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10시경이지 싶다.
민식이와 함께 '이차선 다리'에 들어섰다. 카운터에 있어야 할 미진이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홀에만 손님들이 있고 룸은 비워져 있었다.
" 사장님, 요즘 자주 오시네요.호호.. "
미숙이가 주문을 받을 요량으로 룸으로 들어선다. 갈 곳이 없어 이곳에 오는지를 알리 없는 그들이다.
" 양주 한병 큰걸로 주고 춘희 좀 불러줘.. "
" 춘희만.. 에이~ 나도 양주 마시고 싶은데.. "
" 미숙씨도 같이 와.. "
" 역쉬 ~ 민식이 오빠 최고 ~ 안주는 과일로 가져올께요.호호.. "
미숙이가 양주와 얼음통을 가지고 들어오고, 춘희가 과일접시를 두손으로 떠 받치고 뒤를 따른다.
미진이와 백화점에 간다고 하더니, 흰 브라우스를 허리께에 감춘 검은색 치마가 튼실한 엉덩이를 팽팽하게 감싸고 있어
육감적으로 보인다.
미용실에도 다녀왔는지 귀밑 머리가 웨이브 져 있다. 까만 피부라 그런지 손톱과 발톱에 칠해진 흰색 페디큐어가 유독
눈길을 끈다.
" 그쪽 자리가 아냐, 미숙이가 오늘은 내 파트너야.. "
영문도 모르고 민식이 옆에 앉아버린 미숙이를 내 옆자리로 옮기게 했다.
" 나야 더 좋지롱.호호.. "
엉덩이까지 바짝 붙이고 앉은 미숙이가 칵테일 잔을 건네주며 은근히 허벅지에 손까지 올린다.
미숙이의 손을 치우자니 무안해 할것 같아 모른척 넘어가기로 했다.
" 옷이 춘희한테 어울리네.. "
" 언니가 골라 줬어요.호호.. 이뻐 보여요? "
" 춘희는 이뻐서 뭐든지 입으면 어울릴거야.. "
" 나한테 같이 가자고 하지, 더 이쁜걸 사 줬을텐데.. "
" 이 오라버니는 또 그런다, 공짜 좋아하는 여자한테나 사 줘요.. 난 부담돼서 싫으니까.. "
제 버릇 못 버리고 괜히 나섰다가, 춘희를 뾰루퉁하게 만든 민식이다.
" 너는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조심성이 없냐.. 춘희씨, 그냥 사달라고 해.. 춘희가 아껴준다고 그 돈이 남아 나겠어? "
민식이와 춘희가 어울리지 싶어 자리를 만든 것이지만, 내 생각이 틀릴수도 있지 싶다.
" 언니는 사장님 옆에서 뭐하는거야, 조금 있으면 큰 언니도 들어올텐데.. "
홀에 있던 수봉이가 들어와서는 바쁘다며 내 옆에 붙어있던 미숙이를 데리고 나간다.
모처럼 쉬는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미진이가 거실에서 무료하게 T.V를 보는중이다.
" 피곤했나 봐, 코까지 골던데.. "
" 그랬어? 민식이랑 새벽까지 술 마셨거든.. "
민식이가 춘희한테 눈도장을 찍히겠다고 요 며칠새 계속 찾아 왔다.
" 아침 먹어야지.. 난 밥맛이 없는데, 그냥 냉면이나 만들어 먹을까? "
" 춘희한테 물어 봐, 같이 먹겠냐구.. "
냉면을 만들어 먹자는 미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민식이의 얼굴이 떠 올랐다. 민식이에게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다.
" 춘희씨, 이리로 앉아 봐.. "
춘희 방에서 나오는 두 여자를 쇼파에 앉혔다.
" 민식이가 그렇게나 마음에 안 들어? "
" 들고 안들고가 있나요, 그냥 형부 친구로만 보는거지.. "
" 오늘 같이 식사나 하면서 한번 눈여겨 보라구, 나쁜 친구는 아니니까.. "
" 이이가 아직도 그 생각을 못 버린거야? "
찜찜해 하는 미진이와 춘희의 등을 떠 밀다시피 해서는 보라매공원 옆에 있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로 식당가에 내려 냉면집으로 들어갔더니 벌써 민식이가 자리를 잡고 있다.
" 일찍도 왔다, 춘희가 그렇게 좋으냐.후후.. "
" 당근이지.. 그게 말이냐, 막걸리냐.흐흐.. "
" 아이, 참 ~ 두분 또 그러신다.. "
" 그러게 말야, 신소리 그만하고 냉면이나 먹자구.. "
물냉면에 비빔냉면, 회냉면까지 시키고 간단하게 수육까지 주문을 해서는 미진이와 둘이서만 반주를 했다.
대낮이라 그런지 미진이 얼굴이 보기좋게 물들어 간다.
" 역시 우리 미진이가 이쁘단 말이야.후후.. "
" 헐 ~ 어디서 우리 춘희를 앞에 두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
" 저 오라버니가 또.. 자꾸 왜 그런다니, 냉면도 못먹게.. "
하기야 춘희 입장에서는 자꾸 들이대는 민식이가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다.
" 춘희야, 신경쓰지마.. 저러다 말겠지, 장난하는것도 아니구 툭하면 되지도 않을 작업을.. "
" 어 ~ 미진씨, 섭섭하네.. 난 진심인데.. "
" 맞아, 이번엔 진짜야.. 친구라서 감싸는게 아니고 민식이를 보면 알수 있다니까.. "
" 그러다 아니면.. 어떻게 춘희를 볼려고 오빠까지 나서니.. "
괜히 실없는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걸 알고 있는 미진이다.
" 내가 보증한다니까.. 더도 말고 딱 세번만 만나봐, 민식이가 똑바로 보일테니까.. "
" 오랜만에 진짜 친구같네, 진작부터 나 좀 챙기지 그랬냐? "
" 그거야 눈이 나쁜 니 잘못이지, 임마.. 제대로 된 여자를 골랐어야 밀어주든지 말든지 하지, 어디서 고르는 여자마다..
진작에 춘희같은 여자를 찍었으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라도 응원했을거다.. "
" 진짜로 오빠가 책임질거야? "
나와 민식이가 친구 사이라도, 대놓고 좋은 소리를 하는걸 들어 본 적이 없었던 미진이다.
" 그렇다니까, 내가 언제 쓸데없는 짓 하는거 봤어? "
" 춘희야 ~ 속는셈 치고 한번 만나봐, 민식씨는 못 믿어도 이사람 말은 믿어도 돼.. "
" 참, 언니까지 왜 그래.. "
" 이래서 우리 미진이가 이쁘다니까.후후.. 이쁜짓만 하는 우리 미진이한테 무슨 옷이 어울릴래나.. "
식사를 끝내고 백화점 매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바짝 붙어 팔장을 낀 미진이가 귓속에다 속삭인다.
" 오빠, 나 그거 어제밤에 끝났어.. "
벌써 미진이 집에 묵은지가 5일째가 된다는 말과 같다.
먼저번에 목걸이를 선물받은 후, 처음으로 쇼핑을 하게 된 미진이다.
안 그래도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오빠의 평상복이라도 사주고 싶었던 참이다.
예전에는 이물질처럼 둘 사이에 낀 민식이가 눈에 가시 같았지만, 옆에 춘희까지 있어 한결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다.
골프매장에서 평상복을 먼저 사 주고 싶었지만, 숙녀복 매장부터 가자고 하는 바람에 한층을 더 내려가야 했다.
두어곳의 매장을 기웃거리다 평소 입고 싶었던 브랜드의 새 상품이 눈에 들어오기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었다.
" 역시, 우리 이쁜이가 옷을 잘 고른다니까.. "
맵시가 나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조바심을 냈는데, 다행히 오빠가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 춘희씨도 하나 골라보지.. "
" 전 됐어요, 나중에 혼자 올래요.. "
은근한 민식이의 권유를 일언지하에 자르는 춘희다.
" 춘희한테 부담 갖지 말라고 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
거울 앞으로 다가온 오빠가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오빠의 코치도 있지만 본인이 돈을 쓰겠다는데 어떠랴 싶은
생각도 든다.
" 그냥 골라 봐, 민식씨가 사 주는게 맘이 편치 않으면 내가 사는걸로 할께.. "
미안한 맘으로 주저하는 춘희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골라서는, 매장직원에게 써포트를 부탁했다.
아직 40이 안된만큼 젊어서 그런지, 골라준 옷이 춘희의 몸에 감기듯이 세련돼 보인다.
춘희를 감싼 옷이 마치 알몸과 하나가 된듯, 적나라한 곡선을 그려 볼륨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 자태를 바라보고 있는 민식이의 시선이 춘희에게 꽂혀 움직일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