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64

바라쿠다 2012. 6. 4. 13:00

" 이 시간에 사장님이 웬일이래요.. "

얼추 12시가 다 된 시간에 '이차선 다리'에 들어서자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치우던 미숙이가 반긴다.

" 나도 한잔하고 싶어서.후후..   언니는.. "

소영이 모녀를 생각하면 마음속에 커다란 돌덩이를 안은것 같아, 술이라도 마셔야지 싶어 들렸건만 카운터에 있어야 할

미진이가 보이지 않는다.

" 민식씨랑 같이 있어요, 룸에.. "

이 시간이면 '아지트'에 앉아 초희랑 놀고 있어야 할 녀석이 이곳에 왔을때는 무슨일이 있지 싶다.

문을 열고 들어선 룸에서는 수봉이까지 셋이서 양주를 셋팅해 놓고 술들을 마시는 중이다.

"  그냥 니가 놀던 물에서 놀지, 여긴 웬일이냐.. "

" 양반은 못되네, 그렇게 귀가 간지러웠냐..   대 놓고 흉 좀 볼려고 했더니.. "

작은 양주병이 3개째다.    전작이 있었는지 화장실을 가는 민식이의 걸음걸이가 위태롭다.

" 기분 나쁜일이 있었나 봐, 물어봐도 대답도 안하고 저렇게 술만 마시네.. "

" 아무래도 초희언니하고 무슨일이 있었나 봐, 내가 통화 해 볼께요.. "

수봉이가 핸폰을 들고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미숙이가 들어선다.

" 수정이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가게가 어찌 돌아가냐고 꼬치꼬치 묻네.. "

아무래도 일진이 사나운 날이지 싶다.     인숙이와 소영이 모녀의 문제로 골치가 아파서 미진이이한테 위로라고 받고

싶어 왔더니,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민식이 놈이 술기운을 빌리고 있고, 거기에다 수정이까지 거론되고 있다.

" 뭘 알고 싶어서 미숙이한테 정탐질을 하나 몰라, 궁금한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볼 일이지.. "

미진이가 내 눈치를 보며 기분 나쁘다는 듯 티를 낸다.

" 가게일까지 참견할려면 와이프 대신 들여 앉히던가, 그러기 전에는 만나지 말자고 했다네.. "

'아지트'의 초희랑 통화를 한 수봉이가 말을 전한다.    초희한테 빠져도 어지간히 빠진 모양이다.    

여우같은 초희가 한번 떠 보느라고 한짓이 분명한데, 애들처럼 감정에 휩싸여 비운의 로맨스를 흉내 내려고 한다.

" 일단 민식이를 데리고 나갈테니 오늘은 대충 마무리를 짓도록 하라구.. "

어수선한 가게 분위기를 정리하려면 민식이를 집에다 바래다 줘야 했다.

 

술을 더 마시자고 버티는 민식이를 끌다시피 해서는 집에 데려다 줬다.

전생에 악연이 있지 싶은 민식이 와이프와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수정이게게서 핸폰이 왔다.

" 무슨 일이냐, 난 볼일이 없는데.. "

~ 난 하고싶은 얘기가 많어, 지금 잠깐 만나.. ~~

얼굴을 마주하기 싫었지만, 혹여 미진이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수도 있는지라 마지못해 만나 보기로 했다.

수정이 집앞에 있는 호프집에서 만나 맥주를 시켰으나, 입에 대지도 않은채 한동안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얼른 해, 빨리 가봐야 돼.. "

" 이런식으로 끝낼거야, 박사장도 만났다면서.. "

눈망울에 서운한 빛을 가득 담은 수정이가 입을 연다.

" 끝내기로 했잖어, 새삼스럽게 다시 얘기해서 뭣하려구.. "

" 박사장하고 특별한 사이도 아니고, 몇번 만났을 뿐인데..  오빠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조금 이해해 주면 안되니? "

" 그래, 이해 못하겠다..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어..  내가 없으면 더 편할거 아니냐.. "

여지껏 사귄 정을 봐서라도 부드럽게 매듭을 짓고 싶었으나, 잔 정을 남긴다는 여지는 주기 싫었다.

조금의 빈틈도 보이질 않자, 꾹 다문 수정이의 입술로 봐서는 결심을 굳힌듯 싶다.

" 은행에 입금된 돈이 끝인거야? "

'이차선 다리'를 오픈시킬때 보증금과 인테리어 할때 들어간 돈만을 보냈고, 성미의 국밥집을 차리게 됐을때 개인적으로

빌려간 돈은 아직 입금을 못시킨 것이다.

" 그건 아직 못 보냈어, 조만간 넣어 줄테니까 그렇게 알라구..  내가 떼어 먹을 사람으로 보이냐.. "

여유가 없는 바람에 그 돈까지 함께 보내지 못한게 내내 찜찜했었다.

" 그건 아니지만.. "

그 돈을 빌릴때만 하더라도 수정이는 그 돈을 나에게 거저 주는듯 선심까지 썻다.     하지만 그건 자신과 앞날을 같이

한다는 전제하에서 인심을 베푼것이지, 이런 상황에서는 아닌것이 바로 세상 인심사일 것이다.

" 니가 새차를 뽑아 주겠다고 했을때 내가 싫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런일이 생길까봐 그랬던거야..   너는 부담갖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아니거든..  한때는 좋게 만나던 인연이 이런식으로 지저분하게 끝날수도 있는 법이지.. "

" 누가 그러구 싶대, 아무런 설명이 없으니까.. "

" 왜, 니가 사준 옷이며 선물까지 몽땅 토해 놓을까..  아무리 우리가 찢어진 사이라지만, 더 이상 모양새를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

수정이야 할말이 많이 남았겠지만, 그건 끊어진 인연에 대해 실오라기만한 기대감 때문일것이다.    

이 정도로 매몰찬 모습을 보여준 만큼 더 이상 앉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정신없이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다.

인숙이 문제로 모친과의 한판 승부를 시작으로 딸과, 소영이 그리고 성미까지 만나서 가슴앓이를 했다.

거기에다 수정이까지 만나 일부러 과장된 독한 모습까지 보여 줘야만 했다.

지쳐버린 정신을 달래기 위해, 당연하다 싶을만큼 발길이 자연스럽게 미진이에게로 향하게 된다.

" 벗어.. "

현관문을 열어준 미진이가 막 샤워를 했는지 머리가 젖어있다.

" 오빠.. "

평상시와 다른 내 모습에 미진이가 당황해 한다.    쇼파에 등을 기대고는, 어쩔줄 몰라 하는 미진이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 벗으라니까, 빨리.. "

잠시 내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던 미진이가, 홈드레스 식으로 된 잠옷을 어깨로부터 벗어 내린다.

내려지는 잠옷이 젖가슴과 허리를 지나더니, 사타구니께에 이르러서는 수줍운듯 손으로 잠옷을 말아쥐고 있다.

" 그 손 치워.. "

내 말이 이어지자 손에서 떨구어진 잠옷이 미진이의 발목을 감싼다.

그렇게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데도 부끄러움이 남았는지, 허리가 틀어지고 한쪽발이 겹쳐지며 그곳을 가리고자 한다.

" 좋구나, 아직 쓸만해.. "

" 요즘..  운동을 못했어.. "

어쩌면 여자의 속내는 다 똑같을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컷의 눈에 더 이쁘게 보이고 싶은 암컷이 되는..

기분이 좋으면 좋은대로, 혹은 나쁘더라도 내 말을 따르려는 준비가 항시 되어있는 미진이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순응하고자 하는 미진이의 마음은 절대로 약점이 될수 없는것이고, 오히려 집에 들어간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장점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그런 미진이에게서 인숙이와 성미로 인해 실타래처럼 꼬여 지쳐버린 내 영혼을 위로받고 싶다.

" 이리와, 나 좀 안아 줘.. "

다가온 미진이의 손을 잡아 쇼파위로 이끌어 앉게 한 후에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맨살에서 풍기는 미진이만의 옅은 향기가 코 끝을 자극한다.

" 수정이를 만나고 오는 길이야.. "

" .............. "

" 완전히 끝냈어, 당신하고 같이 있는걸 봐도 시비를 걸수 없을거야.. "

미진이가 고개를 숙여서는 입을 맞춰 온다.    그녀의 젖은 머리가 내 얼굴을 덮어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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