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73

바라쿠다 2012. 6. 18. 12:47

목요일 저녁에 이수역에 있는 카페에서 딸 정인이와 소영이를 만났다.

소영이가 모친에게 불려 갔었노라고 정인이에게서 연락이 온 까닭이다.

" 그래, 할머니가 무섭지는 않더냐.. "

어린 소영이한테 무거운 짐을 떠 안긴 꼴이 돼버려 마음이 편치 못하다.

" 무섭진 않았는데..  엄마를 한번 보자고.. "

" 소영이가 있는대로 얘길했어..  할머니 눈치는 소영이를 이뻐하는건 같은데, 어쩔려구 하실지는 잘 모르겠구.. "

모친과 소영이 옆을 지키고 앉아 모든걸 지켜봤던 정인이다.     지켜 보면서도 혹여, 할머니가 소영이한테 상처가 될

말 실수라도 할까 싶어 내내 마음을 졸였던 모양이다.

" 자세히 얘기 좀 해봐라.. "

" 아빠가 언제부터 소영이 집에 드나들었냐구.. "

아직은 어린애인 소영이를 앉혀 놓고 당신께서 알고 싶었던걸 여러가지 물어본 모양이다.      처음엔 조심스러워 했던

소영이도, 할머니가 제 엄마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것에 반감이 들어, 당돌하다 싶을만큼 모든 얘기를 털어 놓았단다.

성미가 혼자 살게 된 때부터 나를 만나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하면서, 격한 심정이 되어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 그리고 소영이한테 아빠가 맘에 드냐고도 물어보셨어.. "

" 그래서 뭐라고 대답을 했는데.. "

" 아빠가 소영이한테 니 엄마는 내가 돌봐주마고 약속까지 했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아무런 말씀도 없이 한참동안을

소영이만 쳐다보더니 이번 일요일에 소영이 엄마를 만나 보시겠다구.. "

아이들의 말만 듣고서는 모친의 속내를 가늠키가 어려웠다.

" 소영이가 아빠대신 수고가 많았다, 너무 속상해 하지 말고 들어가거라.. "

" 아빠도 같이가지.. "

" 아니다, 아직 며칠은 더 걸리지 싶다..    엄마한테도 자세히 얘기를 해 줘야지.. "

성미 역시 소영이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을것이다.     또한, 성미가 모친을 만나 가부간에 어떤 결말이 있기 전에는

만나기가 부담스러운게 솔직한 심정이다.

 

미진이와 인숙이에게서 호출이 왔다.      인숙이야 모친에게서 어떤 언질을 받았는지도 모르지만, 당연히 성미에 대한

얘기리라 짐작이 들기에 미진이를 먼저 보기로 했다.

'이차선 다리'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미진이가 룸으로 잡아끈다.

" 토요일에 거제도에 다녀 올거야.. "

" 거기는 왜.. "

거제도라면 미진이 남편이 있는곳이다.     요즘엔 거의 연락조차 않는다고 미진이가 얘기를 했었다.

" 아무래도 이상해, 아직도 이혼하고 싶냐고 물어보더니 토요일쯤 한번 들렸다 가래네.. "

또 다시 복잡해 지는 느낌이다.     어떤 일이 생기면 항시 모든일이 겹쳐서 꼬이는 덕이다.

" 새벽에 출발하니까 그날은 자기가 가게라도 봐 줘야지.. "

" 수봉이도 있고 춘희도 있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편하게 다녀와, 가게는 내가 둘러 볼테니까.. "

미진이 대신 가게에 있진 못하더라도, 민식이 놈과 한잔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될것이다.

" 가게도 가게지만 춘희땜에 그러지, 내가 집에 없으면 민식씨하고 둘이만 남을텐데.. "

" 별 걱정을 다하네, 나이가 몇인데..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 "

" 둘이서 오붓하게 뭣들 하는거냐.흐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응큼스럽게.. "

노크도 없이 민식이가 들어오는 바람에 더 이상 얘기를 이어갈수 없었다.

" 내가 너하고 똑같냐, 어찌 하는 말마다 이쁜 말만 골라서 하는지.. "

" 여기 룸 좀 비워줘요, 손님들이 오셨는데.. "

뒤이어 들어온 수봉이에게 내 쫒겨서 가게 밖으로 나와야 했다.

" 차에서 기다릴까? "

이제 10시밖에 안됐는데 장사가 끝나려면 족히 서너시간은 지나야 한다.     새삼 민식이의 끈기가 신통하다.

" 너 혼자 기다려,임마..  난, 어디 좀 가봐야 해.. "

오늘도 하루종일 사타구니에서 방울소리가 나도록 바삐 움직여야 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인숙이의 집으로 갔다.

대문이 열리고 마당으로 들어서니, 각종 나무들이 어우려져 꽃을 피우고 잔디도 많이 자라 있다.

지난 겨울, 처음으로 인숙이 집을 찾았던 때와 판이하게 달라진 정원은 은은하게 꽃향기까지 풍긴다.

담 넘어로 보이는 밤하늘과 성벽처럼 둘러싼 산의 형상까지도 평온한 기운이 감돈다.

문득 담배가 생각나 한개비를 피워 물고 깊이 숨을 들이 마셨다.     담배 연기가 담벼락 위에서 춤을 춘다.

" 뭐해요, 안 들어오고.. "

인터폰으로 대문을 열어 줬는데도 인기척이 없자, 궁금한 인숙이가 현관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 응, 담배가 피고 싶어서.. "

" 아직 저녁도 못 먹었는데.. "

인숙이를 따라 거실에 올라섰는데 주방쪽에서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 저녁은 건너 뛰겠다고 했잖어.. "

" 요즘엔 참기 힘들어, 애기가 배가 고픈가 봐.. "

" 핑계는,후후..  인숙이는 체격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살이 붙어야 이뻐.. "

일부러 저녁을 준비했는지 꽃게탕에다 반찬 가지수도 많은 편이다.

" 피 ~ 바람둥이.. "

" ............. "

소주까지 미리 준비를 해서는, 내 앞에 놓여진 잔에 술을 따른다.

" 형님은 날씬만 하더라.. "

" 소영이 엄마야 인숙이보다 키가 작아서 그렇게 보이는거지.. "

흔히 여자들이 모르는게 많다.     키가 큰 여자들은 작고 귀여운 여자들을 부러워하고, 작은 여자들은 반대로 늘씬한

여자들이 남자에게 인기가 많다고 생각한다.

키 뿐이 아니고 상대적 빈곤이라고, 자신의 불만스런 부위에 대해 유별나게 열등감을 갖는 여자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주위에 있는 여자들의 말에 좌지우지 되어서는, 본인의 매력 따위는 하찮게 여기는 경우도 종종 볼수있다.

" 근데, 소영이 엄마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는게 괜찮어? "

" 소영이 엄마한테 고마워,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선배나 나한테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겠어..   그렇게 양보를 한다는게

웬만한 인내로는 어림도 없을거야..   앞으로도 형님한테 잘하고 싶어.. "

" 쉽지 않을거야..  인숙이하고는 성격 자체가 틀린 사람이니까.. "

혼자서 힘든 고민을 앓다가 무거운 짐을 풀어놓은 격이니, 어느 정도는 마음이 가벼워져 성미의 편이 되고자 하겠지만,

누구한테 지고 못사는 성미의 성격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 선배 어머니한테서 핸폰이 왔을때도 그렇게 말씀드렸어, 소영이 엄마를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고.. "

" 모르겠다, 내가 생각한대로 흘러가지를 않으니.. "

" 못나 보인다, 선배..   남자가 그러면 안되지,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고 고민은 못할망정 모르겠다니.. "

성미를 만났을때만 해도,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인숙이가 사리분별이 밝아졌다.

" 어찌해야 현명한 판단인지조차 헷갈려.. "

" 점점, 실망이야..   나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형님이 선배말을 들었다면 아마도 길길이 뛰었을걸.. "

" 에휴 ~ 그만하자, 나도 맘이 안 좋아.. "

미진이에게 가 있어도, 인숙이랑 있는 이 순간도 마음이 편해지질 않는다.

" 그러길래, 웬 여자 욕심이 그리 많았을꼬 ~호호..  쌤통이야.. "

" 그만하고 이리와, 인숙이라도 내 편이 돼 줘야지.. "

앞에 앉아있는 인숙이를 일으켜 내 무릎위에 앉히고는 입고 있는 가운을 열어 젖혔다.

'아무생각없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생각없어 75  (0) 2012.06.22
아무생각없어 74  (0) 2012.06.19
아무생각없어 72  (0) 2012.06.15
아무생각없어 71  (0) 2012.06.14
아무생각없어 70  (0) 2012.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