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85

바라쿠다 2012. 7. 16. 12:30

그로부터 한달여가 흘러 모친의 팔순 잔치날이다.

연분홍 치마에 남색 저고리를 똑같이 맞춰 입었다.    한복을 맞추러 가면서도 미진이와 성미의 기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모친의 한복을 맞춘 곳에서 미진이가 인숙이를 데리고 다녀왔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댄 성미는 소영이, 정인이와 함께

한복을 맞췄다.

외아들인걸 뻔히 알고 있는 집안의 친척들은 똑같은 한복을 차려 입은 여자들이 모친 옆에서 시중을 들자, 모두들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표정들이다.

" 지금부터 자손들이 오늘의 주인공이신 박말순 여사에게 절을 올리는 순서를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아드님과 며느리는

앞으로 나와주세요.. "

세 여자가 나란히 내 옆에 서서 모친에게 함께 절을 올리자 하객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 아니, 저게 무슨일이래, 며느리가 셋이나 되네.. "

" 그러게, 분명히 외아들인데.. "

정인이와 소영이까지 절을 한 후, 미진이를 시작으로 자손들의 축하 노래가 이어진다.

처음엔 영문을 모르던 손님들도,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셋씩이나 되는 며느리가 돌아가며 노래를 하자 웅성거림이 극에

달했다.

" 아니 어떻게 저런일이.. "

" 신문에 날 일이네, 지금 시대가 일부다처제도 아니고.. " 

마지막 차례인 인숙이가 한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산만한 배를 지탱하고자 한쪽 손을 허리에 짚고 위태롭게 노래를

는 중이다.

순서에 따른 회순이 얼추 끝나고 밴드의 연주에 맞춰 노래 자랑을 하고 싶은 하객들이 마이크를 잡고있는 동안, 테이블을

돌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다니게 됐다.

" 여자가 끊기지 않던 부친께서 자당의 속을 그리도 썩이더니, 자네는 한술 더 뜨는구만. 쯔쯔 .. "

모친의 사촌동생인 외당숙께서 혀를 차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질책을 한다.

" 그리 됐습니다, 당숙..   건강하시지요.. "

" 어찌 그리 부친을 빼 닮았는지, 업보인게야.. "

 

친척들과 손님들의 테이블이 20 여개나 됐다.       그 테이블들을 돌며 한잔씩 받아 마신술도 꽤 많은 양이다.

" 보기 좋네요, 부인을 셋씩이나 거느리고.. "

'이차선 다리'의 식구들 테이블에 '아지트'의 초희가 미숙이와 나란히 앉아있다.

" 우리 사장님 바람둥이라니까.호호.. "

" 왜들 이래, 사람을 면전에 두고.. "

모처럼 쉬는 일요일에 희안한 구경을 해 댔으니 오죽이나 찧고 까불겠는가..  그녀들이 나누었을 얘기가 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이 되고 남음이다.

" 그러니 미숙이 니가 아무리 들이댄다고 관심을 주겠니.. "

" 별소리를 다하네, 초희여사는 민식이 여자친구나 봐 둬.. "

" 어머, 민식씨도 왔어요..  어딨는데.. "

" 언니도 참, 저쪽에 있잖어..  춘희 딸까지 데리고 왔네.. "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가지 길이 있을것이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지만 사랑보다 우선일순 없을것이다.

남녀간의 신뢰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초희같은 여자와의 사랑이 결코 오래 갈리는 없다.     딸과 함께 민식이 옆에 앉아있는

춘희가 새삼 여자다워 보인다.

그녀들의 웃음 소리를 뒤로하고 영희와 여진이가 있는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 뭘 여기까지 왔어, 그냥 집에서들 쉬지.. "

" 그래도 와 봐야지, 우리 영희 애인인데.호호.. "

" 지지배가 꼭 나만 걸고 넘어진다니까..  그러는 너는 남이니? "

늦게 만나는 바람에 정을 줄수 없었던 영희와 친구 여진이도 어찌보면 내 사주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처해진

내 입장 때문에 더 가까이 할수 없었을 뿐이다.

" 오빠도 참 대책없다, 앞으로 여자들 등쌀에 어찌 살려고.. "

" 그러게 말야, 기싸움들을 할때는 누구 편도 들수 없다니까.. "

" 어머, 여기까지 오셨네..   정말 고마워요.. "

우리 테이블로 와서 아는척을 하는 미진이다.      여진이의 고기집에서 두번이나 회식을 했으니 서로가 아는 처지다.

" 축하드려요, 동서들이 많아서 좋으시겠어요.. "

" 놀리지 마세요, 안 그래도 아랫동서가 지 멋대로라 속상해 죽겠는데.. "

" 이 사람이 무슨말을 하는거야, 집안일을 밖에서.. "

하지 말아야 할 얘기를 영희와 여진이 앞에서 풀어낼까 봐 조바심이 난다.    

" 혹시 당신..  문여사랑도 무슨 썸씽이 있는건 아니겠지? "

" 어허 ~ 이 사람이 점점.. "

 

" 노래는 소영이 에미가 제일 맛들어지게 하더구나, 그 노래 제목이 뭐랬지.. "

" 이선희가 부른 '인연'이라니까 할머니는..   또 물어 보시네.. "

잔치가 끝나고 반포집에 모여 앉았다.       잔치를 하는 내내 성미의 표정이 어색해 보인걸 모친도 눈여겨 보신 모양이다.

인숙이가 임신을 하고 나섰을때는 마지 못해 받아 들이며 자신에게 우선권이 있는듯 행동을 했지만, 느닷없이 미진이가

튀어나와 잔치를 주도하는듯 하자 양상이 뒤바뀐 것이다.

" 나이를 먹으니까 자꾸 잊어 버리네, 언제 틈나면 에미한테 그 노래 좀 배워야겠구나.. "

서로가 만나 친하기도 전에, 미진이가 잔치비용을 부담한다고 나서자 주도권을 뺏긴 꼴이 돼 버린 성미다.

모친도 그런 성미의 속내를 눈치채고는, 어떻게든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 하는듯 보인다.

" 내가 가르쳐 드릴께, 할머니..   저도 노래 뎁따 잘해요.히히.. "

" 국밥집을 하니 고생이 많겠구먼..   그래, 장사는 어떤고.. "

" ...잘 되는 편이에요, 얼마전에도 어떤 사람이 분점을 냈으면 좋겠다고.. "

연이은 모친의 관심에 마냥 입 다물고 있을수만은 없었는지, 그제서야 성미가 대화에 끼여드는 태도를 취한다.

" 음식 솜씨가 좋은 모양이구나..   나도 한번 먹어 봐야겠네.. "

" 이 사람이 그런 얘기를 왜 이제사 하나, 체인점 하나만 내줘도 기천만원은 떨어 질텐데.. "

" 언제 얘기할 시간이나 있었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면서.. "

미진이가 전면에 나선 이후로, 성미의 닥달을 피하려다 보니 얼굴을 볼 기회가 적었던 탓이다.

" 어머 형님, 죄송해요..  이 사람이 형님이랑 말다툼을 했다고 집에 왔길래 그냥 그런가 보다 했죠..  다시 형닙집으로

가라고 쫒았어야 했는데.. "

인숙이가 제 잘못이라도 되는양 어쩔줄을 모른다.     

" 아범이 처신을 잘해야지, 남들보다 몇배의 노력을 해서 안사람들을 다독여야 할 사람이.. "

모친께서 걱정 하시는건 이해가 되지만 아무래도 쉬운일은 아니다.     인숙이나 미진이 성품이 온화한 듯 보여도 나에

대한 권리를 포기할리 없고, 성미 역시 불같은 성격을 지녔기에 운신을 하기가 조심스럽기만 하다.

" 아무래도 여자가 또 있지 싶어요, 어머니.. " 

" 여자가 또 있다니, 그게 무슨.. "

" 아빠 ~~ .. "

느닷없는 미진이의 말에 나를 위시해서 온 식구들이 놀랠수 밖에 없었다.

" 우리 동서들이 번갈아서 감시를 해야지, 믿을수가 없다니까요.. "

" 형님, 그 말이 사실인가요? "

" 당신..  똑바로 불어.. "

인숙이와 성미가 눈에 쌍심지를 키고 달려든다.      미진이가 여진이나 영희를 수상쩍게 본 모양이다.

" 무슨 소리야, 난 절대 그런적 없어.. "

모친과 세 여자, 심지어 정인이와 소영이의 눈초리까지 심상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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