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고했어, 오라버니.. "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간 후 춘희의 온 몸이 땀 투성이다. 풀렸던 눈동자가 제 자리를 찾아 그윽한 눈길이 된다.
온 몸을 태우듯이 사지를 활짝 열고 몸부림치던 춘희의 몸짓에, 덩달아 황홀함마저 느낀 민식이다.
" 나도 좋았어, 고마워 .. "
관능이 묻어나는 춘희의 뇌새적인 모습에, 저절로 말초 신경이 자극되는 통에 온 몸의 힘을 쏟아 부었다.
" 술냄새 안 나니까 얼마나 좋아, 집중도 잘 되구.. "
" 그랬나, 후후.. 앞으로 춘희랑 있을때는 술 마시지 말아야 되겠네.. 근데, 오라버니 말고 자기라고 불러주면 안되냐.. "
" 조금 더 두고 봐야지.호호.. "
여느 여자와는 느낌이 틀리다. 많은 여자를 안아 봤지만 오늘처럼 뿌듯한 적은 없었다.
늘 거리감을 확인시켜 주는 와이프에게, 그저 불만을 터뜨리듯 만나는 여자마다 사타구니에 쏟아 붓기만 했다.
몸 구석구석 열정들이 살아 숨쉬는 춘희의 몸짓은 경이 그 자체였다. 이 늦은 나이에 새로운 신세계를 맛 본 기분이다.
만져 가는 손길마다에 반응을 하고, 부딛쳐 가는 몸짓에 따라 눈이 부실 정도로 퍼득대는 춘희의 날개짓에 남자로서의
자부심마저 일었다.
" 갖고 싶은게 있으면 말해 봐, 다이아 하나 사줄까? "
" 에그 ~ 뿌릴 돈이 많아서 좋기도 하겠네.. 이렇게 나를 위로해 주는것만도 충분하네요.. 그런걸로 자꾸 들이대면,
내가 속물이 되는것 같아서 싫어.. "
" 너무 예민하게 구네.. 꼭 그렇게 따져야 춘희 기분이 편해지나, 그냥 내 마음이려니 받아주면 좋을텐데.. "
여지껏 만난 여자들은 뭣이든지 뜯어내려고 머리를 굴려 댔다. 준다는 선물도 마다하는 여자는 춘희가 처음이다.
" 됐어요, 받은걸로 할께.. 고마워, 오라버니.호호.. "
" 참, 어지간 하네.. 무슨 여자가 고집이.. "
" 두고온 딸이 눈에 밟혀서 그런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네요.. "
" 데리고 오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지, 뭔 고민이래.. "
" ............... "
" 자기 말대로 민식씨하고 춘희는 잘 어울리는것 같애.. "
객실을 나란히 두개 잡아 각자의 방으로 들어왔다. 샤워를 한 미진이가 침대 머리맡에 앉는다.
" 춘희를 처음 봤을때 많이 지쳐 보였어, 본인한테 직접 얘기를 듣고 보니 불쌍한 맘이 들더라.. 민식이도 외로운데다가
정이 많은 놈이라 둘이서 서로 잘 보듬어 줄거란 생각이 들었구.. "
" 여지껏 민식씨를 나사가 빠진 졸부로만 알았지 뭐야, 자기 얘기를 듣고서야 안 됐다는 맘이 들더라.. "
" 그냥 지켜보자구, 둘이 인연이 된다면 다행이구.. "
" 난 우리 앞날이 더 궁금해.. "
드디어 우려하던 얘기가 흘러 나온다. 미진이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비록 정이 없던 남편이라 할지라도, 이혼이라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은 옆자리에 내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진이에게 솔직하게 얘기를 해 주는게 도리에 맞지 싶다.
" 내가 전생에 죄가 많은가 보다.. 너한테 못할짓을 시킨것 같애.. 니 남편이 이혼을 못해 주겠다고 할때지, 아마.. "
성미가 다시 찾아와 만난 시점부터, 인숙이를 만나게 된 얘기까지 속속들이 털어 놨다.
" 그래서 어쩔건데, 어머니 생각보다 오빠 마음이 제일 중요하잖어.. "
"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 누구 편을 들수도 없는 문제고.. "
" 나는.. 오빠땜에 이혼까지 했는데, 이제와서 접으라는건 말이 안되지.. "
" 핑계 같지만 그때 니가 이혼만 했어도 이렇게 복잡하게 얽히진 않았을거야.. "
아무 생각없이 살고자 했건만, 움직이지도 못할만큼 복잡하게 얽혀진 내 신세가 한심스럽다.
" 내가 물러나길 바라는거야? "
" 그건 아냐, 그때 너랑 합칠려고 했던건 진심이었어.. "
다른건 몰라도, 형편없는 나같은 인간을 자신의 남자로 받들어 준 미진이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항시 고향집 같은
푸근한 느낌이 들곤 했다.
" 솔직이 말해 봐, 오빠 마음속에 있는 여자가 누구야.. "
" 집에서야 내 핏줄을 가진 인숙이를 원하고, 막내딸처럼 따르는 소영이를 볼땐 파렴치한 인간이 된것 같아서 힘들어..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너랑 있을때가 제일 편안해.. "
모질지 못한 탓이겠지만, 인연으로 엮어진 그녀들 중에서 누구를 내친다는건 나로서는 고문보다 더 한 형벌이다.
" 어쩌겠다는거야, 그럼.. 결론을 내야 할 사람이 자긴데.. "
모든걸 잊고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무슨 팔짜를 타고 났길래 인연의 끈이 이리도 질긴지 모르겠다.
"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
" 몰라.. 이번엔 양보 못해.. "
" 이 근처에 민물 매운탕 잘 하는데 없냐? 우리 춘희가 먹고 싶다네.. "
이튿날 오전까지 침대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민식이 혼자 우리 객실로 들어섰다.
" 이제 보니까 여자한테 잘하네, 민식씨.. 춘희가 부럽다.. "
" 적당히 해, 임마.. 꼭 푼수처럼 보여.. "
" 안 그래도 춘희가 바보라고 놀리더라.흐흐.. "
춘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못난이로 취급을 받아도 좋은 모양이다.
" 여자한테는 편한 남자가 좋은건데.. 우리 오빠는 너무 밴댕이라.. "
" 그러길래 내가 꼬실때 넘어 왔어야지.흐흐.. "
" 하여간에 변죽은.. 그러니까 여자한테는 진심을 담아 줘야지, 가볍게 장난하는 식이면 누가 넘어가냐.. "
" 그건 그렇구, 부탁하나 하자.. "
한번도 본적 없는 모습이다. 저렇듯 신중할 만큼 무게가 있던 놈이었는지 새삼 의문이다.
" ............... "
" 춘희가 딸이 보고싶은 모양이야.. 전세집이라도 얻어주고 싶은데, 당분간 미진씨 집에 와 있으면 안 되겠냐? "
" 글쎄, 뭐라고 대답하기가 그러네.. 쉬운 문제는 아닌것 같어.. "
" 내 생각도 그래요, 춘희 딸이 적응을 할런지도 모르겠구.. "
" 당분간이야, 니가 사는 구반포 쪽에 빈 아파트가 나오면 바로 옮길테니까.. "
춘희한테 어지간히 마음이 기운듯 하다. 작은 평수의 전세집도 이,삼억은 넘지 싶다.
서울쪽으로 오는 48번 국도변에 유명한 메기 매운탕 집이 있다.
월요일 낮이라 그런지 넓은 가게가 한산한 편이다. 큰 냄비가 35,000원 이면 가격도 저렴하다.
미진이가 식사라에 매운탕을 덜어 내 앞에 내려 놓자, 민식이가 국자를 뺏어들어 그릇에 담아서는 춘희 앞에 내민다.
" 그렇게나 춘희가 이쁘냐.후후.. 그러니까 바보 소리를 듣지.. "
" 바보면 어떠냐, 자꾸 챙겨주고 싶은데.. "
" 보기만 좋네, 뭐.. 오빠도 좀 배워야 돼.. "
" 그만해 오라버니, 남들이 흉보는것도 모르고.. "
" 괜찮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건데 누가 뭐라고 한들 대수냐.흐흐.. "
모두들 민식이를 두고 한마디씩 하지만 본인은 전혀 개의치를 않는다. 소신있는 민식이의 모습이 보기에 좋다.
" 근데, 춘희 딸이 몇살이지? "
" 9살.. 왜.. "
" 우리 친구가 춘희 걱정을 많이 하네.. 애가 눈에 밟힌다고 했다며.. "
" ................ "
앞일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춘희를 아끼는 민식이를 위해 도움을 주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걸 바라보는 것도 힘든 일일게다.
" 데려올수 있으면 데려오지 그래.. 민식이가 챙겨주고 싶은 모양인데, 부담 느끼지 말고.. 허튼 말을 하는 친구는
아니니까.. 그렇게 보고싶은 딸을 떼어놓고 맘이 편하겠어..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