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 좀 그만 흘려라.후후.. "
춘희의 빼어난 자태에 넋이 나간 민식이의 어깨를 두드리는 태성이다. 그제서야 몽롱한 상태에서 정신이 돌아왔는지
멋적게 웃는 민식이다.
" 너무 이쁘다, 얘.. 오빠가 보기에도 잘 어울리지.. "
" 그렇네, 확실히 내가 여자보는 눈이 높다니까..
" 사장님도, 참.. 너무 띄우시네.. "
칭찬은 돌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하물며 여인네가 새 옷을 입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맵시를 확인하는 중이다.
" 다른것도 입어 보라고 해 봐.. "
춘희가 탈의실로 들어간 틈에 미진이와 민식이를 돌아보며 동의를 구했다.
" 그래, 미진씨.. 내가 권하면 싫다고 할테니까 미진씨가 잘 구슬려 봐.. "
" 오늘 민식씨 돈 많이 써야겠네.호호.. "
" 잘 된 일이지, 엉뚱한 여자한테 갖다 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안 그러냐? "
" 오랜만에 너하고 맘이 맞을때가 다 있다, 별일이네.흐흐.. "
처음에는 부담스러워 하던 춘희도, 거울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드는지 권하는대로 옷을 입어 보인다.
더군다나 지켜보는 남정네들의 뜨거운 시선까지 받고 있으니, 사뭇 자신의 몸에 스스로 도취되는 느낌까지 보인다.
민식이가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동안 백화점 1층 입구에서 기다릴때는, 춘희의 쇼핑백이 너무 많은 탓에 미진이와
내가 나눠서 들어줘야 했다.
그도 그럴것이 정장이 무려 3벌에다, 편하게 받쳐서 입을수 있는 치마와 자켓이 각각 3개나 됐고, 민식이가 명품 매장에서
골라준 신발만도 3켤레였다.
거기에다 수입화장품 셋트까지 챙겼으니 세사람의 손이 버거울 정도였다.
모르긴 해도 오늘 민식이가 지출한 돈이 거의 천만원에 가깝지 싶다.
민식이의 승용차인 벤츠 트렁크를 열고 쇼핑백을 차곡차곡 실어 봤지만, 종내에는 뒷 좌석에 쇼핑백 두개를 더 싣고서야
출발할수가 있었다.
" 집으로 가지말고 어디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가자.. "
사거리에서 차를 돌리려던 민식이를 말려서는 가까운 한강으로 방향을 잡았다.
보라매 공원에서 제일 가까운 여의도 선착장 근처에 차를 주차시키고는, 유람선 매표소 앞 선상 카페로 갔다.
따뜻한 봄 날씨라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과, 운동삼아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민공원이다.
팔장을 낀 미진이와 앞서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춘희옆에 바싹 붙은 민식이가 뭔가를 열심히 떠들고 있고, 우려와는 달리
진지하게 듣고자 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기사 민식이 놈이 무게없는 언행으로, 여자들에게 우습게 보이기도 하지만 맘에 드는 여자한테는 헌신적으로 잘하는
스타일이다.
백화점에서 쇼핑백을 차에 옮길때도, 나와 미진이 손에 들려있는 짐은 제쳐두고 춘희의 손에 들린것만 받아든 놈이다.
시원한 한강이 바라보이는 창가쪽에 자리를 잡고는 병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시켰다.
" 오라버니한테 미안하네, 술 좋아하는 사람이 운전땜에 술도 못 드시고.. "
한모금씩 목을 축이고 있는데 춘희가 민식이를 챙겨주고자 한다. 백화점에 가기 전과는 전연 다른 모습이다.
" 괜찮어, 이럴때라도 춘희한테 잘 보여야지.흐흐.. "
" 나도 괜히 민식씨한테 미안하네.. 춘희 옷은 내가 사 줄려고 그랬는데.. "
" 술이 먹고파도 조금만 참아라, 하는 짓이 이쁘면 집에 가서 고기라도 구워 줄테니까.. "
" 저녁에 집에 가서 술 마시게? "
" 응, 그러지 뭐.. 저렇게 춘희한테 목을 매는데, 아직은 둘만 따로 내놓기는 불안하니까.. 어쩌겠어, 자기하고 나하고
옆에 붙어 감시라도 해야지.후후.. "
이왕 민식이와 춘희를 엮어주려고 한 마당에 조금 더 분위기를 가깝게 해 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하여간에 친구라는 놈이.. 그럴거면 집으로 가지, 여긴 뭐하러 왔냐.. "
" 그게 너 때문이지, 왜겠냐.. 술만 마시면 뜸도 안들이고 껄떡댈게 뻔한데, 차분하게 서로에 대해서 파악할 시간도
가져야지.. "
" 그건 오빠말이 맞는것 같애, 여태껏 진지한 민식씨를 한번도 본적이 없으니까.호호.. "
" 어머.. 그 정도로 오라버니가 대책이 없는 사람이유? 호호.. "
춘희도 민식이를 대하는데 어색함이 많이 지워졌는지 편안해 보인다.
" 그렇구 말구, 앞으로는 춘희가 잘 가르쳐야 할거야.. "
"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병주고,약주고 잘하는 짓이다.. "
부드러운 분위기속에 웃고 떠드는데 주머니 속의 핸폰이 떨어댄다. 화장실로 가는척 하며 액정을 보니 소영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라 일행들과 헤어져 성미네 집으로 가야만 했다.
미진이와 민식이에게는 천천히들 시작하라 이르고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다.
아파트 현관앞에 도착을 해서는, 나도 모르게 아랫배에 힘을 주고 심호흡까지 하게 된다.
" 아빠.. 일찍 오셨네.. "
" 그래, 소영아.. 별일 없었지? "
" 별일 없기는, 아주 태평일세.. "
예상대로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는 성미다.
" 나도 짐작 못한 일이야, 소영이도 있는데 눈 좀 풀면 안되냐.. "
현관에서 구두도 벗기 전인데, 허리에 손을 짚고는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 어쭈, 점점.. 국가를 위해 아주 큰 일이라도 한 모양이네.. "
" 이 사람이 근데.. 어쭈가 뭐야, 모양 사납게.. "
아무리 죽을 죄를 졌어도 몸을 섞고 사는 여자에게 쓰레기 취급을 당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 흥 ~ 그래도 남자 대접은 받고 싶은 모양일세.. "
" 엄마 ~ 침착.. 응? 침착.. "
아마도 내가 오기 전에 두 모녀가 꼬인 실타래를 풀기위해 적잖은 의논이 있었지 싶다.
" 그래, 더두 말고 한가지만 물어볼께.. 당신 어머니가 소영이 담임을 며느리 삼고 싶다고 했다며.. "
" 아빠.. 일단 이리로 앉아요.. "
그때까지 서슬 푸른 성미로 인해 자리에도 앉지를 못했다. 소영이가 시키는대로 쇼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 모친한테 내 뜻을 밝혔어, 인숙이가 애기를 낳더라도 당신이랑 살겠다고.. "
" 어이구 ~ 뚫린 입이라고.. 당신 핏줄이 태어나는데 모른척 하겠다는 말이니,지금.. "
아무리 침착하겠다고 작심만 하면 어쩔것인가. 워낙 다혈질인 바탕이 하루 아침에 변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 난 분명히 애기를 낳지 말라고 했고, 당신하고 소영이를 떠날수 없다고 못까지 박았다니까.. "
" 흥 ~ 말이야 청산유수지, 나보러 그걸 믿으란 얘기야? "
사건이 사건인만큼 어차피 인격을 내세워 점잔을 빼기는 글렀지 싶다.
" 왜 못 믿는데, 내가 언제 허튼소리 하디.. "
" 그럼, 당신 핏줄이 나온다는데 어떤 미친 여자가 그 말을 곧이 믿겠냐구.. "
" 그렇게도 정 못 믿겠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소영이를 내 호적에 올리면 믿겠냐? "
성미와 소영이까지 순간적으로 멈칫거리는 기운이 느껴진다. 어느정도는 내 말을 믿는 눈치다.
" 소영이를 호적에 올려준다고 하면, 내가 헬렐레 할까봐 연막까지 피우네.. "
" 니가 딴길을 간대도 막고 싶진 않지만 소영이는 나한테 맡겼으면 좋겠다.. "
" 지금 한말 책임질수 있어? 잘 생각해서 얘기해.. 소영이 앞이야.. "
" 당연하지, 소영이 땜에 당신을 다시 만난건데.. "
" 지금 당장 전화해, 그 여자 이리로 오라고.. "
" .....인숙이를 이리로 부르란 말이야? "
" 그래, 지금 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