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62

바라쿠다 2012. 5. 30. 18:48

나에 대해 궁금해 했던 박사장이, 본전도 못찾고 자신의 바람끼만 여진이에게 폭로시킨 꼴이 돼 버렸다.

더군다나 자신의 와이프가 있는 자리에서, 수정이의 전 애인한테 훈계까지 들은 마당이다.

여러사람이 지켜 보는지라, 더 이상 박사장을 핍박한다는 것도 모양새가 사나워 그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벌레씹은 얼굴이 된 박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여진이도 곧 뒤를 따라나갔다.

어수선 해 진 회식 분위기를 우스개 소리로 다독이자, 당사자가 아닌 식구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떠들며 즐거워 한다.

마신술로 인해 얼추 기분들이 up된 식구들을 이끌어 '이차선 다리'에서 출입문을 잠근채, 두어 시간동안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맘껏 스트레스를 풀게끔 해 줬다.

각자의 집으로 보내기 위해 택시를 태워 주면서도, 미진이가 20만원씩을 넣은 편지봉투를 각자에게 찔러 주기도 했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내내 팔에 매달리는 미진이다.      심지어 택시안에서 조차 두른 팔짱을 풀지 않는다.

수정이와의 관계도 완전히 끝난듯 싶고, 대신 내 옆자리를 꿰찰수 있어 편한 마음이 들었을 터이다.

" 술 더 마실거야? "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나온 미진이가 머리를 털며 내 옆으로 다가와 앉는다.    촉촉하게 젖은 살 냄새가 풍긴다.

" 그만 마셔야지, 이젠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힘에 부치네.. "

" 피이 ~ 말로만..  하루도 그냥 건너가는 날이 없으면서.. "

" 그랬나..  조금 자제 좀 해야지..  산에라도 다녀야겠어.. "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전보다는 피곤한걸 많이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숙취가 금방 가시질 않고, 속을 긁어댈

때가 많아진 것이다.     

어쩌다 거울을 보노라면 눈이 충혈되어서 마주보기가 영 거북살스럽다.

" 나한테만 술 마시지 말라고 하지말고, 오빠도 좀 조심해.. "

"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라.후후..   그리고 당분간만 참어, 언제까지 술장사 시키겠냐.. "

평생 궃은 일이라곤 해 본적이 없던 미진이에게 힘든 짐을 떠 넘긴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 어차피 심심했었는데, 뭐..   근데, 나 체질인가봐..   모르는 남자들이랑 술 마시는것도 재밌는거 있지.호호.. "

" 조심해, 임마..   그러다 수정이 짝 날라.. "

" 농담이야, 오빠..   나도 바람 날까봐 걱정하는거야.호호.. "

 

월요일 저녁이다.      

미진이가 가게로 출근하는걸 보고는,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하고자 쉬고 있는데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 그래, 아범은 어쩔 생각인고.. "

딸까지 있는 자리에서 인숙이가 임신한것에 대해 내 의향을 묻는 모친이다.      

" 지울 생각이 없다네요..   무슨일이 있어도 낳아야 되겠다고.. "

" 당연하지, 하늘이 점지해 주신 생명을 지우다니..   천벌을 받을 일이지, 그럼.. "

예전의 사고방식대로 살아오신 어른인지라, 딸 하나로 끝낸것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서운해 하셨다.

" 제 나이가 벌써 50인데, 이제 태어날 애를 제대로 간수나 하겠어요? "

" 그건 아닐세, 누구나 제 밥그릇은 가지고 태어 나는거야..   아범이 걱정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살 길이 정해져 있다구.. "

사주팔자를 무시할수만은 없겠지만, 힘들게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게 요즘 세상이다.

오죽하면 어려서부터 영어회화나, 필요한 것들을 심어 주려고 부모들이 극성을 떨겠는가.

" 어머니 생각보다 세상은 많이 변했어요, 아이가 자립할 나이도 되기전에 내가 능력이 부치게 되면 그 꼴을 어떻게

바라 보겠냐구요.. "

" 내가 아범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건만 배포가 그리 작은지.. "

" 태어날 아이의 인생이 달린겁니다, 내 욕심만 차려서 될일이 아니라니까요..  제 입장에서는 정인이 뒤를 봐 주는것도

힘든 형편이에요.. "

"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인숙이나 한번 부르게.. "

아무리 조리있게 설명을 한다손 쳐도, 손주 욕심에 눈이 먼 모친은 애시당초 내 의견 따위는 없는 분위기다.

" 불러서 어쩌시려구요, 전 따로 살고자 하는 여자가 있으니까 괜히 인숙이에게 부담주지 마세요.. "

" 그건 안되지, 태어날 애기한테 지 아비 성을 붙여줘야 마땅하거늘 다른 여자라니.. "

" 죄송하지만 어머니랑 더 이상 나눌 얘기가 없습니다, 전 제가 좋아하는 여자랑 살겠습니다.. "

어차피 고집이 센 모친과는 결말을 볼수 없다고 예상을 했었다.     나 역시 소영이를 모른척하고 살 배짱은 없는 놈이다.

노기에 휩싸인 모친과 걱정스레 추이를 지켜보던 딸을 뒤로 하고는 집에서 나왔다.

 

" 뭐해, 우리 막내가 한잔 따라야지.. "

인숙이의 임신을 알고나서 복잡해 지리란 생각을 떨칠수 없었지만, 직접 겪고보니 견디기 힘들만큼 마음이 심란하다.

성미가 있는 국밥집에 가서 술을 마실까도 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소영이에게도 실없는 사람으로 비쳐질까봐 내심 걱정도 됐었기에 집에 있는 애를 불러냈다.

" 엄마한테 가시지, 왜 이곳으로 왔어요.. "

내 잔에 술을 따르며 사거리 건너편에 있는 돼지갈비집으로 왔는지를 궁금해 한다.

" 임마, 그걸 몰라서 물어?  우리 이쁜 공주랑 데이트 하고 싶어서 그러지.. "

나를 믿고 따르는 소영이에게 실망을 주기 싫었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형편없는 인간으로 전락해 버릴걸 생각하니

아득해진다.     

아무 생각없이 여자에게 껄떡댄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 나야 좋지만 엄마가 알면 또 삐질텐데.호호.. "

" 삐지면 대수냐, 우리 막내가 워낙 이쁜걸 어떡하누.후후.. "

소영이를 앉혀놓고 꼬여버린 내 신세를 스스로 한탄하는 중에, 핸폰이 울리길래 액정을 보니 딸 정인이다.

" 또 무슨 일이냐.. "

~ 어디 계세요, 그렇게 그냥 가 버리시면 어떡해.. ~~

" 앞에 소영이가 있으니까 잠깐 기다려라..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께.. "

소영이가 지켜보는 곳에서 해야할 얘기가 못 되기에 갈비집 밖으로 나와야 했다.

" 넌 아빠가 어쨌으면 좋겠냐.. "

~ 할머니가 소영이 엄마 있는곳을 가르쳐 달라는걸 모른다고 했거든, 소영이가 알게 될까봐 나도 속상해요.. ~~

" 참,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할머니야 말로 자기 욕심땜에 잘못도 없는 사람이 상처 입는다는걸 왜 모를까.. "

~ 몇달후면 할머니 팔순이잖어, 그전에 인숙이 이모를 데려와야 한다고 자꾸 저러시니.. ~~

" 뾰족한 대책이 없네..  어쩜 좋으냐, 소영이한테 못볼 꼴을 보이게 생겼으니.. "

당사자인 인숙이나 성미한테도 큰일이겠지만, 어린 소영이에게 이런꼴을 보여야 한다는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

~ 어차피 소영이도 알게 될거라면 아빠가 직접 얘기하는게 더 낫지 않겠어.. ~~

" 그 생각도 하긴 했는데,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영 자신이 없네.. "

~ 아빠.. 내가 대신 소영이하고 얘기해 볼까? ~~

 

" 오래 기다렸지, 미안하다.. "

딸 정인이가 나서서 소영이한테 얘기를 해 보겠다는게 말에 무거운 짐 하나를 벗어놓은 기분이다.

" 혹시, 정인이 언니야? "

" 그래, 언니랑 얘기 좀 하느라구.. "

잔에 남아있는 소주를 털어 넣었다.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찌꺼기가 씻겨져 내려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 나도 언니 보고 싶은데.. "

" 안 그래도 지금 이쪽으로 온단다.. "

" 꼬 ~래 ~ 히히.. "

조금후면 황당스런 얘기를 들어야 할 소영이의 천진스런 웃음마저 부담스럽다.

" 소영이는 정인이 언니가 맘에 드니? "

" 꼬 ~럼.. 히히.. 처음 봤을때부터 완전 내 스타일이야.. "

소영이가 따라주는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출입문이 열리고는 정인이가 들어선다.

" 언 ~냐.. 히히..  무쟈게 반갑다.. "

" 그래, 나도 소영이가 무쟈게 보고 싶었는데.호호.. "

" 너도 술 한잔 하지 그러냐.. "

정인이에게 술을 따라 주려는데 소영이가 술병을 채간다.

" 언니야, 언니도 우리 클럽에 가입해라.. "

소영이가 정인이 잔에 술을 따라 준다.      정인이가 따뜻한 눈길로 소영이를 바라본다.

" 무슨 클럽인데..  먹자파 클럽은 아니겠지, 나 요즘 다이어트해야 하거든.. "

" 아빠가 술 드실때 첫잔은 무조건 내가 따라야 하거든, 언니도 그렇게 해봐..  내가 따라주는 술이 제일 맛있어.히히.. "

" 정말 ~ 술맛이 확실히 틀리네.호호..   좋아, 나도 클럽에 가입했다, 까짓거.호호.. "

젊다는 것이 저래서 좋은것일까 싶을만큼 두 녀석의 분위기가 밝아짐이 부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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