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80

바라쿠다 2012. 7. 4. 00:46

" 여자가 또 있단 말이야, 지금? "

" 그 분 누군데요.. "

만나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털어 놨다.      내 얘기를 전해들은 인숙이와 정인이의 반응이 판이하게 다르다.

" 소영이 엄마하고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알던 여자야..   나랑 살겠다고 이혼까지 했어, 얼마전에.. "

" 어쩜 좋아, 형님이 알면 난리가 날텐데.. "

" 혹시 그 분이야?   여기 '아지트'에서 만난.. "

딸이래도 여자이기 때문인지 예감이 정확하다.      미진이를 보고서는 맘에 든다고도 했던 딸아이다.

" 그래..  그 사람한테도 얘기를 해 줬어..   소영이 엄마하고 당신이 나를 나눠 갖기로 했다고.. "

" 뭐래요, 그 분은.. "

" 양보할수 없대, 자기가 뭐땜에 이혼을 했겠냐구.. "

" 난 몰라, 내가 나섰을때도 많이 힘들었을텐데.. "

성미에게 나 와의 관계를 허락 받아서인지, 그저 성미의 입장만을 염려하는 인숙이다.

" 소영이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생각해 둔게 있어, 아빠는? "

" 하도 답답하니까 털어 놓는거지..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

전쟁터에 나가 총을 쏘는게 쉬울것이다.    여자들의 틈 바구니를 헤엄 친다는건 그야말로 엄청난 고행이다.

" 어찌 그렇게 정이 많으냐, 선배는.. "

그나마 셋 중에 가장 젊은 사고를 지닌 인숙이까지 내 허물을 탓하고 있다.

" 아빠 생각이 제일 중요하잖어, 그 분하고는 어쩔건데.. "

" 나 땜에 힘들게 됐는데 어떻게 모른척을 하냐.. "

나를 따르려는 여자를 내칠수는 없다.      하물며 남은 인생을 나에게 맡기고자 이혼까지 한 여자다.

" 그 분에 대해 모두가 알게되면 시끄러울수 밖에 없잖어.. "

" 그래서 걱정 아니냐.. 휴 ~~    소영이 보기가 제일 힘들어, 어린놈이 나를 어찌 생각할지.. "

세상 경험이 많은 어른들끼리야 서로의 허물에 대해 너그러울수도 있겠지만,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소영이한테까지

이해를 하라고 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 그런 생각이 있는 사람이 만나는 여자마다 정을 준대, 나만 해도 선배가 그런 사람인줄 몰라서 그랬지만.. "

" 당신을 알기 전에 만난 사람이라니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잘못만 따지냐.. "

"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

" ............... "

" 일단 이모는 모르척 하세요..  소영이는 내가 눈치를 봐서 얘기 할께.. "

" 형님은..  길길이 뛸텐데.. "

" 기다려 보세요, 어쩌면 잘 될수도 있을테니까.. "

딸아이가 구세주처럼 보인다.     누굴 닮았는지 모르지만 평소보다 이뻐 보인다.

 

" 할머니가 나서야 하실것 같아서.. "

인숙이를 돌려 보내고 딸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딸아이가 나서서 제 할머니한테 모든걸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한다.

" 정말 현실로 왔구나..   난 설마 했는데.. "

" ................ "

영문을 모르는 딸과 함께, 모친의 넋두리나 다름없는 과거를 들어야 했다.

" 정인이 니 할아버지도 아빠처럼 여자문제로 이 할머니 속을 무던히도 썩혔지..   당시 걸음마를 떼던 아범을 데리고

예전부터 다니던 절에 갔었어..   주지스님이 아범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 보시더니 그러시더라, 핏줄은 속일수 없는거라구..

할아버지보다 더 한 여난을 타고 났다는 거야..   기가 막혀서 절에 갔던 이유조차 잊어 버리고 왔는데, 이제서야 그 분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구나.. "

" 그렇게 타고 난다는게 말이 되나요..   어쩜 좋아, 나도 아빠를 닮은건 아니겠죠.. "

딸아이의 말대로라면 큰일이 아닐수 없다.     내 앞가림도 벅찬데 딸아이까지 그런 사주를 물려 받았다면 보통일이 아니다.

" 남자와 여자가 한 집안에서 태어날순 없다더라, 안 그래도 정인이 니가 태어나서 걱정이 되길래 한번 더 다녀왔지..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될거야, 남자의 사주는 남자에게만 대물림되고 여자쪽도 마찬가지라고 했으니까.. " 

" 생각만 해도 끔직해요.. "

딸아이와 마찬가지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딸아이한테까지 대물림이 되지 않아 천만다행인 것이다.

" 아범은 모른척 하고 있게나, 일단은 내가 만나 볼테니까.. "

" 어쩌실건지 저도 대충은 알아야.. "

아무리 모친께서 해결을 하신다지만 무턱대고 처분만 바라고 있기에는 께름직하다.

" 글쎄, 나한테 맡기라니까..   정인이가 내 핸폰에다 전화번호나 입력 하거라..   인숙이가 1번이고 지금 그 여자가 2번,

소영이 에미가 3번이야.. "

" 그게 어머니 맘대로 그러시면.. "

모친께서 애착이 가는 순서대로 순번을 정해 버린다.    내가 품고있는 생각과는 전혀 틀린 우선 순위다.    

" 왜, 그게 어때서..   아범하고 나는 입장이 틀려, 내가 나서서 마무리를 하는것 만도 감사해야지.. "

" ................. "

하기야 노인네의 입장으로 본다면 자신의 핏줄을 이어주는 인숙이가 이쁘기도 할것이다.      그렇지만 성미가 세번째로

밀려난건 어떤 괘씸죄가 적용된 느낌이다.

" 하나만 물어 봄세, 다른 여자가 또 있는건 아니겠지.. "

" ....다른 여자들은 다 정리가 됐어요..  저도 앞가림이 힘들어서.. "

" 아빠 ~ 도대체 어쩔려구 그렇게나 많은.. "

과년한 딸 앞에서 할 짓이 아니다.     제 아빠를 무슨 괴물보듯 진저리까지 친다.

 

미진이의 거취가 결정이 날때까지, 소영이 엄마의 얼굴을 볼수가 없어 인숙이 집에서 이틀밤을 보내야 했다.

첫날밤엔 둘이서만 시간을 보냈지만, 둘째날엔 인숙이의 퇴근시간에 맞춰 승용차로 퇴근을 시켜서는 아기용품을 사러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촉박해서 몇가지 사지도 못했지만, 용품을 고르는 내내 행복해 하는 인숙이의 얼굴을 본게 그나마 큰 소득이다.

이른 아침에 인숙이를 승용차로 출근을 시켜 줬더니 그렇게 좋아할수가 없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한게 안스러워 같이 있는 시간만이라도 잘해 주고자 한 짓이지만, 계속 보살펴 줄 여건도 안 되기에

적당히 접어야만 했다.      인숙이에게만 막연한 기대를 심어줄수도 없음이다.

 

" 아저씨가 사장님이야? "

반포 아파트에 차를 가져다 놓고 미진이 집으로 갔더니, 거실에서 혼자 TV를 보던 꼬마 아가씨가 아는척을 한다.

" 넌 누구냐.. "

" 우리 엄마 딸이야.. "

춘희가 자기 딸을 데려온 듯 했다.     지 엄마를 쏙 빼 닮아 피부가 가무잡잡하고 윤곽마저 이쁘다.

" 엄마는 뭐하는데.. "

" 장사하느라 피곤해서 자는중이야.. "

어른을 보고 어려워도 않고, 반말로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는게 맹랑해 보인다.

" 어른들한테는 존대말을 해야지..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 줬을텐데.. "

" 나는 똑똑한 사람한테만 존대말 한다..   아저씨가 나보다 똑똑한지 그건 모르잖어.. "

안방문을 열어 봤더니, 늦게까지 장사를 했는지 미진이가 세상 모르고 곯아 떨어져 있다.

" 그래, 우리 똑똑한 아가씨는 아침 먹었니?  "

" 아직..  엄마가 일어나면 차려줄거야.. "

" 아저씨가 배가 고파서 피자를 시킬려고 하는데, 너도 먹을래?   먹기 싫으면 아저씨 것만 시키구.. "

" 별로 먹고 싶진 않지만, 아저씨 혼자 먹으면 심심할테니까 같이 먹어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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