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60

바라쿠다 2012. 5. 28. 07:30

" 그만 일어나, 선배..  나 배고파.. "

일요일 아침이다.    되도록이면 늦은 밤에 먹지 않겠다던 인숙이가 어제 식탁에서도 건성이더니 배가 고픈 모양이다.

" 그러길래 왜 저녁을 건너 뛰냐구.. "

" 살찌면 선배가 흉 볼거잖어.. "

참으로 알수 없는 여자의 마음이다.     태아를 위해서 좋은것만 먹는다더니, 저녁에 먹는 음식은 살로 간다며 건너뛴다.

오랜만에 사랑을 받아서인지 밝아지고 얼굴에 윤기까지 흐른다.      어제밤 인숙이의 꽃잎에서도 향기가 났다.

" 소영이하고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돼..  소영이가 요리학원에 다니거든.. "

인숙이가 차려준 두부찌개가 시원하다.      인숙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소영이를 실망시킬순 없다.

" 알아, 아빠가 조리학원에 다니라고 했다면서 의욕이 대단하더라구.. "

나랑 떨어져 있으면서도 소영이를 통해 촉각을 세우고 있었지 싶다.

" 어제도 얘기했지만 인숙이만 이뻐해 줄수는 없어, 무슨 말인지 알지? "

" 너무 신경쓰지 마, 선배..  욕심내지 않겠다고 했잖어.. "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이라는게 있지 싶다.      인숙이만 하더라도 홀가분한 남자를 만났더라면, 임신을 하게 된걸

드러내고 좋아할만큼 축하를 받을 일이다.      나처럼 복잡한 인간을 만나 속앓이를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 그래도 맘이 불편해, 나는.. "

 

소영이와의 약속 땜에 사당동으로 가면서도 내내 찜찜한 맘이 덜어 지지가 않는다.

인숙이도 인숙이지만, 소영이와 소영이 에미한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자신이 없다.

아파트에 들어서니 소영이와 친구 정민이가 주방을 홀랑 뒤집어 놓고 요리를 한다고 씨름중이다.

" 하여간에 못 말린다니까, 다른 애들처럼 공부를 잘하면 어디가 덧나는지.. "

내가 들어서는 인기척에 성미가 안방에서 나온다.

" 그게 누구탓인데..  엄마를 닮아서 머리가 안 되는데, 치 ~ "

앞치마까지 두른 소영이의 얼굴에 서툰 조리실력의 파편이 묻어있다.

" 저 년이 또 버릇없이 엄마를 놀리네.. "

" 어허 ~ 또 우리 공주한테 욕을 하누..  소영이 말이야 맞는 말이지, 날 닮았으면 당연히 반에서 일등만 했을텐데..

머리 나쁜 당신을 닮아서 우리 소영이가 이 고생을 하는구먼, 그치 ~ 소영아.. "

" 말밥이쥐, 아빠.. 히히 ~ "

" 에그 ~ 아주 둘이서 죽이 척척 맞아서는.. "

그전보다 참을성이 많아진 성미다.    누구한테나 날을 세우던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게 느껴진다.

" 그래, 아빠 술 안주는 잘 되가냐? "

딴에는 배운걸 실습한다고 친구랑 애를 쓰는 소영이의 실력이나 보마고 주방을 기웃거렸다.

" 배운대로 하는데 영 맘에 들지가 않네요.. "

소영이 친구 정민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 처음부터 잘 되려구..  열심히 하다보면 자연히 늘겠지.. "

" 학원에서 할땐 비슷했는데, 영 이쁘게 나오질 않아요, 아빠.. "

소영이까지 걱정이 태산이다.     워낙에 밝은 성격을 가진 애가 실망스러워 할때는 과정중에 하나가 빠진듯 하다.

" 이게 뭐냐, 무슨 롤을 만드는것 같은데.. "

" 맞아, 연어하고 참치를 넣고 싸줘야 하는데 영 보기싫어.. "

꼭 조리학원이 아니더라도 우리들네 교육방법에 문제가 많다는게 평소의 내 지론이다.      하다못해 수학만 하더라도

구구단을 알아야 차츰 윗 단계로 올라갈수가 있는것이다.       인수분해도 모르고 미적분을 풀수는 없다.

조리학원이라는게 우리 실정에 맞춰 기본 양념을 만들려면, 고추나 콩이 어떻게 자라서 수확을 거두고 어찌 숙성을 시켜야

어떤 맛이 나는지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그저 외국잡지에 나오는 이쁜 사진들만 들이대고 가르치려고 하니, 배우는 학생들은 요리의 본질적인 것들을 놓치고 지나갈

것이다.

" 보기엔 맛있어 보이네, 처음부터 이쁘게 나오면 금새 유명해지게.후후..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해.. "

일단은 배우고자 하는 소영이의 사기를 꺽을수는 없다.     어떤 맛인지는 몰라도 맛있게 먹어줄 요량이다.

" 알았어, 아빠..  금방 되니까 식탁에 앉아 계세요.. "

" 일요일인데 정인이한테 놀러오라고 하지 그랬어.. "

옆에서 지켜보던 성미가 딸아이가 다녀 간후로, 여간 마음이 쓰였는지 집으로 한번 부르란 얘기다.

가뜩이나 인숙이 문제로 딸아이한테 면이 서질 않는 내 입장을 모르는게 다행이다.

 

'이차선 다리' 식구들과 회식이 있다고 저녁을 차리려는 성미를 쉬라고 하고는 미진이 집으로 향했다.

수정이가 시작한 일을 미진이에게 짐을 지워 놨으니 자주 찾아 봤어야 했는데 도통 쨤을 낼수가 없었다.

" 웬일이야, 그냥 거기서 만날줄 알았지.. "

오리란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반겨주는 미진이를 보니 고마울 따름이다.

" 시간이 남아서 같이 가려구, 가게 식구들이 없을때 할 얘기도 있고.. "

" 무슨 얘기.. 중요한 일이야? "

화장을 하고 있었는지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매고 옅은 분 냄새까지 난다.

" 둘이서만 할 얘기도 있잖어, 눈치가 없냐.. "

미진이의 몸에서 나는 은근한 향기에, 거시기가 준동하기 시작함에 끌어안고 뺨에 입을 맞춘다.    

" 이 사람이 왜 이런데..  요즘에 힘이 넘치나.. "

손을 들어 가슴을 밀치면서도 싫지 않은듯 눈을 흘기는 모습이 귀엽다.

" 그래, 수정이가 안 보이니까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낮에도 이렇게 꺼떡거리네.후후.. "

" 객적은 소리 그만하고 쇼파에 앉어..   커피로 줄까, 음료수로 줄까.. "

오렌지 쥬스를 내려놓더니 안방으로 들어가서 하던 화장을 마저 하고는 외출복을 입고 나온다.

" 그래, 무슨 얘긴데.. "

" 별다른건 아냐, 수정이가 무슨 얘기 안해? "

자신은 가게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지만, 친구인 미진이가 가게에 계속 나가는걸 이상하게 생각할수도 있다.

" 그만 두려고 했는데, 오빠가 사람 구할때까지만 당분간 나와 달랜다고 했더니 별다른 말은 없더라구.. "

" 다행이네..  그리고, 가게에 사람이 더 필요하다며.. "

" 그거야 오빠가 알아서 해야지..  괜찮은 사람은 있어? "

" 아직..  사람은 구하면 되겠지만 니가 손님 테이블에 앉는게 거슬려서 그래..  좋은일도 아닌데 매일 술 마시는것도 보기

싫고.. "

" 그럼 어쩌라구, 한병이라도 더 팔려면 어쩔수 없지.. "

" 미련하기는..  맥주 한병 팔아야 남는게 이천원이야, 기껏 마셔봐야 몇병이나 더 판다구..  술 몇병에 욕심부리다 보면

니 피부만 망가져.. "

여자와 남자의 틀린점이 또 이것이다.    물론 돈을 번다는게 악착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고는 하지만, 몇푼 더 벌자고

부시시한 몰골이 돼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미진이의 나이도 이미 40 중반을 넘어선다.

" 누군 뭐 그러고 싶어서 그러나, 한푼이라도 더 벌자고 하는 짓이지.. "

" 내 말대로 해, 곱던 얼굴이 다 망가져서 내가 쳐다보지 않으면 어쩔려고 그래.. "

날 믿고 따라준 미진이의 마음이 고마워서, 되도록이면 힘든 일을 안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알았어, 조심할께.. "

" 너무 욕심내지마, 이걸 평생 밥벌이로 삼을수는 없잖어.. "

나로 하여금, 미진이의 인생이 번듯하지는 않더라도 술독에 빠져 사는 모습을 지켜 볼수는 없다.

또한 미진이와의 인연이 언제까지 갈지는 몰라도, 수정이처럼 좋지 않은 모양새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수정이가 직접적으로 말 할 자격은 잃은 셈이라 내 앞에까지 나서지는 못하겠지만, 제 친구인 미진이의 동향을 예의

주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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