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84

바라쿠다 2012. 7. 14. 03:53

춘희가 이사를 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했다.

요즘 미진이가 툭하면 모친에게 밑반찬을 가져다 드리는걸 핑계삼아 반포집에 들리곤 한다.

오늘만 해도 춘희의 집들이 선물을 같이 사자며 반포 집으로 쳐들어 왔다.

" 뭘 또 싸들고 왔어, 그냥 오면 어때서.. "

" 별거 아녜요, 기력에 좋다고 해서 오골계에 전복 넣은걸 사 왔어요..   두마리니까 어머니 하나 드시고, 하나는 막내

동서 불러서 먹이세요.. "

" 저런, 나도 못 하는걸 큰 며느리가 대신 챙기는구먼..   역시 맏이가 잘해야 집안이 화목해 지는 법이지, 그럼.. "

나이드신 모친의 칭찬 때문인지 싸들고 오는 재미에 푹 빠진 미진이다.      새벽까지 장사하느라 힘들었을텐데, 신림동에

있는 음식점까지 다녀온 모양이다.

" 잔치는 어디서 하고 싶으세요? "

" 잔치랄것까지 있나..  친척들하고 저녁이나 먹으면 되는게지.. "

" 그래도 십년마다 한번씩 오는건데..   성북동 쪽에 있는 요정은 어떠세요? "

아주 작정을 하고 모친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쓰는것처럼 보인다.      적게 잡아도 일,이천만원은 족히 들어야 한다.

" 웬걸..  너무 크게 벌리면 내가 불편해, 그냥 지나가면 아범이 욕 먹을까 싶어 하는게지..   난 그런데는 관심 없으이.. "

" 그래.. 절약해야지, 어머니도 번잡한건 싫어하셔..   깨끗한 부페나 찾아보자구.. "

" 처음 차려 드리는건데.. "

진작부터 마음을 먹었었는지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저렇듯 저돌적인 성격이었는지 미진이가 다시 보인다.

" 우리 맏며느리 마음은 고맙게 받을테니까, 이번만큼은 아범 뜻에 따르게.. "

" 그럼, 어머니 한복은 제가 맞춰 드릴래요.. "

" 한복도 아직 많아, 뭐하러 돈을 쓰누.. "

" 아녜요, 어머니..  제 친구가 역삼동에서 장사를 하는데 꽤나 유명하거든요, TV에도 나오구..   벌써부터 친구한테 미리

얘기를 해 놨기 때문에 꼭 가셔야 해요.. " 

" 허 ~ 사람, 참..   늦게까지 장사하느라 힘들텐데, 무슨 큰 돈을 번다구.. "

저렇듯 떼를 쓰면서까지 어른을 공경 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마다하겠는가, 모친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 춘희한테는 뭘 사가야 하나.. "

" 글쎄, 일단 가서 필요한걸 물어보는게 낫지 싶어.. "

웬만한 살림살이야 민식이 놈이 알아서 제일 좋은걸로만 채웠을 터다.      

 

" 아담해도 이쁘네.. "

" 그렇지 언니, 수진이 학교도 가깝고 조용해서 좋아.호호.. "

떼어 놨던 수진이와 같이 있을수 있어서일까, 전에 없이 밝아진 모습이 보기에 좋다.

22평짜리 아파트에 방이 두개 뿐이지만, 주방과 맞닿은 거실이 그럭저럭 넓은 편이라 비좁아 뵈지는 않는다.

" 그나저나 큰일이다, 얘..   니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는데, 이제는 애땜에 일도 못할테고.. "

" 당분간은 도와줄께, 11시까지만..   민식이 오라버니가 수진이를 봐 준다네.. "

" 너 괜찮겠냐, 집에 매일 늦게 들어가도.. "

아무리 지 멋대로 사는 놈이라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늦는다면 집에서 이상한 눈으로 볼수도 있다.

" 괜찮어, 아예 나이트크럽 하나를 인수했다고 했거든.흐흐.. "

" 웬일이냐, 니 놈 머리에서는 돌만 굴러 다니는줄 알았더니.후후.. "

그만큼 춘희를 위하는 마음이 클 터이다.       근처 상가에서 배달시킨 안주와 피자를 놓고 소주를 곁들였다.     

" 안 그래도 매일 수진이한테 당하는 중이야, 어린게 얼마나 영악한지.. " 

마누라가 이쁘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던가, 춘희 땜에 수진이까지 이뻐 보인다는 말일게다.

" 그래, 조그만 놈이 보통이 아니더라..   나한테도 반말로 따지더라니까.후후..   너도 앞으로 고생 좀 하겠다.. "

" 당신이 빨리 사람을 구해 줘야지, 아무리 민식씨가 돌봐 준대도 엄마만 하겠어.. "

" 그래야지. 며칠만 기다려 봐..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지.. "

미진이가 수진이를 걱정하는게 당연하다.      어린애가 제 엄마를 따라 왔는데 계속 혼자 놔 둘수도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민식이 놈이 춘희를 위해 술집이 아닌 작은 가게를 알아본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 니 모친 팔순이 언제라고 그랬지.. "

" 이제 보름정도 남았지, 그건 왜.. "

" 친구 놈이라곤 너 하난데 그냥 넘어갈수 있냐..   그 날 가서 술이란 술은 몽땅 마실려고 그러지.흐흐.. "

딴에는 무슨 선물이라도 챙길 모양이다.      다른건 몰라도 정이 많은 녀석이다.

 

세 여자가 모였다.      모친의 팔순 잔치땜에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잔다. 

인숙이야 번갈아 가며 미진이와 성미를 몇번씩 만났지만, 미진이와 성미는 처음 대면하는 자리다.

만나는 장소를 어디로 할것인가 부터 의견차이를 보이다가 반포집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미진이와 성미가 각자 자기집에서 만나자면서 처음부터 기싸움을 하는 양상까지 보였다.      나중에 그녀들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처음 만나는 자리가 맏동서 집이라는 의미를 줄수도 있다고 했다.

남자라고는 달랑 나 혼자였고 모친과 세 여자, 정인이와 소영이까지 거실에 둘러 앉았다.

" 장소는 정인이 아빠가 이미 정했고, 나머지는 우리 셋이서 분담을 하자구..   어머니 한복은 내가 책임지기로 해서 벌써

맞춰놨고..   무엇이냐, 기생이라도 불러야 되잖을까? "

" 기생은 무슨 기생, 자네들이 흥이 난다면 한사람씩 노래나 한마디씩 해주면 그걸로 만족일세.. "

미진이가 먼저 서두를 꺼내자 성미의 표정이 별로 좋지가 않다.      모친이 나서서 중재를 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불만을

터뜨렸을 것이다.       인숙이나 정인이, 소영이는 그저 눈치만 살피는 중이다.

" 그래, 기생은 좀 심했고 말재주 있는 사회자나 한사람 구해 보자구.. "

" 어르신들 잔치에는 기생이 와야 흥이 나는건데..  할수없지, 뭐..   그럼 내가 잔치 비용으로 천만원을 낼테니까, 가외로

추가되는 비용은 동생들이 나누기로 하자구.. "

" ..................... "

" ..................... "

미진이의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들은 없다.       인숙이야 그저 시키는대로 따르는 분위기였고, 성미는 하고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모친 앞이라 그래선지 별다른 행동은 자제하는 듯 보인다.

" 내 잔치를 차려준다고 이렇게 모였는데, 당사자인 내가 그냥 있으려니 좀 쑥스럽네..  대충 논의들은 끝난듯 싶은데,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세나.. "

모친 역시 성미의 기분을 눈치 챘는지 중간중간 조율을 하는 듯 추임새를 넣는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가 않는다.

모친의 말씀에 미진이와 인숙이가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하자 성미도 마지못해 주방쪽으로 다가선다.

" 인숙이 자네는 배도 부른데 주방에 있지말고 이쪽으로 와서 앉지, 저녁 차리는건 두 형님들에게 맡기고.. "

미리 준비해 놓은 음식들을 거실에 있는 상으로 옮기면서도 성미의 얼굴은 굳어있다.     소영이가 눈치를 채고 제 엄마를

거들고 나선다.     

미진이와 성미의 첫번째 기 싸움에서는 성미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이 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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