘, 털털해서 보기 좋구만.후후.. "

" 근데, 아까 보여 줄려고 했던건 뭐길래.. "

굳이 보여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영상버튼을 눌러 건네줬다.

"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도.. 어머나.호호.. "

편해 보이는 성격이 보기에 좋다.      뭣이든지 속에 담고는 못살지 싶다.

영희의 근황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미진이와 혜영이가 포장마차로 들어선다.

" 이렇게 해요, 오빠가 여기 찍힌 아가씨하고 초저녁에 '모래시계'로 오세요..  오랜만에 영희 얼굴도 보실겸.. "

일행들이 왁자지껄 들어서는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박연숙이다.

'옴니버스 소통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통령 9  (0) 2012.06.25
소통령 8  (0) 2012.06.23
소통령 6  (0) 2012.06.09
소통령 5  (0) 2012.06.06
소통령 4  (0) 201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