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74

바라쿠다 2012. 6. 19. 13:21

" 식사해야죠, 그만 일어나.. "

피곤했나 보다.    인숙이가 일어나 아침준비를 할때까지도 내쳐 곯아 떨어진 모양이다.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

" 세상 모르고 자더라, 나이는 못 속인다니까.호호.. "

" 어허 ~ 아침부터.. "

애기를 갖고서도 내내 가슴 졸이며 살아왔을 인숙이다.       성미와의 만남으로 어느정도 마음의 짐을 내려 놓은듯 싶다.

처음 만났을때만 해도 아무 걱정없이 자신만의 느낌을 갈구하던 여자다.      몸이 달궈지는 만큼 서슴없이 불을 지폈고,

몰려오는 쾌감을 만끽하고자 했던 여자다.

그 동안의 고민을 털어낸 듯, 이른 새벽까지 뒤엉켜 와서는 뚝이 터진 봇물처럼 자신의 욕심을 마음껏 분출해 댔다. 

예전의 밝고 싱싱했던 그때로 돌아가 얼굴에 자신감마저 넘쳐 나 보기에 좋다.

" 빨리 식사나 해요, 출근해야 해.. "

욕실 세면대에서 간단하게 세수만 하고 식탁에 앉았다.

" 푸훗 ~ 미안해, 선배..  오늘 당장 사다 놓을께.. "

입을 옷이 없어 인숙이의 잠옷바지를 입었더니, 무릎 아래께에 레이스가 달려 있어 스스로 보기에도 꼴 사납다.

" 소영이 학교 생활은 어때? "

" 걱정 안해도 될거야, 워낙에 밝고 심지가 깊은 애잖어.. "

" 잘 좀 챙겨 줘, 부탁해.. "

소영이에게 자랑스런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영 면목이 서질 않게 생긴것이다. 

" 오히려 소영이가 날 챙겨 주더라.호호.. "

" .............. "

" 퇴근하는 길에, 뒤에서 내 가방을 낚아채고는 빙긋이 웃더라니까.. "

" 다행이네, 그나마 소영이가 당신을 좋아해서.. "

먼저번에 만났을때 인숙이를 안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소영이였다.

" 시간없어, 먼저 갈테니까 식탁은 그냥 놔 둬.. "

안방에서 가방을 챙겨 들고는 부리나케 현관문을 나선다.

 

" 오빠는 다 좋은데 너무 바쁜척 하는게 문제야, 그치 ~ 영희야.. "

생맥주 잔을 들어 한모금 시원하게 들이킨 여진이가 나를 향해 시비를 걸고 있다.  

오후에 영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토요일쯤 시간이 되면 여진이와 함께 만나자고 했다.       

가뜩이나 마음이 심란하기도 했지만, 미진이가 가게를 비우는지라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오늘 저녁에 보자며 재차 연락이

왔더랬다.

" 오빠 사정이 그런걸 어쩌니, 할수없지.. "

" 에그, 지지배..  니가 무슨 와이프라도 되니, 감싸고 돌긴..

여진이와 영희의 차이점이다.      여진이가 통통 튀는 스타일이라면 영희는 그저 순응하며 기다리는 여자다.

연애를 한다손 치면 남자에 대해 궁금해 하고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끌어 내려는게 여진이라면, 자신의 욕심보다는

남자의 형편을 먼저 헤아리는게 영희다.

" 둘이 친구 맞어, 어찌 그리 틀릴까.후후.. "

" 솔직하게 말해봐, 오빠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영희가 더 이쁘지.. "

" 지지배가 별소리를 다.. "

어느덧 생맥주 2000 짜리가 비워진다.      무대위에 올라간 가수가 키타를 튜닝중이다.

" 영희가 더 이쁘다면 삐질려고 그러지.후후..    각자만의 매력이 있는거 아니겠어.. "

" 매력이라..  역시 바람둥이라니까.호호..   얘기해 봐, 그 매력이란게 뭔지.. "

여진이 매력중의 하나다.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듯 턱을 받치고 있다.

" 글쎄..  매력이라기보다 영희는 안기는걸 좋아하고, 여진이는 안아 주는걸 좋아하지 아마.후후.. "

사실이 그랬다.     영희야 내면 깊숙이 성적인 감흥을 감춘채 달궈 주기를 기다리는 반면, 여진이는 자신의 쾌감을 끌어

올리기 위해 맞 부디치는 공격형이다.     친구이면서도 서로가 확연히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 하나만 더 묻자, 오빠..   괜히 오해하지마,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 보는거니까.. "

맥주를 들이킨 여진이가 정색을 하는데 영희까지 심각해진다.      아마도 둘이 의논을 했지 싶다.

" 오빠가 바쁜 이유가 가게가 바빠서 그런거야, 아니면 청춘사업 때문이야.. "

흔히 여자가 시간적인 여유를 운운 한다면, 속내는 그 남자의 생활패턴 속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가는쪽으로 욕심이 생기는건 당연할 것이다.        처음에야 좋은 감정이 생긴것만이 뿌둣하고, 자신에게 찾아온

그 귀한 감정을 간직하는 걸로 만족해 하겠지만, 차츰 그런 행복한 시간을 늘리고 싶은게 인지상정일게다.

어차피 영희나 여진이와의 인연을 이어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처해진 입장을 그녀들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는게

내 도리라는 생각이다.

" 앞으로는 이런 시간조차 내기 힘들거야.. "

 

사당동 라이브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영희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쩌면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 영희라면 오빠한테 잘 해 줄텐데.. "

영희와 나를 엮어주기 위해, 여진이가 중간역할을 자청하고 나서기로 했던 모양이다.

성미와 인숙이까지 얽혀진 내막을 그녀들에게 밝히고, 더 이상 인연을 이어 갈수가 없음을 알려줘야 했다.

" 내가 지금 사면초가야.. "

" 그랬구나..  영희가 마음이 아프겠다.. "

" 괜찮어, 가당키나 하겠어..  처음부터 욕심도 없었는데, 뭐.. "

남녀가 새로이 만난다는건 대수로운 일은 아닐게다.      하지만 서로가 정이 쌓이다 보면, 이별하는 순간이 제일 힘든 

법이다.    

욕심이 없었다는 영희의 말을 뒤집어 보면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 영희가 좋게 봐줘서 그렇지, 별 볼일 없는 놈이야..   남은 인생 아쉽지 않게 좋은 사람으로 골라야지.. " 

" 다시 보기 어렵다니까 이상하다, 어쩌면 송별식이나 마찬가지네.. "

여진이의 말이 어떤 의미야 없겠지만, 괜스레 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 가끔이야 볼수는 있겠지..  "

" 그나저나, 오빠 진짜 대단하다..  그 나이에 임신이라니.호호.. "

"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

" 영희도 임신했으면 오빠를 잡을수도 있었겠네.호호.. "

" 지지배가 망측스럽게, 술이나 마셔.. "

영희와 마찬가지로 착잡한 심정이다.      이뤄질수 없는 인연이란 이유가 무엇이든지 안타까울수 밖에 없는 법이다.

둘 사이의 감정을 가볍게 치부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영희의 바램이 버거울 뿐이다.

" 마지막으로 영희와 지내, 난 그만 잘래.. "

우리 둘만을 남겨두고 작은방으로 사라지는 여진이다.      영희와 나를 위해 자리를 비워 준 셈이지만, 뻘줌하게 서로의

얼굴만 마주보게 됐다.

" 아무때나 시간이 나면 연락줘, 기다릴께.. "

" 기다리지 마, 영희 마음이야 고맙지만 내 앞가림도 못하는 놈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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