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6

바라쿠다 2012. 6. 9. 19:04

송경장을 만나고 오니 테이블 두 곳에 손님들이 앉아 있다. 

이제 막 들어왔는지 테이블엔 술병만이 올려져 있고 주방에서는 미희가 바쁘게 움직인다.

" 무슨 안주야? "

" ............ "

혼자 일하는게 미안스러워, 돕고 싶어 말을 건넸는데 묵묵부답이다.    

워낙에 싹싹하고 붙임성이 있는게 미희의 모습이었는데, 예전에 없던 행동을 하는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 왜 그래, 애가 무슨 말썽이라도 부렸냐? "

"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해.. "

무슨일인지는 몰라도 본인 스스로 얘기를 하기전까지는 알 방법이 없다.      같이 일하게 되면서도 친구녀석의 동생이라

눈여겨 보긴 했지만 사생활까지 참견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고가는 손님들의 시중을 들고 테이블을 정리하며 홀에 있는데, 얼추 11시가 다 된 시간에 미진이에게서 핸폰이 왔다.

" 무슨일이야? "

~ 지금 혜영이 차에 앉아 있는데 잠깐 이리로 올수있어? ~~

먹자 골목 한쪽 귀퉁이에 세워진 봉고차에 미진이와 혜영이만이 앉아 있다.      영업이 잘 되는지 7 ~8 명이나 되는

도우미 아가씨들이 하나도 없다는건, 모두 업소에서 일 한다는 얘기가 된다.

" 오빠, 이것좀 봐..  변태가 따로 없어.호호.. "

미진이가 보여주는 핸폰의 영상에는 호프집 사장놈이 아가씨들과 노래방에서 노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울긋불긋 돌아가는 사이키 조명아래, 도우미 아가씨를 부둥켜 안은채 온 몸을 주물럭대며 치근대는 중이다. 

나중에는 싫다며 버팅기는 아가씨의 치마속 팬티까지 강제로 벗겨서는, 제 머리에 뒤집어 쓰고 춤을 추는게 선명하게

보인다.

" 허~ 이녀석 참 물건일세, 술 처먹고 노는데는 일가견이 있구만.후후.. "

" 그치~ 재밌겠지.. 나중에 오빠한테도 한번 씌워줄께.호호.. "

"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됐어, 임마..  냄새 나는건 질색이야.. "

" 어허~ 까불래..  여자가 이쁘면 찌린내도 향기가 되는거야, 시키는대로 해.호호.. "

미진이의 농담에 혜영이까지 빙그레 웃는다.

" 그래, 너 잘났다..  누가 찍었는지 아주 잘 찍었네, 걔한테 10만원 주고 지금 동영상을 내 핸폰으로 전송해 줘.. "

호프집 안주인에게 보여주고 담판을 질 작정이다.

 

" 오빠, 나하고 얘기 좀 해요.. "

새벽 2시쯤 가게에 손님이 없어 카운터에 앉아 있는데 미희가 다가선다.

" 그래, 이쪽으로 앉아.. "

옆에 있던 프라스틱 의자를 끌어다 미희 앞에 놓아주었다.   

" ....저, 그만 둘래요.. "

잠시 머뭇거리던 미희가 느닷없이 쏟아낸, 그만 두겠다는 말에 적잖이 당황스럽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녀석에게 무슨 말썽이라도 생긴줄로만 짐작하고 있었건데 너무나 갑작스럽다.

평소 미희의 됨됨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이렇듯 가볍게 처신을 할 아이는 아니다.

" 도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지.. "

" ....그냥, 그만 두고 싶어.. "

제 친오빠보다 나를 더 잘 따르는 미희였다.    아무 이유도 모르는 체 그만 둔다는게 용납이 될리는 없다.

" 너도 생각해 봐라, 니가 그만 둔다는데 쉽게 그러라고 할수 있겠는지.. "

" ............ "

" 안되겠다, 술이라도 한잔 해야지.. "

주방에서 김치 하나만을 가져다 놓고 미희의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 말해 봐, 이유를 알기 전에는 허락할수 없으니까.. "

" ............ "

소주를 원샷으로 털어마신 미희가 거푸 술을 따라 마신다.

" 너도 내 성격 알잖어, 얘기 안하면 그만 둘수도 없어.. "

" 왜 하필 그 여자야? "

한참동안을 뜸 들이던 미희 입에서 쏟아진 말이 더 놀라웠다.

" ....그 여자라니..  미진이 말이냐? "

" ....그 여자는 남자들하고 껴안기도 하고..  더 못된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

" 그래서 그만 두겠다는 말이냐?   시누이 입장으로 보니 미진이가 맘에 안 든다..  뭐,그런 얘기 같은데.. "

" 나는..  오빠 옆에서 몇년을 지키고 있었는데..  하필 그런 여자를.. "

말끝을 흐리던 미희의 눈에 가득 눈물이 고인다.     이내 뺨을 타고 주르르 눈물이 흘러 내린다.

나한테 맘을 두고 있었다는 말로 들린다.     여자에 관해서는 쑥맥이란걸 스스로도 절감하고 살아온 놈이다.

오죽하면 와이프가 견디다 못해 떠나갔고, 미진이에게서 찜을 당할때까지도 몰랐던 팔푼이다.

아무리 그렇기로 몇년을 곁에 두고 있었으면서, 미희의 속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는 없는 일이다.     어릴때부터 친동생과 다름없이 자란 미희를, 언감생심 내 짝으로 생각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무엇하나 반듯하지 못한 나같은 놈에게는 절대로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다.

" 미희야..  오빠를 남자로 봐 줘서 고맙구나.. "

" ............ "

" 그렇지만 나는 아니야..  너한테 어울리는 남자는 따로있어.. "

" ............ "

설사 미희가 여자로 보였을지라도 어릴때부터 친동생처럼 여겼던 아이를, 아무런 꿈조차 없는 나같은 놈에게 기대게

할수는 없는 일이다.

" 나같은 놈을 만나선 안돼..  너도 한두살이 아니잖어, 능력있고 잘생긴 남편감이 얼마나 많은데.. "

" 내가 언제 호강하겠다고 그랬어?   그리고 오빠도 그 정도면 못생긴건 아냐.. "

" 얘가 그래도..  임마,막상 살아보면 그게 아니라니까..   나라고 이혼하고 싶어서 했겠니? "

" ............ "

" 그리고 미진이가 대책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나쁜 여자는 아냐, 오히려 오빠한테는 과분한 여자야.. "

" ............ "

" 나 잠깐 나갔다 올께..  그만 둔다는 얘기는 며칠 더 생각해 보자.. "

갑작스런 미희의 속마음을 듣고서 얼떨떨한 심정이 되어 가게를 나섰다.   더 이상 미희하고 가타부타 따지기도 싫었다.

 

큰 길가 이층에 자리잡은 호프집 '모래시계'는 창가쪽으로 붙여진 테이블 밖의 전경이 좋아 보인다. 

예쁜 에이프런을 걸친 알바에게 맥주와 과일안주를 시키고는 여사장을 모셔오라고 했다.

" 어머~ 사장님이 저희 가게도 오시네요.. "

마흔 안팍으로 보이는 주인여자가 호들갑스럽게 반긴다.

" 뭘 좀 보여드릴게 있어서 왔는데..  날 아시나 보네요.. "

핸폰을 꺼내 남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려고 재생버튼을 눌렀다.

" 사장님은 절 모르겠지만, 전 오빠를 알아요.호홋 ~ "

알바가 가져온 맥주를 받아든 여사장이 가득히 따라서는 내 앞에 놓아준다.

" 오빠라니? "

" 영희 알죠?   영희가 오빠라고 하던데.. "

여사장이 얘기하는 영희라면 이십여년 전에 알던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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