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61

바라쿠다 2012. 5. 29. 13:10

미진이와 같이 약속장소인 고기집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박사장이 놀랜 토끼눈으로 쳐다본다.

그도 그럴것이 제 와이프의 친구인 영희의 애인으로 자리 매김됐던 내가, 미진이와 같이 들어서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영업시간에는 '이차선 다리'에 나간 일이 없었기에 그곳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던 탓이다.

수정이가 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것이다.      굳이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와

'이차선 다리'를 꾸려나간다고 말했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손님 입장으로만 드나들며 수정이에게 눈독을 들이던 박사장은, 미진이와 수정이가 동업을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게다.

미진이와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박사장의 시선을 뒤로 하고, 여진이의 안내에 따라 예약한 방으로 들어서니

미리 와 있던 식구들이 반긴다.

" 기다리기 지루해서 우리끼리 한잔하는 중이에요.. "

미숙이와 수봉이, 주방 담당인 벌교 아줌마는 진작부터 꽃등심을 숯불위에 올려 술들을 마시는 중이다.

술이 약한 벌교 아줌마는 혼자서만 얼굴이 불콰하다.

" 우리 미스 벌교는 술이 들어가니까 더 이뻐졌네.후후.. "

" 아이 ~ 사장님 놀리지 말아여.. "

" 놀리긴..  내가 보기에도 맛있게 잘 익었는데, 뭐.호호.. "

미진이를 앞세워 새로이 '이차선 다리'를 끌어감에 별다른 어색함은 없을지라도, 이렇게나마 식구들에게 새롭게 바뀐

분위기에 대해 공지를 할 필요가 있었다.

더불어 식구들간에 화목하게 서로를 다독여 주는데 있어서, 술이 가진 의미는 생각외로 크기 때문이다.

얼마나 수정이가 독선적인 행동을 했으면, 사람이 바뀌었음에도 오히려 식구들이 그걸 반기는 분위기다.

 

의례적으로 새로운 분위기에도 재밌게 지내 줄것을 부탁하며 웃고 떠들고 있는중에, 여진이가 들어와서는 잠시 보자고

손짓을 한다.

" 저이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궁금해서 난리네..  어쩌지? "

박사장이 나와 '이차선 다리' 식구들이 온것에 대해 어찌 된 일이냐며 따지더란다. 

" 같이 우리 테이블로 오지 그래, 박사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번 떠 보자구.. "

구석진 복도에서 얘기를 나누기도 어려운지라, 정면 돌파식으로 만나는것도 괜찮치 싶었다. 

" 그러다 괜한 의심이라도 사면 어쩌려구.. "

" 의심 살 일이 뭔데, 어차피 박사장이 자기 입으로 수정이를 만나고 다닌다는걸 밝힐수도 없을테고.. 여진이만 모르는척

하면 별일은 없을거야.. "

" 오빠랑 같이 온 여자도 있는데.. "

혹시나 미진이가 영희나 자신과의 관계를 알게 될까봐 걱정을 해 주는 것이다.

" 괜찮어, 안에 있는 미진이는 내 여자문제에 대해 질투할 사람은 아냐.. "

 

" 재밌게 드시는데..   이건 저희집에서 드리는 써비스에요.. "

여진이가 육회 접시를 들고 앞서고, 박사장이 쭈볏거리며 뒤를 따라 들어온다.

" 어머 ~ 사장님 오랜만이네여..   요즘 통 안 오시구.. "

미숙이가 육회 접시를 받아들며 아는척을 한다.      미진이 역시 박사장에게 눈짓을 건넨다.

" 오랜만입니다, 이리 오셔서 같이 한잔 하십시다.. "

박사장과 눈을 마주치며 눙치듯 말을 건네자 여진이가 먼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어색한 자리겠지만 궁금증을 못 견딘 

박사장도 그 옆에 앉는다.

미진이가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인다.      결과론적이지만 박사장으로 인해 수정이가 가게에서 손을 떼게 됐기에,

'이차선 다리' 식구들과의 회식 자리에까지 나타난 박사장의 저의 또한 궁금했을 것이다.

" 듣기로는 박사장께서 우리 가게 매상을 많이 올려 주셨다고 하길래, 나도 보답은 해야지 싶어서 식구들이랑 회식이나

하러 왔죠.후후..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

일부러 그의 행적을 흘리자 여진이 앞이라서 그런지 다소 당황하는 모습이다.

" 많이 마시긴요, 그저 친구들이랑 가볍게 한잔 할때마다 들렸죠.. "

" 박사장님이 오시는 날에는 우리집 매상이 괜찮았는데, 요즘은 너무 뜸하셔..  자주 좀 오세요.호호.. "

미진이까지 가세를 하며 박사장에게 술을 따라준다.

" 여진씨도 시간되면 영희씨랑 같이 놀러와요, 써비스를 잘 해 드릴테니까.. "

" 어쩌나..  나는 노래를 잘 못하는데.호호..   뭐, 그래도 한번 놀러는 갈께요.. "

일부러 박사장을 자극하기 위해 여진이를 끌어 들이는 모션을 취해 봤더니, 내 인사말에 웃으며 동조를 하는 여진이를

바라보는 박사장의 표정이 볼만하다.

" 어허 ~ 이 사람이 지금 어디를 간다고.. "

짐짓 눈까지 부라리며 정색을 하는 박사장의 말에, 방안에 있던 일행 모두는 사뭇 재밌어 하는 눈치들이다.

" 왜, 어때서..  그냥 맥주 마시는 곳 아닌가, 혹시 무슨 변태스런 영업이라도 하는 곳이야? "

" 아뇨, 그냥 건전한 주점이에요.호호..   술을 팔아서 그렇지, 노래방이랑 똑같아요.. "

'이차선 다리'에 못가게 하려는 박사장의 속내를 알면서도, 짐짓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여진이가 응큼한 표정을 짓자, 

미진이가 나서서 풀어 가고자 한다.     

이미 여진이가 박사장과 수정이와의 모든걸 알게 된걸 미진이만 모르고 있다.

" 똑같긴, 뭐가 똑같애..  '이차선 다리'야 남자들이 술 마시러 가는곳이지, 여자들이 갈만한데는 아니지.. "

'이차선 다리'가 떳떳치 못한 곳이라고 자신의 입으로 토해 놓은 격이다.

" 어머 ~ 사장님 이제 보니까 구식이다, 저희 가게에 남자 종업원이 있는것도 아니고 사모님이 놀러오시면 어때서.. "

" 그러게, 남자들은 다들 도둑이라니까..   자기들은 어디든지 놀러가도 괜찮고 여자들만 안된다니, 무슨 심뽀들이.. "

미숙이와 수봉이까지 번갈아가며 박사장의 남자 우월주의에 쐐기를 박듯 성토들을 해 댄다.

" 이봐요, 박사장..  내가 알기론 수정이랑 친하게 지낸다고 들었는데.. " 

" ... 친하게 지내기는, 무슨..   그냥 친구들이랑 술마시러 가서 노래나 부르고 그런게지.. "

그렇찮아도 내 정체를 궁금해 했던 박사장이, 내 입에서 수정이 얘기가 나오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 수정이가 내 얘기를 안했나보네, 하기사 내 얘기를 했으면 박사장하고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웠겠지..  사실 수정이가

내 애인이었거든.. "

" ............ "

박사장이 수정이랑 동갑이라고 했으니 나보다는 다섯살이나 어리다.     박사장과 사귀게 된 경위야 당연히 수정이의

잘못된 처신 때문이겠지만, 박사장에게 일종의 경고라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하대를 하기로 했다.

" 물론 내 불찰도 있겠지만, 의리 없는 수정이 얼굴을 더 이상 보기 싫더라구..  그래서 그만 두라고 했지.. "

수정이가 그만두게 된 이유를 알게 된 식구들의 눈들이 나에게로 쏠리고, 술을 마시던 분위기도 엄숙해 져 버렸다. 

" 어때, 수정이는 잘 지내는지 모르겠네.. "

" 그걸 왜, 나한테.. "

수정이의 안부를 묻은 내게, 박사장으로서는 발뺌을 할수밖에 없으리라.

" 허, 참.. 같은 선수끼리 왜 그러실까..  맘에 드는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게 뭐 어떻다고.. "

" ............ "

아무리 여자 경험이 많은 박사장일지라도 자신의 와이프가 있는 자리인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 박사장도 수정이랑 친하게 지냈는데, 나도 여진씨랑 한번 친해 볼까나.. "

" ............ "

느닷없는 내 공격에 당사자인 박사장이나 모두들의 얼굴이 경직된 채 향후 추이를 기다리는 모습들이다.

" 후후.. 그렇다고 놀래기는..  봐요, 박사장..  잘은 모르겠지만 사모님도 박사장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으시겠네..  

박사장이 남의 여자에게 친절하게 구는만큼, 사모님한테도 신경을 더 써 드려야 잡음이 안 생기는 법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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