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75

바라쿠다 2012. 6. 22. 00:02

" 일찍왔네.. "

'이차선 다리' 앞에 있는 할머니네 파전집에서 민식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미진이의 호출을 받았다.

" 응, 그렇게 됐어..  오빠, 집에 가자.. "

밑도 끝도없이 들뜬 미진이다.      아무래도 남편에게서 어떤 언질을 받았지 싶다.

" 가게는 어쩌구.. "

" 춘희가 대신 마무리 좀 해줘, 오빠랑 먼저 집에 가 있을께.. "

" 그래 언니, 먼저 들어가세요.. "

춘희와 민식이를 뒤로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 이혼을 해 주겠대.. "

막연하나마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가뜩이나 성미와 인숙이로 인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미진이의

일까지 겹치게 된다면 견디기 힘들 노릇이다.

" 못하겠다고 버티더니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가 뭐야.. "

" 아무래도 그곳에서 여자가 생겼지 싶어.. "

" 기다려 보자구, 서류가 마무리 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

내 스스로도 대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성미나 인숙이의 존재를 모르는 미진이가 새로운 변수로 떠 올랐다.

 

" 미리 술상이라도 차려 놨어야지, 둘이서 깨만 볶고 있었냐.흐흐.. "

토요일 저녁이라 새벽 늦게까지 장사를 한 춘희와 함께 현관으로 들어선 민식이가 느물거린다.

" 하여간에 니 머리속에는 그 생각뿐이냐.. "

" 오라버니가 얼마나 응큼스러운데..   집에 오면서도 사장님하고 언니가 침대 위에서 벗고 있을거라나.호호.. "

춘희가 욕실에 들어간 사이 미진이가 식탁에 안주거리를 올려 놓는다.

" 내일은 몇시부터 움직일거냐.. "

강화도로 찜질을 하러 가기로 약속을 했기에 들떠 있는 민식이다.

" 글쎄, 늦어도 1시쯤엔 출발해야지.. "

" 그럼 집에서 잠잘 시간도 없겠네.. "

벌써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다.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집에 가려면 민식이 말마따나 빠듯한 시간이다.

" 아예 여기서 자고 같이 출발하면 되겠네.. "

" 그러면 몰라도.흐흐.. "

" 어머, 잘 방이 없잖어.. "

" 없긴, 춘희방에서 자면 되지..  야, 민식아..  그냥 술 취한척하고 뭉개고 있어라, 내가 다 알아서 할께.후후.. "

" 역시 친구밖에 없다니까.흐흐.. "

" 이이가..  그러다가 춘희한테 밉게 보이면 어쩔려구 그런다니.. "

"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호호.. "

욕실에서 나온 춘희가, 자기 자신이 도마위에 올라간 줄도 모르고 식탁으로 다가와 앉는다.

" 민식이가 집에서 쫒겨 났대, 내일 놀러가야 하는데 큰일이네.. "

춘희가 민식이를 어찌 보는지 떠보기 위해 없는 말까지 지어내야 했다.

" 여자가 왜 그럴까..   남자한테 너무 사납게 굴면 안되는건데.. "

내 말을 그대로 믿었는지 측은한 눈길로 민식이를 바라보는 초희다.

" 그러게 말이야, 춘희씨처럼 다정스러우면 얼마나 좋겠어..   갈아입을 속옷도 없는데 어쩌냐.. "

" 내일 아침에 내가 사오지, 뭐..   오라버니 사이즈가 얼마야? "

아침에 놀러가는 얘기들을 나누며 술잔을 주고 받다가 민식이가 술에 취한듯 졸기 시작한다.   

" 야, 민식아 벌써부터 졸면 어쩌냐..   안되겠다, 먼저 들어가서 자라.. "

민식이를 부축해서 춘희방에 뉘여놓고는, 셋이서만 몇잔을 더 마셨다.

" 우리도 그만 자야지, 되도록 빨리 출발하자구.. "

" 춘희는 어디서 자니, 쇼파에서 잘수도 없고.. "  

 

운전을 하는 동안 민식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들어섰다.      초지진이라 불리는, 한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회집들이 늘어서 있다.

일어나자 마자 부산을 떠는 바람에, 2시도 채 안된 시각에 강화도에 도착했다.

늘어서 있는 횟집중에 강물이 바라보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경관이 그만이다.

" 어떤걸 시킬까, 춘희씨 좋아하는게 뭐야? "

종업원이 가져온 메뉴판을 춘희의 눈앞에 펼쳐보이는 민식이다.

" 도대체 어제밤에 무슨일이 있었길래 입이 귀에 걸려있냐.후후.. "

" 무슨일은..   취해서 그냥 잤구만.흐흐.. "

춘희의 귀밑이 빨개져서는 눈 둘 곳을 찾지 못하는 중이다.

" 근데, 춘희 얼굴이 왜 빨개지는데.후후.. "

" 아이 참, 형부는.. "

" 어머나, 진짜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그러길래 두사람을 붙여 놓으면 사고가 난다니까.호호.. "

" 언니 ~~ .. "

주문한 회와 삶아진 소라를 안주삼아 반주를 곁들였다.      오랜만에 바깥 바람을 쐬는 미진이와 춘희가 좋아한다.

인생길을 걷다보면 굴곡진 삶을 살게 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렇듯 상처입은 사람끼리 서로를 다독여 가며,

잠시나마 외로움을 견딜수 있는것도 아무나 누릴수 있는게 아닐게다.

" 이제 찜질하러 가야지.. "

" 소화 좀 시키고 가자구..   너무 배가 불러도 안 좋아.. "

회집에서 양파망을 얻어, 매운탕에 들어있던 생선 대가리를 넣고는 강물에 담궜다.       끌어 올려진 양파망에 새끼 손가락

크기의 게들이 달라붙어 올라오자, 처음엔 긴가민가 하던 여자들이 신기해 하며 게를 잡는 재미에 빠져든다.

해수찜질을 하기위해 차를 몰고 외포리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으로 조수석에 앉은 춘희의 머리카락이 뒤로 흩날린다.

 

" 여자들은 알수가 없어..   대충 끝내지, 아주 본전을 뽑는다니까.. "

답답해서 찜질방에서 일찍 나온 우리들과는 달리, 미진이와 춘희는 두시간이 지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 남자들은 알수가 없어, 잠깐도 못 참으면서 여자를 꼬실때는 어찌나 정성을 들이는지.호호.. "

툴툴거리는 민식이를 두고, 춘희에게 정성을 쏟는걸 비꼬며 놀려대는 미진이다.

" 춘희야 워낙 이쁘잖어.흐흐.. "

" 흰소리 그만하고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

초지대교를 다시 건너 해산물을 파는 대명리 수산시장에서 밴댕이 젓갈이며, 반찬거리를 사서 민식이의 차에 실었다.

한강가에 위치한 회집에 들어섰을땐 이미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강가에 위치한 음식점들이 그러하듯이 꽤나 운치가 있던 곳이었다.

워낙 시골스럽고 정감이 가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흔히 도시계획이라는 허울에 따라 새로이 꾸민것이겠지만,

전혀 다르게 변한 대명리의 새 모습은 실망만을 안겨줄 뿐이다.

전방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인지 강변을 따라 철조망이 둘러쳐 있고 그 길따라 회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집집마다 마당에는 평상들이 놓여져 있어, 시골스런 정감이 있었던 기억이다.

말이 좋아 현대식이지, 새롭게 꾸며진 대명항은 어느곳 하나 흙 한점 없는 시멘트 바닥이다.

회를 팔던 식당도 마찬가지다.       빈약한 주머니 사정때문만은 아니더라도, 회 한접시를 두고 몇천원을 흥정하는

그전과는 달리, 번듯한 외관만을 자랑하는 그곳에서 인정을 나누기에는 격세지감이 들 뿐이다.

" 오라버니가 술 마시면 운전은 누가 한대.. "

" 내일 오후에나 가게문을 열텐데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자구.. "

미리 계획했던 대로 일박을 할 예정이다.      성미가 모친과 만나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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