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65

바라쿠다 2012. 6. 5. 18:02

많은 술을 먹어서인지, 미진이와 같이 있어 마음이 편했는지 세상 모르고 곯아 떨어진 탓에 정오가 지나서야 눈을 떴다.

침대옆 교탁에 미진이가 가져다 놓은 반바지와 반팔티를 입고 안방을 나섰다.

마주보이는 주방 가스렌지에는 냄비가 끓고 있고, 미진이는 거실쪽 베란다에서 빨래를 걸고 있다.

" 몇시에 일어났어, 잠 좀 더 자지.. "

내가 엊저녁 입고 왔던 옷들이 건조대에 걸리고 있다.

" 집안일이 많이 밀렸어.. "

인기척을 느낀 미진이가 고개를 돌리고는 환하게 웃는다.    

지난밤 복잡한 심경을 털기위해 다소 격한 몸짓으로 거칠게 다뤘는데도 참고 받아준 그녀였다.

" 한사람을 더 보충하면 일찍 퇴근해도 될거야, 그동안 지켜 보니까 수봉이는 믿어도 되겠더라.. "

" 난 괜찮다니까, 나만 힘든가..  수봉이도 마찬가지지.. "

항시 자신의 편함보다도 남을 위하는 배려가 몸에 배인 미진이다.

" 조금만 더 두고보자, 되도록 가게에 있는 시간을 줄여야지.. "

" 오빠나 몸 관리 잘해, 속상한 일이 있어도 성질 좀 죽이고.. "

저렇듯 상대를 먼저 챙기려는 미진이의 깊은 속내를 어찌 이뻐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다른건 몰라도 수정이와 미진이가 바뀌어진건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다.

" 이리와 봐, 오늘 더 이뻐 보이네.후후.. "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들어오는 미진이를 잡아 끌어 무릎위에 앉혔다.

" 아이, 왜 그래 식전부터.. "

" 어허 ~ 이 여자가..  밤에만 이뻐하란 법이라도 있나.. "

가슴에 손을 대고 밀며 앙탈을 부리는 미진이의 엉덩이를 감싸안고 가슴골에 고개를 파 묻었다.

" 하지마, 오늘부터 시작하나봐.. "

" ............. "

아침부터 어찌 해볼 생각은 아니었고 단지 수고하는게 고마워 다독여 주고 싶었을 뿐인데, 다행히 달거리를 한다는

말에 못이기는 척 미진이를 놔 줬다.

미진이가 차려준 밥을 먹고도 한참을 쇼파에 누워 뒹굴거리는데 당구장을 하는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며칠전 후배녀석의 와이프한테 부탁한 사람을 만나보라는 것이다.

택시로 이수역에 내려서도 성미에게 갈수없는 신세가 한심스럽다.

소영이에게서도 이렇다 할 연락이 없는지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알수가 없다.

 

당구장에 들어서니 안쪽 쇼파에 앉아있던 후배녀석이 일어선다.

와이프와 소개 시키려는 여자도 같이 고개를 돌린다.

" 아주버님 오랜만이네요.호호.. "

" 네, 그러네요..  잘 지내시죠.. "

" 안녕하세요.. "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하는 그녀의 얼굴이 가무잡잡하다.     얼굴뿐 아니라 드러난 목선이며 팔까지도 햇빛에

그을린듯 검은 피부에  윤기까지 흐른다.

" 반가워요, 가만있자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어디 커피숍이라도 가는게 좋겠네.. "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손님들이 띄엄띄엄 있는 곳에서 얘기를 한다는것도 모양새가 좋지않아 보인다.

" 요 옆 건물 이층에 카페가 있어요, 그쪽으로 가시죠.. "

후배 녀석이 일러준대로 두 여자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카페쪽으로 움직이며 처음 만난 그녀를 자연히 곁눈질 하게 된다.     

아담한 키에 가벼운 차림이지만, 청바지에 하이힐을 신은 걸음걸이가 당당해서인지 의외로 늘씬하게 잘 빠져 보인다. 

카페에 들어가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다리를 꼬아 걸친 폼이 남자앞인데도 자연스럽다.

" 제가 잘아는 후배에요, 믿을만 하구.. "

" 춘희에요, 올해 37이고..  페이는 어떻게 되나요? "

자신을 소개하려는 언니의 말을 끊고 나설만큼 당돌한 면도 있고, 첫 대면에 돈 얘기를 꺼낼 정도로 거침없어 보인다.

" 내가 해줄수 있는건 80뿐이고 각자 받은 팁을 나누면 하루에 4 ~5만원 되려나..   지금 있는 식구들 얘기를 직접

듣는게 더 정확하겠지만, 한달에 한 이백정도 되지 싶은데.. "

성격 자체가 시원한 사람에게는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해 주는게 맞다.     조금이라도 부풀리거나 괜스레 안되는 희망을

심어 줬다가는 신뢰를 잃어버리기 쉽상인 까닭이다.

" 근무시간은 몇시간이나.. "

" 여섯시에 출근해서 새벽 두시에 문을 닫으니까 8시간 정도라고 보면 되겠네요.. "

" 일찍 끝나는 편이네, 새벽 4,5시쯤 끝나지 않겠냐고 애길 해 줬는데..   괜찮겠다, 얘. "

" 이 차림으로 가게에 가봐도 되겠어요? "

첫인상에서 느낀대로 시원스런 성격이다.    치마를 입지 않고 오늘 하루 일해 보겠다는 말로 들린다.

" 옷차림이야 어떨려구..   같이 가 봅시다, 가게에 있는 사람들하고도 맘이 맞아야 할테니까.. "

 

가게로 출근해서 장사준비를 하던 식구들과 첫 대면을 하게 된 춘희다.

그녀의 시원스런 말투가 맘에 드는지 미진이나 나머지 식구들도 호감을 보이는 눈치다.

" 수봉이가 나이는 어려도 제일 경험이 많아요, 우리도 수봉이 말이라면 잘 따르고.후후.. "

주방에서 일하는 벌교 아줌마를 빼고 중앙 테이블에 커피를 한잔씩 타서는 둘러 앉았다.

" 에이 ~ 사장님도 밑천 안 들어가는 말만.호호.. "

" 아냐, 진짜야..  나도 수봉이가 없었다면 여기서 일 못했을거야.. "

역시 춘희에게 호기심이 이는지 미숙이가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 언니야 말로 이뻐서 손님들한테 인기가 짱이잖어.. "

여자들 셋이 모이면 뭐가 깨진다더니, 넷이서 한마디씩만 해도 금새 분위기가 어수선해 진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중인데 입구에 민식이 놈이 들어선다.     얼굴이 퀭하니 엊저녁 과음한 표시가 난다.

속이 꽤나 쓰릴텐데 또 술을 마시겠단다.      미숙이와 수봉이를 홀에 남겨두고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 어제는 무슨일로 그렇게 꼭지가 돌았냐.. "

이미 수봉이한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짐짓 모른척 했다.

" 마누라가 그러더라, 너랑 아직도 붙어 다니냐구.. "

" 니 마누라도 어지간하다, 왜 나만 미워하는지 모르겠네..   지 남편을 지가 간수해야지, 내가 망쳐 논것도 아니고.. " 

" 내 친구중에 십자가 질 놈이 너밖에 더 있냐.. "

" 참, 민식씨 와이프도 이상하네..  그게 왜 태성이 오빠 잘못이야, 아무 여자한테나 껄떡대는 민식씨가 나쁜거지.. "

내가 민식이 와이프한테 누명을 쓰는게 억울하다는 듯 미진이가 눈까지 흘긴다.

" 그것 봐, 내가 그럴줄 알았어..  진작부터 둘이 썸씽이 있었어,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들이대도 싫다고 했지.흐흐.. "

미진이가 내편을 들고 나서자, 민식이 놈이 이제서야 꼬리를 잡았다는 듯 느물거린다.

" 시끄러, 임마..  남자 녀석이 왜 그리 입이 싼지.. "

" 수정이가 그만 둔 이유가 있었구만..   그나저나 언제 이렇게 이쁜 처자가 있었대.흐흐.. "

여지껏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춘희한테 눈을 돌린 민식이가 새로운 사냥감을 발견한 표정이다.

" 반가워요, 춘희에요.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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