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78

바라쿠다 2012. 6. 28. 12:44

" 그렇게 하도록 해, 당분간 출근시간도 조절해서 애한테 신경을 써 주라고.. "

" .............. "

" 그래, 춘희야..   새끼하고 어떻게 생이별을 한다니.. "

춘희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린다.       민식이 놈이 시선을 돌리고는 헛기침을 해 댄다.     춘희를 안쓰러워 하는것이다.

" 전학을 해야 할테니까, 일단 주소를 우리집으로 옮기라구.. "

" ...고마워요, 형부.. "

" 고맙다는 말은 민식이한테 해야지, 모두가 다 이 친구 머리에서 나온건데.. "

" 고마워요..   자기.. "

" 그만 울어, 좋은일에 눈물까지 보이냐.. "

민식이가 격하게 어깨를 들썩이는 춘희를 끌어안아 다독여 준다.     울음이 그칠때까지 그네들을 바라보는 미진이다.

" 그래, 이제 그만해..  딸아이 하고 같이 지낼수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일이 어딨니.. "

시켜놓은 메기 매운탕엔 손도 가지 못할 정도로 춘희의 서글픔이 커 보인다.

눈물이 잦아드는 초희를 달래주느라, 모두가 진심으로 그녀의 슬픔을 위로했다.

천금같은 아이를 떼어놓고 집을 나섰으니, 그간 오죽 가슴앓이를 했겠는가.     웃어도 웃는게 아니었을테고, 입으로

넘기는 밥도 모르긴 해도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었으리라.

우연히 '이차선 다리'에 와서도, 건성으로 손님들과 떠들며 술을 마실 뿐이지 마음은 딸아이에게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 민식이가 좋아한다고 들이댈때만 해도, 자신의 기분을 아랑곳하지 않는 그가 딴 세상의 룸펜처럼 마음에 와

닿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계속되는 민식이의 호감이 어느정도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영양소가 되어 조금쯤은 위로가 됐을테고, 차츰 먼

발치에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되돌아 보는 여유도 생겼으리라.

한시도 잊어 본적이 없는 딸을 데려올수 있다는 말에, 민식이의 진심까지 전달되어 맘껏 자신의 서러움을 토해내는 중이다.

 

" 밥 좀 줘, 배고프다.. "

" 조금전에 메기탕 먹었잖어.. "

집에 돌아와서 여독에 찌든 때를 씻는다고 샤워들을 했다.

" 춘희가 콧물까지 흘리는 통에 밥이 넘어가디? "

분위기가 가라앉아 식사들을 할 기분들이 아닌지라, 메기탕엔 손도 대지 못했고 덩달아 모두들 출출했을 터다.

" 어머 ~ 미안해요, 형부..   얼른 차려 드릴께.. "

미진이와 춘희가 부산을 떨어 넷이서 식탁에 둘러 앉았다.

" 밥 차리면서 콧물 빠뜨린건 아닐테지.후후.. "

" 형부 ~ 그만 놀려요.. "

" 콧물이 빠지면 대수냐, 맛 만 좋으면 되지.흐흐.. "

" 오라버니 ~~ "

" 춘희가 저리도 좋을꼬.호호.. "

다행히 원래의 기분을 되찾은 춘희다.      민식이와의 사랑 놀음이 보기에 좋다.

" 그래, 좀 자중해라..   나중에 춘희 딸이라도 오게 되면 애 앞에서는 체면을 지켜야지.. "

" 아무렴 내가 그만한 눈치도 없겠냐..   친구라는 놈이 저런식으로 우습게 아니.. "

" 너만 보면 불안해서 그래, 임마..   모르긴 해도 춘희 딸이랑 정신연령이 비슷할걸.후후.. "

" 야 ~ 너 자꾸 모함할래.. "

" 하기야 어떨때 보면 애들처럼 철이 없더라.호호.. "

" 춘희 너까지.. "

" 맞는 말인데, 뭐..   민식씨를 챙기는것도 보통일은 아닐거야, 춘희가 고생깨나 해야 할걸.호호.. "

서로를 다독이느라 상대의 기분을 살펴가며 실없는 소리로 웃음꽃이 피고 있다.     주위사람의 마음이 편해야, 자신 역시

편한 법이다.

 

미진이와 춘희를 가게에 바래다 주고 민식이가 자신의 집으로 간 후에 소영이와 통화를 했다.

성미가 모친과 만나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어떤 결심을 했는지가 궁금해서 그냥 기다리기가 어려웠다.

" 언제 왔어.. "

가게문을 닫고온 성미가 현관으로 들어선다.

" 조금 전에..  얘기는 잘 됐어? "

" 사고는 혼자 치고 다니면서 궁금하기는 한가 보네.. "

말속에 뼈를 담은듯 하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 싶다.      제 뜻대로 안되면 길길이 뛰고도 남을 성격이다.

"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소영이도 있는데.. "

" 그래도 창피한건 아는 모양이지..   소영이가 술상 좀 차려라, 나도 한잔 해야겠다.. "

눈치가 빤한 소영이가 거실 테이블에 술과 오이를 썰어 올려놓고는, 먹던 찌개를 렌지에 끓여댄다.

" 너도 이리와, 아빠로 삼고 싶다면서 애교를 부렸으니까 너도 알건 알아야지.. "

성미와 내 잔에 술을 따른 소영이가 옆에 앉아 귀를 기울인다.

" 소영이도 호적에 올리겠다고 했어..   당신하고 소영이가 죽이 맞아서 그렇게 원했잖어.. "

" 당연하지, 우리 막내딸인데 그렇게 해야지.. "

" 니 년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딴소리 하면 그냥 안 둘거야, 명심해.. "

" ...알았어.. "

기세가 등등한 성미에게서 심한 말이 쏟아질까 봐 주눅 들어있던 소영이다.

" 어머니 말씀이 동서가 애기를 낳으면 호적에 올린다고 하길래 나도 그러겠다고 한거야, 노인네가 무슨 변덕을 부릴까

싶어서.. "

" 그래서, 모친도 그걸 인정하시겠대? "

" 처음엔 핏줄을 낳아주는 동서한테 양보를 하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더라구..   그럴수는 없다고 했지, 동서하고도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다고도 했고.. "

설명을 하면서도 모친과의 만났던 당시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 나중에는 당신의 팔순때 누가 며느리로 나설거냐구 하시잖어, 글쎄..   동서하고 같이 잔치를 치뤄 드리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서로 의논들을 하라고 하시더라.. "

모친과 성미의 만남이 나쁜 모양새가 아니어서 그나마 한숨을 돌린 심정이다.      한 고비를 넘어 원만한 합의가 된 것이다. 

" 다행이다, 쉽게 마음을 바꿀 노인네가 아닌데..   당신과 소영이를 좋게 봤지 싶어.. "

" 인정은 내가 하는거지, 당신이나 어머니가 하는게 아냐..   소영이 년이 하도 당신을 따르니까 이 상태로 가 보자는거지..

앞으로 똑바로 해, 어영부영 했다간 진짜 가만있지 않을테니까.. "

하여간에 나긋나긋한 말과는 담을 쌓은 여자다.    모친을 만날 생각으로 전전긍긍하던게 엊그젠데, 언제 그랬냐는듯

큰소리를 쳐 댄다. 

" 그럼, 이제부터 한 식구가 되는거야? "

옆에서 눈치를 보던 소영이가 반색을 한다.

" 니 년이 그렇게 하자며.. "

" 또..  애한테 욕 좀 하지 말라니까.. "

다 좋은데 걸진 입이 문제다.      생긴건 멀쩡한데 어찌 욕을 달고 사는지 모르겠다.

" 히 ~ 아빠랑 가보고 싶은데가 있는데.. "

" 어디를..  우리 딸이 가고 싶은데가 어딜까.후후.. "

" 나이트,히히..   정민이가 자기 아빠랑 나이트에 다녀왔다고 자랑을 하더라니까.. "

"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 난다고, 학생이 무슨 나이트야..  까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

" 그래, 같이 가보자..  아빠랑 같이 가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냐, 이번 토요일쯤에 가보지, 뭐.후후.. "

새로 얻은 이쁜 딸이 원하는데 무엇인들 아까우랴..   뭐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 어린애를 데리고 사탕발림이나 하고, 그저 혼자서만 천사표지..   늦었어, 그만 들어가 자..   당신도 빨리 씻구.."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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