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49

바라쿠다 2012. 4. 16. 14:17

" 그만해, 오빠..   저 오빠 저러는게 어디 하루이틀이냐구, 우리끼리만 신경쓰자니까.. "

보다못한 초희가 민식이 잔에 술을 따르며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애를 쓴다.

" 어떻게 된 자식이 여자보다 눈치가 없어, 에잉 ~ "

" 이제 사장님도 그만해여, 나 때문에 왔다면서 술도 한잔 안주고.. "

미숙이가 옆에 붙어 술잔을 내민다.     제 딴에도 내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 것이다.

" 하여간에 저 자식은 나만 미워한다니까.. "

제 잘못은 모르고 서운하다고 툴툴거리는 민식이다.     한번 더 쏘아붙이고 싶은걸 참아내는 중이다.

미숙이와 잔을 들어 술을 마시는데 또 한번 핸폰이 떨어댄다.

그토록 궁금해 하며 기다리던 인숙이의 번호다.      호기심 어린 그네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회집 밖으로 나섰다.

" 오랜만이야, 금새 연락한다더니.. "

~ 선배, 나 술 마셨다.호호.. ~~

술을 마신 인숙이의 목소리가 처연하게 들린다.       무슨 고민이 있길래 혼자서 끌어안고 있는지 답답하다.

" 뭔 일이야, 씩씩한 사람이.. "

~ 내가 원래 미련하잖어, 선배를 꼬시는게 아니었는데 바보같이 정을 줘서는.. ~~

" 인숙이가 눈이 낮아서 그래, 둘러보면 좋은 남자가 널렸는데.. "

바닷바람이 온 몸을 집어 삼킬듯이 휘몰아쳐 온다.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커먼 바다가 토해내는 바람이 문득문득 파도머리를 날리며 위용을 뽐낸다.

~ 그러게 말이야, 이왕이면 괜찮은 놈을 고를걸..   내가 한심하지, 선배.호호.. ~~

자조섞인 인숙이의 푸념이 가슴을 후벼판다.

" 앞으로는 제대로 골라, 얼굴만 이쁘면 뭐하냐..  머리가 변변치를 못하니.에구 ~ "

~ 지금 어디야, 보고싶어.. ~~

생각도 못한 인숙이의 호출이다.     핸폰을 받고는 그저 반가움 뿐이었는데, 지금 그녀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

" ...... 미안해, 당장 달려가고 싶은데.. 여기 제주도야.. "

~ ..... 하여간 인간이..   이쁜구석이 하나도 없네, 필요할때 옆에 있어 주지도 못하구.. ~~

할말이 없기는 인숙이도 마찬가지였을게다.     모처럼 나를 찾았는데 손이 닿을수가 없는 거리에 있으니 황망할게다.

" ..... 잘못했다, 여기를 오는게 아니었는데..     내일 일찍 올라갈께.. "

~ ......괜찮어, 선배..  신경쓰지마, 대신 내 부탁 들어줘야 해.. ~~

발 밑에까지 파도가 밀려와 작은 포말들이 모래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제주도까지 내려와서도 핸폰을 끼고있냐..   복있는 놈은 다르다니까.. "

" 아이 ~ 형부, 또 그런다..  이쁜 초희언니가 옆에 있는데도 다른곳에 신경쓸 새가 있나보네.호호.. "

내 얼굴이 변하는 걸 본 미숙이가 민식이를 막고 나서는 폼이다.

" 그러게 말이다, 니 형부는 술만 들어가면 은근히 말을 안 듣더라.. "

초희까지 나서서는 나를 보며 참으라고 눈을 찡긋댄다.

" 내가 왜 말을 안들어, 얼마나 순한 양인데.흐흐.. "

술이 거나해진 민식이 놈이 앞뒤 분간을 못한다.

" 이만 들어가자, 민식이도 어지간히 술이 됐고..  난 바람이나 쐬고 들어갈련다.. "

더 있어봐야 민식이 놈 때문에 기분만 잡치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머 ~ 나도 갑자기 밤바다가 보고싶네, 같이 가야지.히히.. "

미숙이가 쫒아 일어나서는 부리나케 운동화를 꿰어찬다.

수많은 별들이 부서지는 바다는 시커먼 암흑속에서도, 가끔씩 하얀 파도가 너울너울 풀무질을 해 댄다.

어느새 곁에 온 미숙이가 팔짱을 끼고는 뭉클한 느낌으로 기댄다.

" 피곤할텐데 그냥 들어갈 일이지, 뭐땜에 따라나서누.. "

" 피 ~ 내가 누구땜에 여기까지 왔는데.. "

해안선을 따라 걷다가 모래언덕이 볼룩하게 솟아있는 둔덕에 자리잡고 앉았다.

" 미숙이 얘기 좀 해봐.. "

초희에게 듣기로는 어렵지 않게 산다고 들었는데 술집에 나오는 그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 나중에..  사장님하고 친해지면, 그때 봐서.호홋 ~ "

돌이켜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밝음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다.      첫만남부터 지금까지 찡그리는 걸 보질 못했다.

" 친해진다..   글쎄, 그럴때가 올래나.. "

지금도 많은 인연으로 편치 않은 일상이다.      남들은 여자복이 많아 좋겠다고들 하지만 그건 그들만의 착각이다.

젊을때야 여자가 많은게 훈장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옆지기도 없이 유랑하는 장돌뱅이와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와이프한테 져 주는것이 왜 그렇듯 하찮게 여겨 졌었는지, 돌이켜 후회하는걸 남들은 알리 없는것이다.

" 솔직하게 얘기 좀 해봐여, 수정이 언니 말고도 미진이 언니도 사장님과 썸씽이 있죠.. "

" 글쎄, 그런것까지 미숙이한테 얘기를 해야 하나.. "

"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호호..    수정이 언니보다 미진이 언니가 더 사장님을 기다리더라.. "

" 나하고는 상관없는 얘기야, 어차피 인연이 아닌걸.. "

세상 사람들이 보는 보편적인 관점으로서야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을것이다.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어쩌다 보니 몸을 섞게 되고 그로 인해 자꾸만 정이 쌓이게 되면 그녀들 쪽에선 욕심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내 쪽에선 그녀들 모두를 보듬어 줄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나는 여자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달라는데

그 또한 천부당 만부당한 욕심일 뿐이다.

내 핏줄을 낳아준 애 엄마와도 해로를 못한 인간이, 어떤 여자든지 평생을 같이 할 자신은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 나는 어때요, 언니들보다 훨씬 젊은데.. "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가 남자들이 꼬이는 상이다.     눈웃음만 쳐도 웬만한 남자들이 군침을 흘릴 얼굴인 것이다.

그까짓 나이가 어린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여자들이 또 하나 모르고 착각을 하는게 바로 그것이다.

남자들이 나이어린 여자를 밝힌다는 착각, 그 때문에 여자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젊어 보이려고 발버둥들을 치고

있다.

젊고 싱싱한 여자들이 이쁘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의 마음까지 쥐고 흔들수 있는건 아니다.

" 미숙이는 나이가 어린거 말고는 내세울게 없나보네, 나중에 자기 남자가 더 젊은 여자한테 눈길을 주면 어쩔려구.. "

" 어머 ~ 그것도 그러네.호호.. "

" 힘들고 괴로울때 생각나는 남자 없어?   아마 그 남자가 미숙이 짝일지도 몰라.. "

내 자신한테 얘기하듯이 미숙이에게 하게 된다.

" 그 상대가 사장님이면 안될까여.. "

항시 밝았던 미숙이의 목소리가 젖어서는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나는 아니야, 내 한몸 주체하기도 힘들어..    미숙이가 볼때 그걸 즐기면서 사는 인간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

이쁘기야 하지만 내 맘속에 담아둘 여자는 아니다.      괜스레 피곤할 일을 만들기도 지친 내 솔직한 심정이다.

" 부담갖지 말아여, 사장님과 어찌 됐다고 매달릴 여자는 아니니까..   그냥 한번 안아만 줘요.. "

나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의 상투적인 말이다.      그저 좋은 감정이라 생각하고 받아줬다가, 종국에는 마음을 다치고

헤어져야 했던 적이 많았다.

" 그건 미숙이 생각이구, 오래갈 인연도 아니면서 짝짓기만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

" 사장님이 아무리 그래도 오늘밤은 그냥 두지 않을거야.. "

자신의 머리를 내 어깨에 실어온다.      먼 바다쪽에는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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