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70

바라쿠다 2012. 6. 13. 01:41

" 어서오세요, 선생님..  이 쪽으로 앉으세요.. "

결국 인숙이를 성미집으로 부를수 밖에 없었다.

" 안녕하세요.. "

죄 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든채, 소영이의 손에 이끌려 쇼파 끝에 조심스럽게 앉는 인숙이다.

" 이사람한테 들은 얘기지만, 애기 낳는걸 반대한다고 했다던데.. "

완전히 마님이 하인 다루듯이 첫 만남부터 기세등등이다.

" 네, 그래서..  저 혼자 키우겠다고.. "

활달하고 당당한 인숙이가 저리도 저자세가 될수도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 행여, 애기를 핑계로 이 사람을 욕심내는건 아니겠죠.. "

" 네, 그건 정인이 할머니한테도 말씀 드렸는데..   정인이 아빠는 따로 좋아하는 분이 계시고, 다른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저 애기만 키우게 해 달라고.. "

" 지금 한말 하늘에 맹세할수 있어요?   이사람 핏줄을 가졌다고 나중에 딴 맘 품는거 아니냐구.. "

" 선배한테 소영이 엄마 얘기도 들었네요, 두 분 사이에 끼여들지 싶지 않아요.. "

어느정도 앞뒤가 맞아 들어 간다.      잔뜩 독이 오른 성미지만 더 이상 물고 늘어지기도 어려울 터다.

" 이름이 인숙이라고 했죠.. "

" 네.. "

" 나랑 동갑이라고 하던데, 나를 형님이라고 부를수 있겠어요? "

" .............. "

" 불러 봐요, 형님이라고..   비록 이상하게 꼬이긴 했지만 그쪽보다는 내가 5년이나 먼저니까.. "

" .............. "

" 애까지 생겼는데 모른척하고 산다는건 말이 안되지, 아빠 없는 애로 키울수도 없는게고..  날 형님으로 인정을 한다면

이 사람이 인숙씨를 찾는건 막지 않겠어요.. " 

느닷없는 성미의 제안에 당황하기는 인숙이와 나도 마찬가지다.

" ...형님..   앞으로 형님으로 모실께요.. "

얘기가 이상스럽게 흘러간다.      서로의 권리를 주장해야 할 시점에서 형님과 아우라니..

성미와 인숙이간에 상상도 못할 계약이 이뤄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형님과 아우가 돼 버렸다.

" 만에 하나 오늘의 약속이 깨진다면..   아우 앞에서 혀를 깨물고 죽을테니까 그리 알어.. "

" 형님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해요, 고맙습니다.. "

" 내가 아니고, 소영이한테 고마워 해야지..  어떻게 된 년이 지 에미편은 안들고.. " 

" ...네.. "

조금은 긴장감이 가셨는지, 어느틈엔가 인숙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린다.

" 뭘 잘했다구 넋을 놓고 있어, 당신이 이뻐서 이러는건 아냐..  소영이 년이 하도 간절하고, 동서가 불쌍해서 이대로 가

보자는거지..   꼴보기 싫으니까 동서나 집에 데려다 줘, 그리고 내가 부를때까지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고.. "

워낙에 카리스마를 풍기는지라, 대꾸도 못하고 인숙이와 같이 현관문을 나섰다.

" 기운내요, 선생님..  아빠도 화이팅 ~ "

1층까지 따라나선 소영이가 종주먹을 들어 보이고는 다시금 집으로 올라간다.

" 오늘은 형님과 같이 계세요.. "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 인숙이와 같이 타고자 했지만, 성미와 있으라며 나를 밀어낸다.

 

눈 앞에서 벌어진 일조차 실감이 나질 않아, 잠시 큰 길가에서 찬바람을 쐬야 했다.

담배 한개피를 밤하늘에 날려 버리고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비겁한 남자가 되기로 했다.

성미집으로 다시 들어 간다는건 큰 모험이 동반되는 행동이다.     제일 만만한 미진이에게로 향할수 밖에 없었다.

미진이 집에 들어섰을때 이미 빈 소주병이 5개나 된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춘희의 눈자위가 충혈된 것이 많이 울었던 듯 싶다.       민식이와 미진이도 가라앉은 분위기다.

" 즐거워야 할 분위기가 왜 이러냐.. "

" 너무 자책하지마, 춘희가 다시 데려오면 되잖어.. "

" 그래.. 애가 크면 다 이해할거야.. "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저희들끼리 춘희를 위로하는 중이다.

" 자기도 이리와 앉아요.. "

" 할일도 없는 놈이 무슨 사무가 그렇게 바쁘냐.. "

같은 말이라도 조심성이 없는 민식이 놈이다.      괜시리 춘희와 엮어 주려다가 단세포 같은 놈으로 하여금, 내 주위를

맴돌게 만든건 아닌지 싶어 슬며시 후회가 된다.

" 미안해요, 언니..  괜히 나땜에.. "

" 얘는, 별소릴 다하네..  나라면 더 못 견뎠을거야.. "

"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술이나 한잔 더 하자구.. "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할 시점에 있는 내가, 비워진 그네들의 잔에 술들을 따라주고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고자 했다.

 

잠귀가 밝은게 결코 좋을리가 없다.      새벽까지 마셨는데도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야 했다.

거실에서 미진이와 춘희가 그제 백화점에서 산 물건들을 늘어놓고는 재잘거리고 있다.

" 어머, 형부 죄송해요..  우리가 너무 떠들었나봐.호호.. "

그나마 춘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걸 보니 다행스럽다.     

엊저녁 두고온 딸이 보고싶다며, 세상의 고민을 혼자서 몽땅 끌어안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니다.

" 그러게.호호..  미안해,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제대로 입어 보지도 못했다고 해서.. "

여자들에 대해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점이다.       무려 세시간 가까이 고르고 고른 물건인데도

또 다시 늘어놓고 그네들끼리 품평회를 하고 있다.

" 내가 보기엔 좋기만 하던데.. "

" 자기도 일어난 김에 다시 한번 봐 줘, 사이즈가 안 맞는것도 있대.. "

엊저녁 마신 술로 속은 쓰려 오는데 아침부터 고문을 당하게 생겼다.     

해장국이라도 끓여 달라고 했다간, 두 여자한테 매너없는 남자로 몰리지 싶어 냉수로 쓰린속을 달래야 했다.

정장중의 하나를 제 방에서 갈아입고 나온 춘희가 거실 중앙에서 맵시를 선 보인다.

" 조금 이상하지, 언니.. "

" 그러게, 치마가 좀 길어 보인다.. "

" 이런 ~  어제 산 신발을 신어 봐.. "

심드렁한 내 말투에 두 여자가 부산을 떨며 거실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다시금 그 위에 선다.    하이힐의 굽 높이가 족히

새끼 손가락 길이 정도는 되지 싶다.     맨발로 서 있는것 보다는 훨씬 늘씬해 보인다.

" 어머 ~ 이쁘다, 얘..   신발 높이가 빠졌네.호호.. "

" 형부가 보기에도 어울려요? "

" 당연하지, 몇사람이 같이 고른건데.. "

명품 매장의 점원들이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기위해 강매를 하는 느낌도 들겠지만, 나름 그네들도 정기적으로 판매교육을

받은 전문직이다.    

특히 여자 손님중의 절반은 매장으로 다시 찾아와 물건을 바꿔 간다고 한다.    

통계상으로 나와있는 손님들의 교환요구에 지친 백화점으로서는, 오죽 그네들의 눈에 어울리는걸 권했겠는가 말이다.

확실히 춘희의 몸매가 이쁘다.     특히 쭉 뻗은 다리에서 가는 발목으로 이어진 각선미는 압도적이다.

늘씬한 맵시를 자랑하는 춘희땜에, 슬며시 아랫도리에 감흥이 일어나 불룩해진 거시기를 처리하기가 곤란스럽다.

그로부터도 무려 한시간 가까이 입고 벗는걸 지켜봐야 했다.

" 속 쓰려, 시원한 국물이라도 줘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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