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81

바라쿠다 2012. 7. 6. 00:27

" 너 피자 좋아하는구나..   이름이 뭐냐? "

" 원래 내 이름은 잘 안 가르쳐 주는데, 아저씨한테만 특별히 가르쳐 주는거야..  수진이야, 박수진.. "

볼수록 맹랑한 녀석이다.      보통 애들이라면 바뀐 분위기에 주눅이 들 법도 한데 당찬 구석이 있다.

" 너 진짜 아저씨 맘에 든다, 처음부터 이름도 가르쳐 주고 얼굴도 엄청 이쁘네.. "

" 아저씨도 그 정도면 못생긴 얼굴은 아니야.. "

피자를 사 줬더니 대놓고 어른을 칭찬까지 한다.     보통 영악한 녀석이 아니다.

" 야 ~ 고맙다..   수진이가 사람보는 눈이 있네.후후..    근데, 너 언제 왔니? "

" 어저께..   엄마가 좋은학교로 전학도 시켜주고, 아저씨는 이쁜 책상하고 컴퓨터도 사 준댔다.. "

아이 앞에서는 거짓말 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민식이 놈이 수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물공세를 펼칠 모양이다.

" 좋겠네, 수진이는..   나도 그런 선물을 해 주는 아저씨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 피 ~ 그게 보통 이쁘게 생긴다고 되나..   나처럼 최고로 이뻐야지..   그 아저씨가 그랬어, 나처럼 이쁘게 생긴 애는

처음 봤대.. "

" 그건, 아저씨도 마찬가지야..   너처럼 이쁜 애는 진짜로 처음 봤어.. "

앞으로는 수진이에게 잘 보이기만 해도 값 비싼 꽃등심이나, 맛있는 먹거리를 마음껏 먹을수 있을것이다.

더불어 수진이와 민식이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해주고 싶다.

" 어머 ~ 언제 오셨대요?    수진이가 밥 대신에 피자로 호강하네.호호.."

제 방에서 나온 춘희가 식탁 위에 놓인 피자를 보더니 한 입 물어간다.

" 응, 나는 별로 생각이 없는데 아저씨가 심심하다고 같이 먹어 달래잖어.. "

" 형부, 식사 차려 드릴까요? "

" 아냐, 나도 수진이 덕분에 심심치 않게 한끼 때웠어.후후..   민식이가 언제 오는지 몰라도 언니나 깨워야겠네.. "

 

" 보통 정성이 아냐, 춘희도 민식씨를 많이 기대는것 같애.. "

민식이가 오기를 기다려 수진이를 데리고 함흥 냉면집에서 끼니를 때웠다.

백화점 가구 매장에서 수진이의 책상을 산다고 민식이와 춘희가 상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 한사람 더 구해야지 싶어, 춘희를 저렇게 좋아하는데 '이차선 다리'에 내 보내고 싶겠어? "

" 춘희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었는데.. "

" 수봉이한테 잘해 줘, 걔가 우리가게 기둥이야.. "

" 누구지.. "

얘기중에 미진이의 핸폰이 울린다.      폴더를 열고 통화를 하는 미진이가 곤혹스런 표정이 된다.

두 손으로 핸폰을 감싸고 통화를 하는 폼이 모친의 전화인듯 싶다.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더니 한참을 통화를 한다.

" 어머니셔..   어쩌지, 지금 집으로 오라시는데.. " 

" 당신 얘기를 했어..  가 봐, 당신을 좋게 보신 모양이야..  노인네가 좋아하는 밴댕이 젓갈도 싸 가지고 가.. "

" 머리도 엉망인데, 큰일이네.. "

" 그런건 신경쓰지 말고 얘기나 잘해, 나 땜에 이혼까지 했다고 말씀 드렸으니까.. "

결국 발만 동동거리던 미진이가 미장원이라도 들려야겠다며 혼자서 집으로 돌아갔다.

" 미진씨는.. "

쇼핑을 마친 민식이가 다가왔다.

" 볼일이 있다고 먼저 갔어.. "

" 수진이 전학땜에 반포 초등학교로 가야 하는데..   근데, 초희한테 메시지가 왔더라..   시간되면 한번 만나자고.. "

" 초희한테서 왜 연락이 왔는지 너는 모를거야.후후.. "

헤어진 마당에 메시지를 보낸 이유야 뻔한 것이다.      민식이가 춘희한테 3억이나 되는 전세집을 얻어 준게 배가 아파

견딜수가 없었을 것이다.

" 당연히 모르지, 니 놈은 알고 있다는 얘기네.. "

" 약 좀 오르라고 내가 가르쳐 줬지..   춘희한테 전세집을 얻어 줬다고.. "

" 그랬구나, 의리도 없는 지지배가 욕심은.. "

" 이따 같이 가보자, 약이나 바짝 올려놓게.. "

 

춘희와 수진이를 반포 초등학교 앞에 내려주고는, 전학 절차를 끝낸후 택시를 타고 돌아가라고 했다.

'아지트'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기에, 커피 전문점에 앉아 초희의 약을 올려주기로 모의까지 했다.

" 어떻게 둘이 같이 오신대.호호.. "

" 불청객까지 와서 싫은 모양이네.. "

어떤 식으로 민식이를 다시 꾀어낼지가 사뭇 궁금하다.       생긴건 이쁘장하게 포장이 됐는데 품고있는 생각은 영 아니다.

" 그렇게 도도하던 초희가 보기 싫다고 가라고 할땐 언제고 메시지까지 보냈을꼬.. "

말하는 중간마다 주섬주섬 안주와 술을 테이블에 가져다 놓고는 민식이와 나의 동태를 살핀다.

"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한다니, 내가 언제 쫒았다구..    오빠 혼자서 오해를 한거지.. "

" 오해는 무슨, 내가 초희한테 푹 빠졌다고 바보로 취급하네..   분명히 그랬잖어, 초희를 집에 들어 앉힐게 아니라면 장사

방해말고 나타나지 말라구.. "

" 남자가 돼서는 그 말을 나쁘게 받아 들이냐..   손님들이 추근 대는걸 보면 오빠가 맘이 상할까 봐 그런거지.. "

술장사를 오래 하더니 말을 바꾸는 것도 전문가 수준이다.       뻔히 아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태연직스럽다.

" 그래서 내 친구랑 몸을 섞은것도 숨기셨네, 그려.. "

순간, 초희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간다.     내가 민식이에게 말하리라곤 예상을 못했지 싶다.

" 이보시게, 초희여사..   인연이 된다는게 그렇게 쉬운게 아닐세, 진심도 없는 사랑이 얼마나 가겠어..   민식이를 욕심

내는건 이해가 되지만, 그럴려면 진작에 올인했어야지..   이게 뭐야, 그런식으로 사탕발림을 한다고 넘어가는 놈이라면

어딘가 부족한 인간이겠지..   초희는 그런 놈을 데리고 살고 싶냐구.. "

" .............. "

당연히 반박할 말이 없을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표정이 이채롭다.

" 이미 늦었어, 민식이가 좋아하는 여자가 이 근처로 이사 올거야..   혹시라도 마주치면 잘 봐둬, 그 여자와 초희여사가

다른 점이 뭔지..   사귀다가 헤어 졌다고 웬수가 되란 법은 없잖어.. "

 

벌레씹은 얼굴이 된 초희가 주방으로 가서 제 할일을 하는동안 미진이가 '아지트'로 들어선다.

모친과 마주하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궁금해서 끝나는대로 오라고 했던 것이다.

" 뭐라셔.. "

" 여자들끼리 다투려면 시작도 하지 말래..  오빠 사주가 그렇다면서.. "

주방에 있던 초희가 언더락스 잔을 가져와서는 미진이를 살핀다.

" 아 ~ 이쪽은 민식이 애인 아냐, 내 손님이니까 가서 일 봐요..  그래서 뭐라고 했어? "

" 뭐라고 하긴..  이런 상황에서 할 얘기나 있겠어, 다 오빠가 저지른 일인데.. "

" 핑계 같지만 내 잘못만은 아니야, 니가 빨리 결정만 됐어도 이렇게 꼬이진 않았다니까.. "

" 됐어, 순 바람둥이..   어머니 말이나 명심해, 여자들끼리 합심해서 더 이상 여자가 늘어나지 않게 하래..  더 이상 여자가

생기면 당신도 모르시겠대.. "

" 지금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여자들이라니..  그리고 니 모친 얘기는 또 뭐냐.. "

옆에서 듣고있던 민식이가 끼여든다.       어차피 세 여자간에 모두 알게 될터라 민식이와 함께 자리를 한 것이다.

" 알고 싶은게 많아서 먹고 싶은것도 많겠다, 이따 얘기해 줄께..   일단 가게로 가지, 사람을 구할때까지는 수진이 엄마는

초저녁에만 있는걸로 하자구, 애도 돌봐야 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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