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52

바라쿠다 2012. 5. 10. 14:41

샤워를 마친 미진이가 화장대에 앉아 스킨을 바르고 있다.

거울을 통해 보여지는 미진이의 얼굴이 촉촉하니 보기가 좋다.

원피스로 된 잠옷이 허리 라인을 따라 엉덩이를 그린듯이 감싸고 있어 팽팽하게 굴곡이 져 있다.

" 뭘 그렇게 찍어 바르누..  빨리 올라와.. "

" 여자는 잘때도 발라 줘야해, 그래야 수분이 마르질 않거든..   근데, 웬일로 다 보챈데.호호.. " 

" 니 엉덩이가 섹시해 보여서 그런다, 왜.후후.. "

" 치 ~ 듣기 좋은 소리도 할줄 알구, 오늘은 다른사람 같애.. "

수정이와 정리를 한다고 마음을 먹어서일까 개운한 마음이 드는것은 사실이다.     거기에 다소곳한 미진이가 대신 그

자리를 메꾼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편안해 진 탓인지도 모른다.

" 아냐, 진짜로 그전보다 더 이뻐졌어.. "

안하던 일을 해서일까, 볼살이 조금은 여윈듯 해서 확실히 그전보다 얼굴의 윤곽이 뚜렸하다.

" 됐네요, 언제는 찬바람이 쌩쌩 불더니..  가게를 나한테 떠 맡기는게 미안해서 그러는거 다 알거든.. "

" 어허 ~ 이쁘다고 하는데 그런식으로 한자락을 까냐..    이제부턴 이쁘다는 소리도 못하겠네.. "

" 그런다고 또 금방 삐지냐, 하여간에 밴댕이라니까.호호.. "

침대에 올라 시트속으로 파고든다.       내 가슴에 팔을 괴고는 눈을 마주한다.

" 앞으로 수정이는 어쩔거야.. "

아무래도 미진이에게는 중요한 문제일수 밖에 없을것이다.

" 어쩌긴 뭘, 며칠안으로 정리해야지.. "

" 그년이 순순히 물러설까.. "

살을 맞대고 누워서도 오직 관심사는 수정이의 향방이다.

" 가게에 투자한 돈까지 돌려 준다는데 지가 별수 있겠어, 어차피 사업은 젬병인데.. "

" 그래도 오빠한테 매달리면 어쩔거야.. "

" 그냥 나한테 맡겨, 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이제 그런 얘기 그만하고 이리와, 아까부터 서 있었어.후후.. "

골치 아픈 수정이 얘기나, 인숙이의 임신 소식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라도 미진이의 몸에 빠져야만 했다.

 

이틀간을 수정이와 인숙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느라 고심을 했다.

수정이야 박사장과의 인연을 빌미삼아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하는걸로 밀고 나가면 되겠지만, 애기를 낳아 기르겠다는

인숙이에 대해서는 명쾌한 대처방안이 떠 오르질 않아 답답하다.

이틀간이나 방안에서 꿈쩍도 않자, 성미도 심각하게 받아 들였는지 아무런 말도 묻지않고 그저 내 눈치만 살핀다.

" 아빠 ~ 정민이란 당구장 가기로 했는데..   같이 안 가실래여.. "

학교에서 돌아온 소영이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소영이 역시 방안에서만 지내는 나를 걱정하는 모습이다.

" 그래, 우리 막내딸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한번 볼까나.. "

성미와 소영이에게 마냥 걱정을 끼치게 하는것도 할짓이 아니라는 생각에 소영이를 따라 나섰다.

" 형님 ~ 가끔이래도 좀 들리시지, 얼굴 잊어 버리겠네요.후후.. "

당구장 주인 진식이가 반기지만 그마저도 건성으로 대할수밖에 없는 심정이다.

" 그래, 미안하다..  좀 바빠서 그랬구나, 장사는 여전하지.. "

" 그럼요, 저녁에는 자리가 없어요.. "

" 좋구나, 니 얼굴도 밝아보이고..  이건 우리 막내딸 게임비야.. "

소영이가 놀러 올때마다 게임비를 받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진식이에게 십만원을 건넸다.

" 에이 ~ 뭘 이런걸.. 소영이한테는 내가 생색을 냈는데.. "

애들이 당구치는 모습을 힐끗거린 진식이가 미안해 하며 돈을 받는다.

소영이와 정민이가 당구치는걸 구경하고 있는데 핸폰이 울린다.      부산에 내려가 있는 딸이다.

" 그래, 간만이구나..  잘 지내지.. "

~ 아빠.. 지금 할머니랑 같이 있어, 오늘 아침에 올라왔어요.. ~~

" 어, 웬일이야..  혹시 회사에서 짤린건 아니고.. "

~ 아빠는, 참..  짤리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

" 농담이야, 임마..  우리딸이 어디 짤릴 사람이냐, 회사를 짜르면 몰라도.후후.. "

~ 며칠 휴가 받았는데..  저기, 누구 소개할 사람이 있어.. ~~

사귀는 남자라도 있는지 선을 보이겠다는 말로 들린다.      찰나간이지만 딸에게도 소영이와 만나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떠 오른다.

" 일단 니 얘기부터 듣자, 너한테도 소개할 사람이 있는데..  이쪽으로 와서 핸폰해라.. "

 

준비도 없이 딸과 성미를 만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내 스스로도 알수없는 일이다.     

어쩌면 내 안에 있는 본능이 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그간 방황했던 생활에 지쳐서 그랬을수도

있고, 비록 딸 아이지만 훌쩍 커버린 녀석이 내 허물쯤은 덮어 주리란 생각이 들었었나 보다.

당구를 치는 소영이를 불러 언니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고는 친구 정민이를 돌려 보내라고 했다.

소영이와 같이 국밥집으로 가서도 성미에게 딸아이가 올것이라고 귀뜸을 해줬다.

" 아니, 갑자기 그러면 어떡해..  그런 생각을 했으면 가게를 쉬는 일요일에 집에서 만나든지 했어야지.. "

갑자기 딸아이가 만나러 온다고 통보를 했으니 성미 입장으로는 당황스러운게 당연할 것이다.

" 마침 만날일이 있었어, 그리고 그렇게까지 안달하지 마..  우리 소영이처럼 똑같이 대하면 될거야.. "

" 난 몰라, 화장도 안했는데.. "

시어른한테 선을 보이는 자리도 아닌데 어쩔줄 몰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 참, 이사람이.. 걔는 유일한 내 편이라구, 편하게 생각하라니까.. "

" 그래, 엄마..  난 새 언니가 생겨서 좋은데.. "

살아가는 세대가 틀려서 그런지 제 엄마와 같은 상황인데도 대처하는게 깔끔해 보이는 소영이다.

" 이년아, 니가 몰라서 그런거지..  처음 만나는데 이렇게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게 정상이니.. "

실랑이를 하는중에 딸아이가 근처에 왔다는 핸폰을 받고 마중을 나갔다.

 

" 어서와요, 편안하게 집에서 만나야 되는건데.. "

미리 딸아이한테 언질을 주고 가게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시켰더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딸과 달리 허둥대며

맞이하는 성미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말씀도 낮추시고요..  니가 소영이구나, 아빠 말대로 이쁘게 생겼네.. "

" 반가워, 언니..  언니가 더 이쁜데, 뭐.호호.. "

붙임성 있는 소영이로 인해 금새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 얘는 나보다 니가 더 어리잖어.호호.. "

딸이 보기에도 소영이가 맘에 드는지 말투에 꾸밈이 없다.

" 온 김에 국밥 맛이라도 보고가라, 돼지고기지만 먹을만 할거야.. "

" 그래요, 언니..  아빠가 레시피를 줘서 시작한건데 장사가 잘돼..  엄마 ~ 내가 차릴께, 언니랑 같이 앉아서 얘기해.. "

" 아빠라고 하는걸 보니까 내 동생이 맞긴 맞네.호호..  내 동생이 차려주는 국밥인데 맛있겠지, 뭐.. "

" 말밥이쥐 ~  기대해도 좋아, 언니.. "

다행스럽게 두녀석이 맘이 통하는것 같아 저으기 안심은 된다.

앞치마를 풀고 안쪽 식탁으로 딸아이의 손을 잡아 이끄는 성미의 표정은 만감이 뒤 바뀌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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