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72

바라쿠다 2012. 6. 15. 10:17

" 잘 바래다 줬니.. "

" 바로 요 앞에서 택시가 오더라구.. "

정인이의 남자친구를 보내고 넷이서 마주 앉았다.

" 그래, 할 말이란게 뭐냐.. "

딸아이가 성미를 만나려는 본론을 들어봐야 했다.

" 할머니가 소영이를 한번 보고 싶대.. "

" 이유가 뭐야.. "

" 할머니야, 인숙이 이모쪽이 맘에 드니까 자주 전화를 했나 봐..   아픈데는 없냐, 병원에는 잘 다니냐 하시면서.. "

모친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자식의 뜻을 몰라 주시니 답답할 뿐이다.

" 참, 노인네하고는..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실까.. "

"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면서, 아빠의 허락없이는 집에 올수 없다고 했나 봐..   할머니가 나한테 소영이

엄마에 대해 물어 보시길래, 잘은 모르고 소영이만 만났다고 했지.. "

딸아이 입장에서도 할머니한테 들볶이기 싫었을 것이다.    실상 성미에 대해서도 아는건 별로 없을 터였다.

" 그랬더니 소영이 엄마 대신 소영이를 만나보고 싶다고.. "

" 소영이에 대해 뭐라고 했길래.. "

" 아빠랑 같이 만났는데 내 동생을 삼고 싶을만큼 맘에 든다고 했어, 아빠도 그 아이를 친딸처럼 이뻐한다고 했구.. " 

" 내가 보기엔 소영이 엄마를 만나보기 전에, 소영이를 떠 보시려고 하는것 같은데.. "

손주를 욕심내는 노인네의 입장으로서야, 어떻게든 성미를 떨궈 내고, 떳떳이 인숙이를 맞이하고 싶을것이다.

" 내 생각도 그래, 아빠..   소영이한테 곤란한 말씀을 하실까 봐 걱정이야.. "

" 자기 어머니 너무 심하신거 아냐?   나한테 야단을 치시든지, 차라리 맘에 안 든다고 떨어지라고 하실 것이지  어린

소영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

성미로서는 당연히 기분이 상할수 있는 일이다.     자식한테까지 못난 꼴을 겪게 하기 싫은것이다.

" 아냐, 어쩌면 그게 더 나을수도 있어..    소영아, 니가 할머니를 만나 봐야겠다..   할머니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당당하게 할수 있겠지? "

" 글쎄, 할머니가 날 싫어할지도 모르잖어.. "

" 그 정도까지 막무가내는 아닌 분이야, 미리 겁먹을 필요도 없고..   어쩌면 엄마보다 니가 먼저 나서는게 더 좋을수도

있어.. "

딸과 함께 소영이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성미와 회포라도 풀고 싶었지만, 매듭이 풀리기 전에는 눙치고 있기도

어색했고, 성미 역시 같이 있고 싶어하는 눈빛을 담고는 있었지만 참아 내는듯 보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이차선 다리'에 도착했다.

늦 손님들이 테이블 두개를 차지하고 홀에 있는 무대에서 노래들을 부르고 있다.

얼추 보기에도 술들이 거나한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서지 싶다.

" 사위감은 만났어? "

손님 테이블에 있던 미진이가 다가와서는 룸을 열어준다.

" 응.. "

" 어때, 맘에는 들어?   그냥 집에 있지, 뭐하러 나와.. "

정인이의 남자친구를 집에서 만난걸로 아는 미진이다.     양심에 꺼리낀다.

" 우리 이쁜이가 보고 싶어서 그냥 있을수가 있어야지.후후.. "

" 오빠, 요즘 변한거 알어?  그전보다 듣기좋은 소리도 많이 하고, 나한테 일부러 잘 하려고 노력하는것 같애.. "

내 마음이 그렇게 시키고 있었다.     남편과 이혼이 됐더라면 남은 인생을 나에게 맡기려 했던 여자다.

성미와 인숙이까지,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 마당에 미진이에게만 죄를 짓는 심정이다.

" 이 사람이..  내가 원래 로맨티스트야, 변하기는..  근데,민식이가 안 보이네.. "

" 차에서 기다린다며 나갔어.. "

룸펜이나 다름없는 민식이가 다시 보이리만큼, 좋아하는 술을 참아내고자 한다.     그만큼 춘희한테 쏟는 애정이 크다고

보여 진다.

" 오늘은 일찍 정리하지.. "

잠시라도 모든걸 잊고 술독에라도 빠지고 싶다.

" 안 그래도 그럴려구, 민식씨가 춘희 준다고 비싼 술까지 사왔어.. "

" 그 녀석 제법이네, 춘희가 그 정성을 알아 줘야 할텐데.. "

" 민식씨를 보는 눈이 틀려졌어, 볼때마다 반기는 느낌이야.. "

 

" 아뭏든지 너도 물건이다, 적당히 좀 해야지.. "

평소보다 가게문을 일찍 닫고 미진이 집으로 왔더니, 민식이가 사 왔다는 과일이 3박스나 거실바닥에 놓여져 있다.

과일 종류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미진이와 춘희가 박스를 열어 정리를 하는데 얼핏 봐도 열가지가  넘는다.

제주도 천혜향을 시작으로 영천의 포도, 상주 곶감, 메론과 산딸기, 블루베리까지 없는게 없을 정도다.

모르긴 해도 도매시장에 부탁해서 지방 특산품을 끌어 모았지 싶다.

양쪽 문이 열리는 큰 냉장고에 들여놓고도 모자라, 그 비싼 특산품이 베란다로 쫒겨가는 수모를 당한다.

" 양주로 세팅할까, 민식씨? "

" 무슨 양주를 가져 왔는데.. "

" 루이 14세.. "

" 페리뇽이라구?..  그게 오백만원이 넘을텐데.. "

" 그건 못 구했어, 이건 그 밑에 150만원.흐흐.. "

다른건 몰라도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많은 재산을 가진 민식이 놈이 부럽긴 하다.

" 그것도 구하기 어려웠을텐데..   춘희가 그렇게나 좋으냐.후후.. " 

" 아이, 참 형부도..  왜 자꾸 그래요.. "

" 그건, 아껴뒀다가 춘희랑 분위기 띄울때나 마시고..   오늘은 그냥 소주로 하자.. "

민식이가 가져온 과일들로 멋들어지게 솜씨를 발휘한 춘희가 과일접시를 두손으로 받쳐들고 식탁에 앉는다.

" 춘희 덕분에 우리가 호강하네.호호.. "

" 언니까지 놀리구.. "

말은 그래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어느 여자든 자신을 아껴주는 남자의 호의에 감동을 하는건 당연지사다.

이제 만난지 얼마 안된 민식이의 관심으로 인해, 나와 미진이 앞에서 우쭐대는 호사를 누리게 된 춘희다.

 

" 우리 말이야..   이번 일요일에 드라이브 가기로 했지, 아마.. "

좁은 식탁에 넷이서 둘러앉아 실없는 농담까지 주고 받으며 웃고 즐기는 중이다.

" 어디로 갈건데.. "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이고 미진이가 흥미를 나타낸다.

" 글쎄, 가까운 강화에 가서 해수찜질이나 해 볼까.. "

서로간에 허물없이 지내게 된 시점이다.    민식이 놈을 위해서 자연스런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 어머 ~ 나, 찜질 되게 좋아하는데.. "

술이 얼큰해 졌는지 춘희가 손뼉까지 치며 좋아한다.

" 그럼, 가야지.흐흐..   춘희가 좋아한다는데.. "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춘희의 말이라면 간이라도 빼 줄 기세다.

" 그쪽이 구경할 곳도 많아서 재밌을거야.. "

" 아닌게 아니라 지하실에만 쳐박혀 있었더니.. " 

미진이도 바람 쐬러 가는게 좋은 모양이다.      기껏해야 수정이와 셋이서 청계산에 갔던게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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