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4

바라쿠다 2012. 5. 3. 17:19

" 빨리 일어나, 무슨 잠을 그렇게 오래 자냐.. "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고 싶었는데, 미진이가 아랫배를 발로 밟는 바람에 달고 맛있는 꿈속에서 깨어났다.

모처럼 쉬는 일요일이라고 내 침대에서 뒹굴고는, 딴에는 여자라고 아침상을 차렸단다.

" 얼굴은 이쁘게 생겨 가지고 아침 잠을 깨우면서 머슴애처럼 그게 뭐냐..   여자답게 부드러우면 어디에 땀띠라도

나는지, 원. "

" 하여간에 별걸 다 따지네, 피곤해 죽겠는데도 아침밥 차려 줬으면 감지덕지지..  아침부터 무슨 소꿉장난이라도

하자는 거야,뭐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나와서 밥이나 먹어, 자기랑 초희하고 백화점 가야 돼. "

" 백화점이라니?   내가 거긴 왜 가는데.. "

" 초희한테 삼촌이 패딩 사 준다고 했어. "

" 내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다고 니 맘대로 그런짓까지 꾸며 대냐..  포장마차에서 밤새 장사해도 겨우 이삼십만원이

고작인데.. "

" 이 인간이 진짜로..    나한테 선물을 사 주길 했나, 용돈을 주길 하나..     날 공짜로 껴안을 때만 좋았겠지, 그 대신에

초희한테 점퍼 하나 사 주라는데 남자가 좀스럽게 돈 타령은.. "

" 나를 좋아 한다고 들이대더니 몸뚱아리 가지고 장사까지 하려고 드네..    칼만 안 들었지, 이게 무슨 경우냐.. "

" 당연하지, 나를 먹여 살리지도 못하면서 그 정도는 해야 되는거 아니겠어? "

도대체가 긴장을 하고 있지 않으면 어디로 튈지 알수없는 여인네다.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 비싼 패딩을 사 주라는건지, 염치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뻔순이다.

남자를 고르려면 돈 많은 놈으로 골라 물어야지, 나 같이 빈티나는 영세민을 울궈 먹을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목줄에 매인 강아지처럼 백화점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 좋게 말할때 인상 펴, 남자가 쫀쫀하기는.. "

초희가 매장에서 옷을 고르느라 한눈을 파는 사이, 미진이가 옆구리를 찌르며 눈을 흘긴다.

" 내가 뭘, 니 말 듣고 옷 사주러 왔는데 또 뭐가 불만이야.. "

" 이왕에 사 줄거면 즐거운 마음으로 해 보라구, 꼭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에그 ~ "

언제부터 만만하게 보였는지 알수는 없지만 사내 대장부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 엄마~  이거 이쁘지.. "

" 그래, 이쁘긴 이쁘다..  가만있자, 가격이 17만원이네..  아가씨~ 거기 파란색 좀 꺼내 봐요.. "

텍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더니 다른 옷을 들쳐 본다.

" 역시~ 내 눈이 보배라니까, 초희야 이게 더 좋은거야..  28만원이다,얘..  이걸로 하자.. "

어린애인 초희 앞에서 어쩌지 못하리라는 약점을 쥐고서는 대놓고 바가지를 씌우려는 속셈이다.

" 에이~ 그래도 이게 더 이쁜데.. "

" 그래, 초희가 입고 싶은걸로 하면 되겠네.. "

애들이 좋아하는 분홍색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초희 편을 들어줬다.

" 너 혼나고 싶어?   엄마가 좋은걸로 골라주면 그냥 입어.. "

자기가 계산할 것도 아니면서 멋대로 결정을 짓고는 초희한테 눈까지 부라린다.

" 그렇게 해라,초희야..  엄마가 골라준게 더 좋은거야.. "

억지로 주머니가 털리는 마당이라 지출이 심하긴 해도, 애한테 선물하는 것이기에 그러려니 참기로 했다.

" 아가씨~ 저기 있는 바지도 꺼내봐여 "

가뜩이나 들어갈 돈이 많은데 40만원씩이나 뒤통수를 맞아야 했다.

어린애 앞에서 표시를 낼수도 없어, 울며 겨자를 먹는 기분으로 쌈지돈을 털어야 했다.

" 오빠~ 고마워..  근데, 나도 속옷 없는데.. "

무슨 마음으로 나를 시험대에 올리는지는 몰라도 어이가 없다.

" 니 속옷이 없는걸 왜 나한테 얘기하는데.. "

" 에이~ 그러지 마라, 내가 이쁜 옷 입으면 오빠도 좋잖어.호호.. "

" 얘가 정말..  꼭 그런식으로 내 혈압을 올려야 되겠냐? "

" 쓰는 김에 그냥 넘어가면 안되냐?   자기야~ 내가 이따가 맛있는거 만들어 줄께.. "

음식솜씨도 형편없는 것이 무슨 횡포를 부리는건지, 깡패와 다를바가 없다.

" 그건, 됐구..  그냥 사 먹으면 안되겠냐? "

" 돈도 못 번다면서 맛있는건 아나보지, 음식 타박하지 말고 그냥 주는대로 먹는 버릇을 길러.. "

하늘이시여, 이렇게 참으면서 제 명대로 살아야 하는건지 묻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려, 삼겹살에 찌개거리까지 장을 봐서는 나한테 계산을 하라고 한다.

50만원씩이나 지출을 시키고도 반찬값까지 치르게 하고는, 당연하다는 듯 찬거리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내 손에

쥐어 주고 초희와 앞서 걷는다.

완전히 제 남편 부리듯 하루 아침에 당당해진 미진이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초희와 셋이서 저녁을 먹는데, 제육볶음이 양념따로 채소따로 버무렸는지 하나도 익지를 않고 서걱거린다.     

그나마 초희가 아무말 없이 먹는걸 보면 어지간히 단련이 됐지 싶다.

동태찌갠지 두부찌갠지 종잡을수 없이 비릿하길래, 단술과 만들어 논 양념장을 넣고 다시 끓여냈다.

" 나보다 훨씬 낫네.호호..  앞으로 반찬은 오빠가 해야겠다.히히.. "

" 내가 왜?   객적은 소리 그만하고 기분좋게 밥이나 먹자.. "

심하게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아이 눈에 선물까지 사 주고는 삐친것처럼 보일까 봐 참아 넘기기로 했다.

저녁을 다 먹자, 백화점에서 산 옷을 들려 초희를 집으로 돌려 보내고는 소주를 마시게 됐다.

" 잘 들어, 이제부터 오빠는 내꺼야.. "

오늘일에 대해서 따지고 싶었는데, 미진이가 먼저 폭탄같은 말로 선수를 친다.

술 몇잔 마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취한 척을 하는건지 종잡을수가 없다.

" 뭐야?   누구 맘대로..  얘가 아주 제 멋대롤세.. "

도대체 내가 뭣 때문에 미진이에게 우습게 보였는지 감조차 잡을수가 없다.

" 내 맘대로, 그냥 그런줄 알어..  그리고 앞으로는 초희도 딸처럼 대해 줬으면 좋겠어.. "

"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얘가 정말.. "

그냥 하는말이 아닌듯 싶지만, 어이가 없어 뭐라고 대꾸할 말조차 떠 오르질 않는다.

" 도우미 생활도 그만 둘거야, 혜영이가 자리를 잡을때까지만 하고 오빠가 하는 포장마차나 넓혀서 같이 할래.. "

내가 하는 말은 도통 들으려고도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늘어 놓는다.

" 내가 언제 너랑 엮어 지겠다고 한적이 있냐, 듣자듣자 하니까 어이가 없네.. "

" 오빠가 하는대로 기다려 볼까도 했는데, 그건 아니야..   차라리 내가 저지르는게 낫지, 그냥 내 말대로 해.."

꿈속에서 조차 생각지도 않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려 한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도 순탄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현실도 불투명해서 스스로 맘에 들지 않는 지금, 도대체 뭘 믿고 저리도 씩씩한지 알수가 없다.

" 니가 뭘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내가 지금 누구를 책임질 형편이 못돼.. "

머리가 나쁜건지, 단순한건지 도통 생각이 없는 미진이를 달래 볼 심산이다.

" 그러니까 내가 오빠랑 같이 장사를 한다잖어, 뭔 남자가 앞뒤까지 재고 그러냐..   나처럼 이쁜 여자가 들이대면

고맙다고 넙죽 받을 일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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