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부가 속이 많이 쓰렸나봐.호호.. "
쓰린속을 달래면서 이상한 패션쇼를 한시간 가량 봤으니, 나중에는 쓰리던 위장이 무감각해졌다.
밥은 손도 안대고 국그릇을 들어 물처럼 마셔대니 춘희가 눈치를 챈 것이다.
" 하아 ~ 이제야 좀 살것 같네.. "
시원한 미역냉채를 한사발이나 들이켰더니 막혔던 식도가 뚫리는 기분이다.
" 미안해, 자기야.호호.. 그렇게나 속이 쓰려쪄 ~에궁 ~ "
" 마지막 한병을 남겼어야 했는데, 민식이 놈이 마저 먹자고 하는 바람에.. "
미진이와 춘희가 각자 제방으로 들어간 후에도 술병을 모두 비우고서야 끝이 났었다.
" 민식씨는 그렇게나 마시고도 집은 제대로 찾아가나 보네.. "
" 대리기사까지 붙여 줬으니까 잘 들어 갔을거야.. "
" 그나저나 그 오라버니한테 미안해서 어째.. "
" 얘는 자꾸만.. 돈이 남아 돌아서 주체를 못하는 사람이니까 부담갖지 말래도.. "
" 그래도.. 처음부터.. "
졸지에 엄청난 선물을 받은 꼴이 되었으니 신경이 쓰일만도 하다.
" 불쌍한 놈이라니까, 그 놈.. "
" 오빠는 왜 자꾸 불쌍하다고 그래, 민식씨가 무슨 고민이 있겠어.. 가진 돈을 어떻게 쓰는게 고민이라면 몰라도.. "
" 그 녀석 두번 결혼한 놈이야.. "
" 두번 결혼한게 불쌍한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
재력이 넉넉한 집안의 외동 아들이던 민식이가 결혼한지 십여년이 가깝도록 자식이 없자, 꼬장꼬장한 녀석의 모친께서
거의 강제적으로 아들 부부를 이혼하게 만들고는 중매쟁이를 통해 처녀 장가를 들였다.
태생이 모질지 못한 놈이라 집식구들 몰래 첫부인을 남몰래 만나기도 했으나, 2년이 지나지 않아 그 부인이 재혼을
하는 바람에 그나마 위안을 찾을 곳도 없어진 셈이다.
새로 맞이한 여자가 남한테 지는 성격이 아닌지라, 민식이의 허전함을 달래 주기는 커녕, 오히려 민식이의 자유 분방한
성격을 탓하기만 한 까닭도 있었다.
더군다나 민식이에게 문제가 있는지, 새로 맞이한 부인에게서도 애는 생기지 않았기에 정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또한, 첫번째 부인이 새롭게 만난 남자에게서 애를 낳았기에 더 더욱 마음의 상처가 돼 버렸을 터다.
" 그랬구나, 민식씨도 외로운 사람이었네.. "
" 그래서 일부러 속없이 행동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불쌍하다, 그 오라버니.. "
길고 긴 민식이의 과거를 들은 여자들이, 마치 녀석의 실체를 대한듯 안쓰러워 한다.
" 춘희를 본 순간 엮어주고 싶더라구..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
" 내 앞가림도 벅찬데, 무슨.. "
" 꼭 어찌 해보라는건 아냐, 가능하면 그냥 보듬어 줘.. 잔 정에 굶주린 놈이야.. "
~ 아빠.. 오늘저녁 시간 돼요? ~~
" 시간은 왜.. "
미진이 집에서 빈둥거리는데 수요일 쯤에 딸 정인이에게서 핸폰이 왔다.
~ 먼저번 얘기했던 남자친구.. 아빠가 한번 봐야지.. ~~
" 그래야지, 어디서 만날까.. "
~ 조금 아까 소영이랑 통화했어, 그냥 소영이 집에서 만나.. ~~
" 야, 임마! 그건 아니지.. 니 남자를 처음 만나는데 우리집도 아니고.. 나를 주책없는 사람으로 볼텐데.. "
~ 벌써 다 얘기했어, 그리고 소영이 엄마한테 할 얘기도 있구.. ~~
도대체 딸년이 무슨 생각으로 성미집에서 보자는건지 감을 잡을수가 없다. 사위감이 될수도 있는 녀석에게 보여줄만한
상황이 아니지 싶은데 딸년의 속내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 정인이야? "
거실 쇼파에서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미진이다.
" 응, 지 남자친구를 선 보라네.. "
" 어머, 시집가려나 보지? "
" 형부 나이가 몇인데 벌써 시집갈 딸이 있나 봐.. "
" 글쎄, 만나봐야 알지.. 참, 민식이는 언제쯤 온대? "
춘희한테 잘 보이겠다고 며칠째 미진이와 춘희의 기사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다.
" 조금 있으면 올걸, 아까는 춘희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핸폰을 해서는 뭐 먹고 싶은게 없느냐고 물어보더래.. "
" 처제가 잘해 줘, 오죽하면 그 나이에 그렇게 매달리겠어.. 참, 일요일에 바람이나 쐬러 나갈까.. "
"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
저녁 8시쯤 정인이가 남자친구와 함께 들어섰다.
미리 성미의 국밥집으로 갔더니, 마침 소영이가 정인이랑 통화를 해서 얘기를 들었다면서 가게를 일찍 접던 참이다.
번거롭게 저녁도 차리지 말라고 했다면서, 소영이가 회집에서 안주거리로 도다리와 우럭을 챙겨왔다.
" 이쪽으로 오세요, 언니도 이리 와.. "
술상 차릴 준비가 덜 된지라, 거실 쇼파쪽으로 소영이가 안내를 한다.
" 먼저 절부터 받으시죠.. "
" 그건 생략하자구.. 도둑놈이 될지, 사위가 될지도 모르는데.. "
" 이이가.. 안 그래도 어색할텐데.. "
" 사위도 도둑놈이야, 아빠.호호.. "
소영이가 먼저 분위기를 바꾼다. 천성적으로 좋은 성향을 타고난 아이다.
" 내가 얘기 했잖어, 우리 아빤 다른 사람이랑 틀리다구.호호.. 긴장하지 말라니까.. "
잠시 기다리는 사이, 거실 바닥에 교자상이 놓여지고 회와 간단한 안주들이 올려진다.
" 주량은 얼마나.. 우리 정인이만큼은 마시나? "
첫잔이라 도둑놈과 번갈아 술잔을 채웠다. 소영이가 못내 아쉬워 한다.
" 그게 저.. "
" 소주 한병 정도는 마셔요, 더 이상 주면 안되지만.. "
도둑놈에게 던진 질문을 딸년이 가로채서는 감싸고 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많이 마시는게 좋은건 아냐, 주량대로 마시고 실수만 없으면 되지.. "
" 이 사람은 실수를 해도 괜찮아, 아빠가 걱정할만큼은 아니거든.호호.. "
" 술이 취하면 재밌는 사람도 있는 편이지.. 그래서 세상이 요지경 아니더냐.후후.. "
아마도 술이 취해서 딸년한테 약점을 잡힌 일이 있지 싶다.
" 그래, 우리 딸이랑 사귀고 싶다고.. "
" 네, 가능하면 장인어른으로 모시고 싶어서.. "
많이 긴장을 했는지 귀 밑 머리카락으로 땀이 흐른다.
" 그거야 우리 딸이 알아서 할일이지, 부모라고 해서 억지로 짝을 맺어주는 세상은 아니니까.. "
" ..그래도 정인이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
" 자네 말이야.. 사람은 참 좋아보이네, 마음이 개끗하고 어려운 자리 가릴줄도 알고.. "
" ............. "
" 나이가 먹으면 나름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는 법이야.. "
"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 그렇다고 감사하기는.. 자네에 대한 평가는 정인이가 이미 다 했을게고, 자네에게 한마디 하지.. "
" 네 , 말씀하시죠.. "
" 궤변이라고 흉을 봐도 좋아.. 행여 나중에라도 정인이가 싫어진다면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게, 거짓말 따위로 기만하려
들지말고.. 딴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것 보다 그게 더 나뻐.. "
" 절대 그럴일은 없을겁니다, 믿어 주십시요.. "
" 우리 딸이래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을 고른것 같구나.. 소영이도 언니한테 남자 고르는 방법 좀 배워둬라, 아빠같은
사람을 만나면 안되는거야.. "
" 싫어, 난 아빠같은 사람으로 고를래.히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