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마다 다 틀린 법이야.. 초희는 뭐랄까, 남자와 오래갈 여자도 아니구.. "
남녀가 둘이 만나 서로를 보듬어 주며 살아갈수 있다는건 엄청난 복이란 생각이다.
배우자의 마음속에 어떤 외로움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건 실로 불행한 일이다.
어쩌다 인연으로 맺어 졌으니 서로간의 감정은 접어두고 그냥저냥 참고 사는게 옳을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감정조차
추스리지 못하는게 나약한 인간의 본질이다.
친구라서 옹호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와이프한테 정착하지 못하는 민식이의 괴로움은 자신만의 형벌일수도 있다.
" 남자를 아끼고 품어 주는건 체질적으로 안되는 여자야, 남자의 가슴에 빈 껍데기만 남길뿐이지.. "
" 니가 여자 박사라도 되냐, 잘난척은.. "
어차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면, 제대로 된 여자를 만나기를 바래는 마음이다.
" 일찍 끝내는 것도 다행이야, 좋은 여자를 찾아봐.. "
" 그런 여자가 어딨냐.. 좋은 여자는 지가 다 꿰 차놓구, 나쁜 놈.. "
미진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민식이다. 딴에는 초희에게 벌써 마음을 줬었는지 심사가 배배 꼬여있다.
" 왜 없어, 니가 여자보는 눈이 없어서 그렇지.. 여기 있는 춘희씨만 해도 그까짓 초희하고는 비교도 안돼, 임마.. "
" 여자한테 차이는 남자는 나도 싫네요.호호.. "
" 그렇겠지.. 솔직이 말해봐요, 춘희씨도 여기 사장이 더 맘에 들죠? "
도대체가 모든일이 건성이다. 제 외로움을 보듬어 안아줄 여자를 찾는 큰 일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함이 부족하다.
" 못난놈.. 여자를 그렇게 대하니까 초희까지 우습게 보는거야, 임마.. 말 하나를 건네도 진심으로 대해 봐.. "
" 그래요, 민식씨를 보면 그저 장난삼아 미끼를 던지는 사람처럼 보이더라.. "
미진이까지 나서서 민식이의 실수를 가르쳐 주고자 한다.
" 내가 뭘.. 진짜로 좋아서 그랬지, 무슨 장난을 했다고.. "
" 피 ~ 나한테도 그랬으면서.. 보자마자 뭐든지 다 해 줄것처럼 들이대구선.. "
" 그게 왜 나쁜건데, 맘에 들어서 해 주겠다는게 무슨 잘못이냐구.. "
" 사장님, 이제 보니까 제대로 된 사랑을 한번도 못해 봤나 보다.호호.. 일단 감정이 우선이죠, 그 다음이 선물공세구..
감정도 생기기전에 선물부터 들이미는건, 그 여자를 돈으로 사겠다는 것하고 똑같잖어요.. 무슨 남자가 여자 자존심도
모르냐.. "
옆에서 지켜보던 춘희가 정확하게 민식이의 실수를 꼬집는다.
흔히 남자들이 모르고 지나치면서도 여자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찌 보면 민식이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랄수도 있다. 조금만이라도 여자의 마음을 헤아릴줄 안다면, 결코 해서는 안될
실수를 하는것이다.
평소 꿈꾸던 이상형을 기다리는 여자들도 많지만, 우리네처럼 중년의 나이가 되면 아무래도 자신을 아껴줄 남자를
기다리는 법이다.
물론 여자들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선, 능력있는 남자를 선호하는건 당연한 일일게다.
하지만 능력이 많다손 치더라도, 무조건 여자가 자신을 따라 준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다. 일단은 여자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모든 조건을 떠나 좋아하는 여자에게 호감어린 시선을 보낸다면, 당사자인 여자는 그 남자에 대해 당연히 저울질을 할
것이다.
어느정도 긴가만가 하는 고민을 할때가 여자를 공략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일수 있다.
그 시점을 잘 맞춰 여자가 좋아하는 선물을 안겨준다면, 설사 확신이 들지 않더라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그 한가지만으로
주위 친구들에게까지 과시하려 드는게 여자들의 얕은 속성이다.
" 우리 나가서 한잔하자.. "
아무래도 여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민식이의 허물을 보인다는건 친구로서도 못할 짓이기에, 근처에 있는 막걸리 집으로
끌고 나왔다.
" 솔직하게 털어놔 봐, 그동안 초희한테 얼마나 안겨줬냐.. "
언제 봐도 친절한 할머니가 반겨준다. 막걸리 한 주전자와 파전을 시켜놓고 마주 앉았다.
" 얼마 안돼.. 며칠 가게 문 닫고 쉬자고 오백 건네주고, 다이아 하나 사준게 다야.. "
다이아 반지라면 족히 기백만원은 줬을 터다. 남들에게는 큰 돈이지만 민식이한테는 별게 아니다.
예전에는 서른도 안된 젊은애한테 빠져,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오천만원이나 되는 외제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어찌해서 하룻밤을 보내고는, 자기하고 성적 교감이 맞질 않는다고 흐지부지 끝낸적도 있다.
겉 모습만 보고는 이제 서른도 안된 여자를 데리고, 무슨 팜므파탈 같은 환상적인 몽환을 기대하는 그런 놈이다.
여지껏 사귀던 여자를 몇달이상 길게 만나는걸 본적이 없을 정도다.
" 니 돈, 니가 맘대로 쓰는데 내가 참견하기도 싫지만, 여자를 그런식으로 좋아하니까 모두가 너를 떠나는거야.. 니가
아무리 큰 돈을 써도 여자가 감동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구.. "
각자의 개성이 있고 나름대로 인생관이 다른것처럼, 아무리 물질로 여자를 감싼다 하더라도 그걸 받아드리는 여자 역시
대응하는게 틀릴수 밖에 없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에게 잘해주는 남자에게 호감이 가는건 당연하겠지만, 번듯하게 본 부인이 지키고 있는 마당에
하염없이 그 남자만을 기다리는 여자는 별로 많지 않을것이다.
" 그럼, 나보러 어쩌란 말이야.. "
마음을 열었던 여자에게 팽을 당한 민식이의 속도 좋을리는 없을것이다. 막걸리를 들이붓는 모양새가 안돼 보인다.
" 니가 주도권이 없는게 문제야.. 아무리 맘에 드는 여자라 할지라도 절대 주도권을 주면 안돼.. "
" 그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이냐? "
" 여자는 말이다, 정에 약한 동물이야.. 니 결점이 탄로가 날때까지 시간이 필요해, 그 시간이 오래가면 갈수록 그만큼
정이 깊어질테고.. 나중에는 여자쪽에서 헤어지고 싶어도 그놈의 정때문에 떠나지 못한단 말이지.. "
" 그걸 이제서야 가르쳐주냐, 이 나쁜놈아.. 근데 말이야, 춘희가 정에 약해 보이지 않냐? 흐흐.. "
도대체가 통제 불능인 놈이다. 초희한테 당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또 껄떡대는 민식이다.
" 새로온 춘희 말이야, 믿어도 될까? "
민식이를 배웅해 주고 가게로 돌아왔더니 미진이가 빈 룸으로 잡아 끈다.
" 소개해 준 사람이 믿어도 괜찮다고 하긴 했는데, 왜.. "
" 이 근처에 빈 방이 없겠냐고 물어보대, 당장에 갈곳도 없는 모양이야.. 딸이 쓰던 방을 치우면 어떨까 싶어서.. "
하기사, 남편도 없고 딸도 시집간 마당에 넓은집에 덩그러니 혼자 사는것도 쓸쓸할 것이다.
" 글쎄, 괜찮을까.. "
" 어때, 훔쳐 갈 재산이 있는것도 아닌데.호호.. 성격이 좋아서 심심하지도 않겠구.. "
일단은 집으로 데려가서 하루밤을 재우고, 내일쯤 소개를 시켜준 후배 와이프에게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홀이 한가할때도 쇼파에 앉아있는 미숙이와는 달리, 잠시도 자리에 붙어있질 않고 일을 찾아서 하는 춘희다.
딱히 가야할 곳이 없어진 내 신세와 비슷하다. 하릴없이 먹자골목을 서성이다 가게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식구들을
퇴근시키고 미진이의 집으로 향했다.
" 사장님한테 새로 생긴 딸이 있다던데.. "
집에 도착해서 미진이가 씻는다고 욕실로 들어간 사이 춘희가 말을 걸어온다.
가끔 당구장에 놀러가는 소영이를 말하는 것일게다. 후배 와이프가 언질을 했지 싶다.
" 여기 있는 언니딸은 아니니까 모른척 해 줬으면 고맙겠네.후후.. "
" 내가 실수라도 할까봐 조심스러워서.. "
딴에는 나와 미진이 사이에서 본인이 해야 할 처신이 궁금했을 터다.
" 알아도 별일 없겠지만, 아직은 알려줄 때가 아니거든.. "
" 무슨 얘기가 그렇게 재밌는데, 춘희도 씻어.. 편한 옷으로 준비해 줄께.. "
욕실에서 나온 미진이가 안방으로 들어가, 춘희가 입을 옷을 가지고 나와서는 욕실문을 열고 넣어준다.
" 소주 마실거지.. "
내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주방으로 간 미진이가 찌개를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