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83

바라쿠다 2012. 7. 12. 22:40

" 자기가 왜 소영이 엄마한테 쩔쩔 매는건데, 가지말고 그냥 있어..    웃겨 정말, 나보다 5살이나 어리면서.. "

일요일 오후를 미진이 집에서 민식이, 춘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성미에게서 핸폰이 왔다.

모친과 얘기를 나눈 모양으로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미진이가 대신 흥분을 하는 중이다.

" 그래도 가 봐야지, 당신이란 존재를 알게 된 모양인데.. "

" 글쎄, 가지 말라니까..   지가 무슨 본 부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잖아..   오빠는 그냥 모른척 하고 있어.. "

당분간 골치 깨나 아프지 싶다.     모든 사실이 드러났으니 서로간의 기싸움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진이 말마따나 내가 나서서 좋은 꼴을 당하기는 애저녁에 그른듯 싶다.      치사해도 미진이 뒤에 숨어 있는게 옳은지도

모르겠다.     

소영이에게 핸폰을 해서 바쁜일이 있어 못 간다고 핑계를 대고는 엄마한테 전하라고 했다.

" 너도 츠암 ~  적당히 좀 하지, 아주 꽃밭에서 사는구나..   부럽다, 부러워.흐흐.. "

가뜩이나 골치가 아픈데 민식이 놈까지 이죽거린다.       불이 붙은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 시끄러 임마 ~  지금이 어느땐데 놀리고 있어.. "

" 흥 ~ 그렇게 부러우면 오라버니도 따라서 해 보지 그래요? "

민식이의 농담에 춘희까지 눈을 치켜뜨며 곱지 않은 모양새다.      완전히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돼 버렸다.

" 오빠는 인숙이한테 전화해서 이리로 오라고 해.. "

" 배도 불러오는 인숙이를 뭐땜에 불러.. "

셋중에 제일 대가 약한 인숙이다.      미진이와 성미 사이에서 휘둘릴걸 생각하니 나라도 나서서 막아주고 싶다.

" 어머니가 나한테 신신당부를 하시더라..  소영이 엄마는 성격이 고약해서 못 믿겠으니까, 나더러 형님처럼 인숙이를 잘

돌봐 주라고 하셨어.. "

지기 싫어하는 성미의 성격을 파악한 모친께서 미진이를 앞세우기로 하신 모양이다.    

세 여자 사이에서 난감할수 밖에 없는 나로서는, 모친의 용별술에 감탄을 할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내가 나선다 한들 제대로 교통정리를 할 자신도 없음이다.

지지고 볶고 싸우던지, 말든지 그녀들에게 맡기고 뒤로 빠져 있는게 현명한 처신인 듯 싶다.

 

" 일단 먹으면서 얘기 하자구, 자네보다는 내가 5살이 많으니까 말 놔도 되겠지.. "

민식이와 춘희를 집에 남겨두고, 신림동에 새로 생긴 보양식 집에 마주했다.

" 그러세요, 저야 상관없지만 소영이 형님이 혼자 빠지신걸 알면 난리가 날텐데.. "

성미와 나이가 동갑이건만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는 인숙이다.     첫 대면때의 이미지가 호랑이 형님으로 박혔지 싶다. 

" 그런건 걱정하지 마..  어머니가 그러셨어, 내가 나이도 제일 많으니까 맏이로서 동서를 잘 챙겨주라고.. "

" 그 말은 맞는것 같다, 소영이 엄마 눈치를 너무 보는것 같애..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어.. "

피붙이도 없는 인숙이가 혼자 짊어지는 짐이 큰 듯 싶어 안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 앞으로는 나를 친언니처럼 생각하고 자주 연락해..   먹고 싶은게 있으면 내가 직접 해 줄테니까.. "

" ...네.. "

그나마 미진이가 인숙이를 다독이는걸 보니 조금은 맘이 놓인다.      성미한테서는 기대하지도 못할 일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전복이랑 오골계 살을 발라 인숙이 앞에 건네 주는 미진이다.

" 얼마전에 소영이 형님이 선배 등에 손톱자국을 냈다고 하길래 무슨 소린가 했더니, 그게 형님이.. "

" 허 참, 이 사람이 별 소리를 다 하네.. "

" 그것 봐, 그 사람이 자기가 본부인 행세를 하는거라니까..  언제 한번 만나면 따끔하게 얘기를 해 줘야지..  같은 처지끼리

이해는 못할 망정 시샘은.. "

미진이가 성미를 잔뜩 벼르고 있는 눈치다.      내가 끼여들 입장이 아닌듯 싶다.

" 그게 아니고 서로 조심하자고.. "

" 글쎄, 동서는 신경쓰지 말라니까..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서로 돕고 사는게 맞는거야, 혼자서만 기득권을 내 세운다고

누가 따라 주기나 한대? "

 

" 엄마가 밥도 잘 안먹어.. "

국밥집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갔더니 소영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 그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구나..   엄마보다 너한테 더 미안해.. "

" 언니한테 들었어, 엄마가 떠났을때 만난 분이라며..  난 괜찮어, 아빠..  엄마나 잘 달래줘요, 많이 힘든가 봐.. "

애한테까지 면목이 서질 않는다.     무슨 놈의 팔자가 이리도 복잡하게 얽히는지 모르겠다.

그저 큰 욕심없이 살고자 했지만, 운명이 비비 꼬이는 사주를 타고나서 이런 고초를 겪는단 말인가.

" 그래도 기어 들어올 배짱은 있나 보네.. "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성미가 날을 세운다.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불콰하다.

" 술을 마셨어도 그렇지, 말 버릇이 그게 뭐냐..   기어 들어오다니.. "

성미의 기분이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지만, 소영이 앞에서 써야 할 말은 아니다.

" 왜, 어때서..  이 상황에서 대접이라도 받고 싶다는거야..   내 팔자가 그렇겠지, 무슨 남자복이 있겠어.. "

" 점점..  말 좀 가려서 해..   뭐야, 교양없이.. "

" 교양 좋아하네, 내가 미친년처럼 빨개벗고 거리를 쏘다니기 일보 직전이야.. "

서로간에 감정이 상해서 억양이 높아지고,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 엄마 ~ 이제 그만해.. "

" 아니, 이년이 누구편을 드는거야..  딸을 삼아 준다니까 눈에 뵈는게 없나, 어디서 버릇없이.. "

" 그래도 아빠는 엄마한테 져 주잖어, 흐 ~ 엉..  어떤 놈처럼 엄마를 때리지는 안찮어.허 ~ 엉.. "

곁에서 마음을 졸였을 소영이가 우리들을 향해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      어린것이 제 분을 삭이지 못한채 흐느끼고 있다.

" ............... "

" ............... "

" 내가 그랬잖어, 아빠를 떠나지 말자고..  그때 내 말만 들어 줬어도 이런일은 없었을거 아냐.엉 ~ 엉.. "

세상을 살아가는게 내 맘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고 살고자 했다.       혼자 사는 외로움을 핑계삼아

살다보니, 만나는 여자마다 정을 끊어 버리지 못한 내 탓으로 인해 이런날이 오고야 말았다.

 

" 아침 식사해요.. "

인숙이 집에서 아침을 맞았다.      성미 집에서 있을 기분도 아니었지만, 어린 소영이가 나를 이리로 보냈다.

" 아빠 오늘은 이모집으로 가요, 엄마 기분이 풀어지면 내가 전화할께.. "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성미집을 나설수 밖에 없었다.       밤새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기만 했다.

가스렌지 위에 있는 된장찌개를 식탁으로 옮기는 인숙이의 배가 제법 티가 난다.

" 소영이가 많이 속상했겠네.. "

" 이따 학교에 가거들랑 잘 살펴 봐..   그 녀석한테 미안해 죽겠어.. "

어른들 세상이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무법 천지라지만, 어린 소영이의 눈에는 못난 아빠로 보였을까 싶어 속상하다.

" 여자애라도 뚝심은 있어, 너무 걱정하지마 선배.. "

" 할 짓이 못돼, 맘 같아선 한사람하고만 같이 가고 싶어.. "

" 피 ~ 다른 남자들은 선배를 부러워 할걸.. "

" 농담할 기분 아냐,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뭘 알겠니..    인숙이야 이렇게 배가 부른데 모른척 할수도 없고, 소영이만

보면 마음이 아퍼..   그렇다고 나 땜에 지 신랑하고 갈라선 미진이를 내칠수도 없고.. "

앞일이 어찌 될지는 하늘만이 알겠지만, 지금 현재의 심경이 편하다는건 도둑놈 심보가 아니고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 미진이 형님은 언제 만났어, 사람이 편해 보여.. "

사람을 보는 눈은 다 비슷하지 싶다.     누구에게나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미진이다.

" 왜, 인숙이 편을 들어줄 사람처럼 보였나 보지.후후.. "

세여자가 싸우지 않고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어찌됐든 인연으로 얽혔는데, 지금처럼 서로를 적대시 한다면

나부터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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