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67

바라쿠다 2012. 6. 9. 10:36

" 같이 해요, 언니.. "

욕실에서 젖은 머리에 수건을 말고 나온 춘희가 주방으로 다가간다.

거실 쇼파앞을 지나치는 춘희의 몸에서 여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헐렁한 치마와 반팔 티를 입은 초희는 큰 키는 아니지만, 나름 굴곡진 몸매에 윤기까지 흐르는 피부가 보기에 좋다.

은연중에 중심부에 불끈하니 신호가 온다.     

~ 미친놈, 지금 때가 어느땐데 처음 본 여자를 보고 또 다시 껄떡대고 있으니..  참으로 대책없는 숫놈이다.. ~~

속으로 자책을 하면서 제일 마지막으로 욕실로 들어갔다.      그 곳에도 춘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세면대 위 거울에는 뽀얗게 수증기가 맺혀 있고, 타일벽에 달린 행거에 방금 손으로 빤듯한 춘희 팬티가 걸려 있다.

둥그런 행거에 걸린 분홍색 팬티 중심부에는 국화꽃 모양의 장식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또 다시 대책없이 가운데로 몰리는 기운에 쓴 웃음을 짓는다.    샤워기의 찬물을 틀어 솟아나는 힘을 잠 재워야 했다.

" 빨리 와요, 찌개 다 식겠다.. "

미진이와 춘희가 식탁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 자, 이렇게 만나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잘 해 보자구.. "

두 여자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고 잔을 부딛쳤다.      한잔 술에 식도가 찌르르하다.

" 미안해요, 사장님..  욕실에 들어 가실줄 모르고.호호..  속옷을 걸어놔서.. "

부끄러운듯 배시시 웃는 춘희의 목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근육이 싱싱해 보인다.

" 아무렴, 어때..  나이가 한두갠가, 그런거 신경쓰면 춘희만 불편할 뿐이야.. "

어차피 같이 지내려면 다소 흉한것도 모르고 지나쳐 줘야만 서로가 편할것이다.

" 괜찮어, 이 사람은..   아무한테나 덤비는 민식씨랑은 틀려.호호..   그전에도 얼마나 들이대던지, 도망 다니느라 혼난걸

생각하면.호호.. "

나와 연애를 시작했던걸 알리 없는 민식이가 미진이 주위를 맴돌던 때가 있었다.

" 너무 그러지마, 어찌보면 불쌍한 놈이야.. "

" 피 ~ 불쌍한 사람 다 죽었네..  뭐가 부족하길래.. "

" 아냐, 몰라서 그렇지..  집식구한테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사는 놈이야..  어떨때 집에 들어가는걸 보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깨가 축 늘어진다니까.. "

자고로 여우같은 여자와는 살아도 곰같은 여자와는 못산다고 했다.     남편의 속에 있는 고민을 끌어안지 못하고 닥달만

하는 와이프에게 정이 갈리는 없다.

" 어머나 ~ 와이프가 얼마나 싫었으면.. "

미진이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춘희가 혀를 찬다.

" 옛날하고는 틀린 세상이야..  요즘에는 남자가 여자를 잘 만나야 돼, 나처럼.후후.. "

" 알긴 잘 아네.호호..   나한테 잘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네.. "

" 아니까 이렇게 설설 기잖어.후후..  근데, 춘희씨는 어떻게.. "

대놓고 물어보기가 민망할수도 있는 얘기지만, 어차피 한식구처럼 지낼려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 그냥 똑같죠, 뭐..   애아빠와 헤어진지 얼마 안돼요..  하도 노름을 좋아 하길래, 나도 같이 노름 좀 했죠.호호.. "

타고난 성격인지 앞뒤 잴 필요도 없다는듯, 자신의 허물일수도 있는 얘기를 쉽게 털어 놓는다.

신혼때부터 노름을 좋아하던 남편의 버릇이 고쳐지지 않더란다.     어느새 태어난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여전히

툭하면 며칠씩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말리다 못해 지쳐버린 춘희가,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방 두칸짜리 전세금을 빼내어 남편이 있는 정선 카지노에 갔더란다.     

맞불을 붙이는 심정으로 남편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져간 돈을 모두 날려 버렸다고 했다.    뭔가 깨우쳐 주기를 마지막으로

바랬지만, 결국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길로 법원에 이혼신청을 하고는, 딸자식을 근처에 있는 시댁에 맡기고 집을 나왔단다.

" 자, 한잔 더 해..  춘희씨도 보통이 아니네.. "

" 맞아요, 사장님이 잘 보셨네..  제가 좀 독한 구석이 있긴 해요.   근데, 딸아이는 보고 싶네요.호호.. "

그냥 웃는게 아닐것이다.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침결에 눈을 뜨니 미진이는 바로 옆에서 곤히 잠에 빠져 있는데 밖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아침부터 뭐 해.. "

춘희가 씽크대에 붙어서서 뭔가를 하는 중이다.

" 그냥 있기가 심심해서.. "

지금이야 늦잠을 자는게 어색하겠지만 며칠후면 잠이 모자를 것이다.

" 커피나 한잔 부탁해도 될까..   바로 위 선반장에 있을걸.. "

" 잠깐만 기다리세요.. "

발끝을 돋구어 머리위에서 커피병을 꺼내는데, 반팔 티가 올라가면서 잘룩한 허리와 엉덩이까지 노출이 된다.

군살이 없는 검은 피부가 눈을 자극한다.     모르는 곳에서 만났더라면 대놓고 작업을 걸었을만큼 꽤나 유혹적이다.

" 친구분..  사람은 좋아보이던데.. "

" 여자말 하나는 잘 듣는 친구지, 모르긴해도 맘에 드는 여자한테는 간이라도 빼줄걸.후후.. "

느닷없이 민식이를 거론하는 춘희에게 손님의 정보를 알려주는 마음이었다.

" 남자가 너무 그래도 매력 없는데.. "

" 앞으로도 오면 잘 해줘..   참, 그러지 말고 춘희가 사람 한번 만들어 볼테야? "

엊저녁에 춘희에게 호감을 보이던 민식이가 떠올라 자연스럽게 두사람을 이어줘도 괜찮지 싶은 생각이다.

" 에이 ~ 내가 어떻게.. "

" 아냐, 그 친구도 춘희한테 호감을 보이던걸..   나쁜 친구는 아니니까 춘희가 다칠일은 없을거야.. "

" 좀 더 자지, 벌써 일어났어.. "

" 자기도 이리와 봐.. "

머리를 가다듬으며 안방에서 나온 미진이에게 춘희와 민식이 얘기를 꺼냈다.

" 남녀 사이란게 오빠가 나선다고 그대로 맺어지나, 서로가 맞아야지.. "

춘희가 새로 끓여 낸 커피를 홀짝이던 미진이는 조심스러운 기색이다.

" 글쎄, 당장에 어떻게 하라는건 아니지..  민식이가 맘에 있어 하는 눈치더라구, 춘희씨만 싫지 않다면 안될것도 없어

보이는데.. "

" 몰라요, 괜히 나섰다가 두사람한테 욕이나 먹으면 어쩔려구 그래.. "

" 두분 그만하세요, 그냥 사장님 친구분이니까 친절하게 대할께요.. "

" 솔직하게 말해봐, 춘희씨도 그 친구가 나쁜사람으로 보이는건 아니지.. "

"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나설까..   아침부터 아주 신이 났네.호호.. "

잘못된 판단을 했을수도 있겠지만, 민식이와 춘희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초저녁에 민식이를 사당 사거리에 있는 라이브 카페로 불러냈다.

" 오늘 거하게 한번 쏴야겠다.. "

무대위의 여자가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을 구성지게 뽑아 제낀다.

" 니 술값이야 항상 내가 책임졌는데, 새삼스럽긴.. "

" 술값이야 당연히 돈 많은 놈이 내야지, 불쌍한 내가 내리.. "

" 니가 왜 불쌍해, 임마..   여자 없는 내가 불쌍하지.. "

" 그래서 이 형님이 너한테 여자를 소개해 줄려고 하잖어.. "

툴툴거리던 민식이의 눈이 반짝인다.     친구 사이긴 해도 여자 문제만큼은 서로가 외면하고 지냈던 것이다.

" 진짜냐, 철들었네.흐흐..   이제서야 진짜 친구로 보이네.. "

" 나이가 몇인데 앞가림도 못하냐, 니 여자는 니가 골라야지.. "

" 하여간에 잘 나가다가 속을 긁는다니까..   그래, 니 똥 굵다.. "

하도 엉뚱한 녀석인지라, 춘희를 소개시키려고 맘 먹고서도 잘하는 짓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 니가 볼때 춘희가 이쁘긴 하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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