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일이 되어 아들을 순산했다.
나이가 들어 애를 낳은것에 비하면, 다소 편하게 산고를 치른 편이다.
인숙이가 아들을 낳자 갑자기 집안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미진이야 그렇다 치지만 성미는 유독 예민해 졌다.
" 아주 집에서 노인네하고 인숙이랑 살지 뭐하러 왔대.. "
병원에서 퇴원한 인숙이를 반포 집으로 데려다 놓으라는 모친의 뜻에 따라, 늦은 나이에 산고를 겪은 인숙이가 안쓰러워
보여 며칠간을 집에서 지냈더니 성미가 눈에 쌍심지를 키고 대든다.
" 이사람이.. 말투가 왜이래, 점잖치 못하게.. "
" 그래, 엄마.. 애기 낳느라고 힘들었을텐데, 아빠라도 옆에 있어 줘야지.. "
" 넌 가만있어, 이년아.. 어른들 얘기하는데 나서지 말고.. "
성격이 제 멋대로인것은 참아 줄순 있지만, 욕을 하는건 도저히 참고있기가 힘들다.
" 욕하지 말라고 그랬지, 언제까지 욕을 달고 살거야? "
오늘만큼은 버릇을 고치겠다고 작정을 하는데 핸폰이 울린다. 액정에 딸이 떠 있다.
~ 아빠.. 지금 어디야.. ~~
" 소영이랑 같이 있는데, 왜.. "
~ 미진이 이모가 애기를 본다고 집에 오셨는데.. 할머니가 소영이 엄마는 왜 안 오시냐구.. ~~
애를 낳은 인숙이를 보기위해 미진이가 집으로 온 모양이다. 모친의 입장에서도 동서를 챙기는 미진이가 대견해
보일것이다.
상대적으로 성미가 눈 밖에 날수도 있는 일이다. 성미와의 다툼을 잠시 접기로 했다.
" 미진이가 집에 왔다네, 당신도 한번 들려야 되지 않겠어? "
" 하여간에 나이도 제일 많으면서 여우짓은..
미진이 일이라면 촉각부터 곤두세우고, 트집을 부리려 드는 성미다.
" 엄마.. 우리도 같이 가보자, 나도 애기가 보고 싶은데.. "
" 애기 이름은 뭐야.. 출생 신고하기 전에 소영이 호적문제부터 정리해.. "
자기만 빠질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외출복으로 갈아 입는다. 덩달아 신이난 소영이도 옷을 갈아 입는다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핸폰이 다시 한번 떨어댄다. 이번에는 민식이 놈이다.
" 어쩐 일이냐.. "
~ 너 어디냐.. 지금 나 좀 보자.. ~~
"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나중에 만나자, 나 지금 바쁘니까.. "
~ 춘희가 애기를 가졌대, 임마.. 어쩜 좋으냐.. ~~
민식이 놈이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어찌보면 내 핏줄이 태어난 것보다 더 큰 경사일수 있다.
후사가 없어 이혼까지 했던 놈이다. 자기 핏줄이 없는게 하늘이 내린 운명으로만 알고, 안타깝게 포기까지 했던
놈이기에 그 기쁨은 이루 말할수 없을것이다.
" 지금 어디냐.. "
~ 어디긴, 반포 집이지.. ~~
"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께.. "
" 축하해요, 춘희씨.. "
아파트 앞에 성미와 소영이를 내려주고는 민식이한테 왔다. 거실에 있던 춘희가 딸 수진이까지 제 방으로 밀어넣는다.
" 무슨 축하요.. 애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데, 이 오라버니가.. "
" 자꾸 저런다, 어쩜 좋으냐.. "
춘희 입장에서는 또 다른 인연을 엮는게 불안할수도 있지 싶다. 하지만 민식이는 그토록 소원하던 제 자식이 생기는
일이다.
" 왜, 민식이를 아직도 못 믿어서 그러나.. 잘 알잖어, 착한 사람이라는걸.. "
" 그치만 숨어 살기는 싫어요.. "
법적으로 부인이 있는 민식이의 애를 낳아 기를수는 없다는 얘기다.
" 그거야 민식이가 해결하겠지.. 너 니 마누라와 이혼하겠다며.. "
" 그 여자가 순순히 응하겠냐, 얼마나 독종인데.. "
" 봐요.. 저러면서 애를 낳아 달라고만 하니.. "
인간성은 괜찮은데 추진력이 없는게 문제다. 어려서부터 남들한테 심한 말 한번 못해 본 놈이다.
" 이런 멍청한 놈..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니 새끼가 태어 난다는데 무슨 일이라도 해야지.. "
" 그게 어디 쉬운일이냐.. 너도 알잖어, 그 여자가 어떤 여잔데.. "
" 이런 답답한, 에구.. 제수씨 ~ 걱정하지마, 내가 다 해결해 줄께.. 넌 이리로 좀 따라 나와.. "
민식이와의 실갱이를 지켜보던 춘희의 얼굴에 문득 기대감이 어린다. 부인과의 법적인 해결만 된다면 민식이를
행복하게 해 줄 여자인 것이다.
민식이를 데리고 '아지트'로 왔다. 오랜만에 들렸더니 주인 초희가 호들갑을 떤다.
" 어머 ~ 웬일이래.. 완전히 우리집에 발 끊은줄 알았더니. 호호.. "
" 잠깐 얘기나 하다 갈거야, 남은술 있으면 주고 없으면 새걸로 하나 뜯어.. 술값은 새 신랑이 낼거야.. "
" .....새 신랑이라니.. 누가, 민식씨가? "
초희가 의외라는듯 말까지 더듬는다. 민식이에 대해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아는 초희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 민식이 놈이 새장가를 간다네.. 애 아빠가 되게 생겼는데 결혼식도 새로 해야지.. "
술과 함께 안주까지 가져다 놓고서, 초희가 슬며시 쇼파에 엉덩이를 걸친다.
" 내가 니 고민을 해결해주면, 형님으로 모실테냐.후후.. "
" 빨리 얘기나 해 봐, 도대체 무슨 방법이 있는지.. "
" 넌 뒤로 빠져, 대신에 니 모친하고 춘희를 만나게 해 줘.. 그러면 저절로 니 뜻대로 될테니까.. "
여자는 같은 여자가 더 잘 아는 법이다. 내가 여자들 사이에서 고민을 안고 있을때, 우리 모친이 나서서 모든걸 바로
잡은것과 같은 맥락이다.
" 잘 될까? "
" 글쎄, 염려 붙들어 매라니까.. "
" 무슨 얘기야, 민식씨가 새 장가를 간단 말이네.. "
옆에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초희가 궁금함을 못 참고 끼여든다.
" 누가 아니래.. 민식이 놈이 늦게나마 복이 터졌지, 뭐.후후.. "
" 복이 터지기는 그 여자가 터졌지, 민식씨같은 알부자를 물었으니.. "
초희의 표정이 볼만하다. 그저 민식이에게 돈이나 뜯어낼 생각으로 만났겠지만, 그 대상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게
배가 아픈 표정이다.
민식이와 헤어지고 집게 가려니 엄두가 안 난다. 세여자가 쳐다보고 있는 눈길을 견디고 앉아 있는것도 보통 고역이
아니다.
그녀들 각자의 기분을 살피는 것 역시 웬만한 머리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오랜만에 영희에게 핸폰을 했다. 만난지가 두달이 넘은듯 싶다.
택시를 집어타고 영희의 집으로 갔더니, 여진이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깨가 쏟아질텐데 무슨 일이래.. "
" 그만 놀려.. 세여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것도 쉬운게 아냐.. "
" 그러길래 무슨 여자 욕심을 그렇게 부렸대. 호호.. "
여진이가 재밌다는듯 놀려대는 중이다. 뭐라고 반박을 해야겠는데 궁핍한 머리로는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 오빠가 그러고 싶어 그랬겠니, 여자들이 가만히 놔두질 않아서 그랬지.. "
" 어머나 ~ 얘는 아직도 오빠만 감싸고 도네.. 완전히 열부났구먼. 호호.. "
영희가 차려준 술상 앞에서 한잔 하는중에 핸폰이 울린다. 소영이의 이름이 찍혀있다.
~ 아빠.. 빨리 오세요, 오늘 모두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간대요.. 인숙이 이모가 족발이 먹고 싶다고 해서 야식집에 주문을
했는데, 엄마가 빨리오셔서 같이 드시재요.. ~~
" 미안하지만 가봐야겠어.. "
소영이의 전화까지 받은 마당에 영희집에서 묵을수는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게 신상에 이롭지 싶다.
" 오빠 이제 큰일났다, 와이프들이 합심해서 감시를 해 대니. 호호.. "
이만 '아무생각없어'를 마칩니다.
품고있던 생각과는 달리 졸작으로 그치게 됐습니다. 시간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 보니 아쉬움이 많네요.
한가지 덧 붙인다면 여기까지가 완성작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지껏 끝난 '한지붕 세식구'나 '살아가는 이유'도 틈나는대로 부족한 점을 수정해 나가는 중입니다.
글의 부족한 점이나 좋은 소재를 알려 주시면 참고가 되겠네요.
여러분의 생활에 즐거움이 가득하길 빌어 봅니다.
2012. 7. 31 바라쿠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