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48

바라쿠다 2012. 4. 13. 21:11

토요일이다.       댓바람처럼 아침부터 민식이가 핸폰으로 보챈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 시간이 오후 1시로 알고 있는데, 아침 9시부터 잠을 깨워놓은 녀석땜에 은근히 약이 오른다.

" 식전부터 무슨 일이냐.. "

~ 여기서 11시에 출발할테니까 준비하라구, 미숙이도 '아지트'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 ~~

" 그것 때문에 잠을 깨웠단 말이냐, 간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

" 누구야, 공치러 간다는 친구야? "

주방에서 아침을 차리면서 가게로 나갈 준비를 하던 성미가 관심을 보인다.

~ 그러니까 미리 전화를 한거지, 또 밤새 술 마셨을까 봐.. ~~

" 넌 그래서 맨날 나한테 욕 먹는거야, 임마..   약속을 했으면 어련히 나갈까봐 식전부터 잠을 깨우냐구.. "

~ 초희는 벌써 준비를 마쳤거든.. ~~

아마도 초희 집에서 밤을 보낸 모양이다.     그저 여자 말이라면 무슨 사명을 받들듯이 하는 놈이다.

" 시끄러, 임마..  전화 끊어.. "

순간적으로 부아가 치밀어 민식이와의 약속을 깨고 싶을 정도다.

" 오빠하고 친한 친구같은데 왜 나한테는 소개를 시켜주지 않어? "

성미의 갑작스런 질문에 조금은 당황스럽다.       자신과 있는걸 내 주변에 알리지 않는다고 바가지를 긁고 있는것이다.

" 소개는 무슨..  니가 돈때문에 나를 버리고 떠난걸 아는 놈인데, 다시 니가 왔다고 좋아하는 꼴을 보이라는거야? "

이년전에는 성미의 성화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성미가 내 능력이 없음을 빌미삼아 떠난후에는

적잖이 나의 처지를 돌아보면서 마음 고생을 했었다.

그래서 마음 한켠으로는 성미가 다시 돌아온걸 대놓고 좋아할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같이 살아갈 남자의 사기를 꺽어놓은 여자가, 아무리 이뻐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덤덤 해 질수는 없는 노릇이다.

" 지나간 얘기는 자꾸.. "

성미도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나간다.     그런 뒷모습이 또 화를 돋군다.

 

느즈막히 '아지트'로 갔더니 민식이와 일행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 야 ~ 이제 오면 어떡해, 30분이나 기다렸잖어.. "

" 좀 조용히 할수 없냐..   안 나올래다 미숙이한테 미안해서 나온거야, 임마..   그까짓 회 아무데서나 먹으면 어때서.. "

화가 풀리질 않아 괜히 심술을 부리게 된다.

" 이제라도 왔으니까 됐잖어, 빨리 출발하자 오빠.. "

차 밖에 있던 초희가 조수석으로 올라탄다.

" 사장님도 그만 화풀고 가요.. "

미숙이가 내 팔을 붙잡고 뒷문을 열어준다.

반포에 있는 인터체인지를 통해 올림픽대로를 올라탄 민식이가 속력을 낸다.

" 천천히 가, 임마..  아직 시간 넉넉해.. "

" 그래요, 형부..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맛있는 회도 못 먹잖어.호호.. "

미숙이가 기분이 좋은지 형부라고 부르면서까지 애교를 떤다.

20분도 걸리지 않아 공항 주차장에 차를 댈수 있었다.       입이 댓발이나 나와있는 민식이를 풀어줄 요량으로, 초희가

달싹 달라붙어 공항청사로 바삐 걸음을 옮기고 미숙이와 내가 멀찌감치 뒤를 따랐다.

시간이 넉넉해서 20 여분을 더 기다리다 비행기를 탈수 있었다.

민식이와 초희가 앞 좌석에 앉아 희희덕거린다.     그새 초희가 민식이의 마음을 풀어준 모양이다.

저래서 여자를 요물이라고 하는걸게다.       하물며 2 년여에 걸쳐 눈독을 들이던 여자였으니 그 기쁨은 더 클 것이다.

비행기 창 밖으로 구름 한점없는 제주도의 풍광이 시야에 들어온다.

" 곧바로 목적지인 제주에 착륙을 할 예정이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어쩌구 저쩌구.. "

옆에 앉은 미숙이가 입이 귀에 걸려서 내 안전벨트까지 매주며 나를 쳐다본다.

웃는 모습이 가히 먹이를 노리는 뱀같이 느껴졌던건, 나만의 착각일런지 차마 분간조차 어렵다.

 

민식이가 분양받은 콘도에 짐을 풀고 택시를 대절해서 관광을 시작했다.

대머리가 벗겨진 택시기사가 이끄는대로, 짧은 오후를 식물원이며 민속촌을 다니며 민식이와 초희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나마 해녀들이 건져준 해물을 안주삼아 소주를 들이킬때는 조금은 마음을 풀수 있었다.

하지만 미숙이가 시중을 들어준다고 바싹 붙어 안주를 입에 넣어줄때는, 그대로 따라줘야 하는지 난감하기도 했다.

마지막 행선지인 바닷가가 보이는 회집에 앉았을때 서산에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 언니 고마워, 덕분에 제주도까지 와서 회를 먹네.호호.. "

" 그게 왜 내 덕이니..  민식이 오빠가 서운하겠다, 얘.. "

" 초희가 먹고싶다고 해서 왔으니까 미숙씨 얘기가 맞지,뭐.흐흐.. "

남녀가 좋아하는데 무슨 법칙이 있어야 하는건 아니지만, 민식이가 초희한테 내 놓은 카드가 궁금하다.

절대로 민식이에게 넘어가지 않으리라던 초희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데는 틀림없이 달콤한 당근을 먹었을 것이다.

" 사장님 이것도 좀 드세요, 안주도 없이 술만 드신다니.. "

미숙이가 안주를 싸서 소주잔과 함께 내민다.     제 딴에는 붙임성있는 짓을 하는게지만 마음은 영 불편하기만 하다.

" 내 친구지만 이해를 못하겠다, 미숙씨 같은 미인이 챙겨주는데 뭐땜에 우거지 상인지.원.. "

자신이 놀러오는 경비를 책임져서일까,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민식이다.

" 나도 내 자신을 잘 모르겠다, 부탁인데 나 좀 냅두면 안되겠니..   첨부터 얘기했지만 진짜로 미숙이가 없었으면 따라

오지도 않았을거야.. "

" 자 ~ 이제 그만하시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기분좋게 마시자구여.. "

초희는 내 성격을 아는지라 그저 관망을 하는 중이고, 미숙이는 나름대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를 쓴다.

돈지랄을 하는건지 비싼 자연회를 세가지나 시켰기에, 빈 소주병이 열개가 되는데 안주 접시는 바닥이 보이질 않는다. 

그때 핸폰이 울려 받아보니 성미의 전화다.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가 가까워 온다.

일행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입술에 손가락을 붙이고 전화를 받았다.

~ 지금 끝낼려구, 소영이 년이 바꿔달래.. ~~

아마도 아침나절에 성미와의 일을 소영이가 알고 있는듯 내 기분을 풀어주려 함일게다.

" 너 또 소영이한테 일 시켰냐? "

툭하면 지 딸을 불러 가게일로 부려 먹는게 못마땅하던 차다.

~ 아냐, 지 친구랑 놀다가 지금 가게에 들렸거든..   아빠 목소리 듣고 싶다길래.. ~~

~ 아빠 ~ 나야, 막내 딸..  또 엄마가 아빠한테 대들었다면서.. ~~

자기를 귀여워 해 주는걸 알고는, 제 엄마와 나 사이가 틀어지지 않게끔 영악하게 대처를 한다.

" 아냐, 그런거..  아빠가 오늘 기분이 별로였거든, 걱정하지 말고 자거라..   되도록이면 내일 들릴께.. "

~ 알았어, 아빠..  내일 일찍와, 친구가 요리학원에 등록하겠대.. ~~

그러고 보니 그동안 바빠서 두녀석이 원하는 학원에 대해 알아보질 못했다.

" 그래, 알았다..   내일 보자.. "

 

" 아빠라니, 너 언제 결혼했냐..  누가 니 딸을 돌봐 주는건데.. "

통화내용만 듣고서는 민식이가 지레짐작을 하는중이다.

" 엉뚱하기는.. 흰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

남자녀석이 말을 하는데 있어 조심성이 없다.      가운데 다리의 무게만큼보다 중심이 없어 가볍게 움직인다. 

또 다시 테이블 위에 놓아둔 핸폰이 부르르 떤다.       액정을 보니 영희다.

~ 또 술 마시는 중이지.호호.. ~~

" 귀신이네, 어찌 알았대.. "

~ 몸 생각도 해야지, 그렇게 마시면서 혹사를 시키면 어떡해..   지금 어디예요.. ~~

굳이 영희한테까지 행선지를 알려줄 이유가 없다.      또한 아무때나 핸폰을 하는것도 주의를 줘야겠다는 생각이다.

" 좀 멀리 있는데, 제주도.. "

~ 어머나, 일행들이랑 같이 있겠구나..  할말만 하고 얼른 끊어야겠네, 여진이가 다음주에 쉰다고 한번 보자던데.. ~~

" 그러자고 해, 그리고 나중에 통화하자구.. "

~ 네, 그럼 술 조금만 마시고 일찍 자요.. ~~

" 도대체 오빠는 무슨 사무가 그렇게 바뻐..  옆에 숙녀를 앉혀두고 실례다.. "

초희가 미숙이한테 눈길을 주면서 나를 힐란한다는 투다.

" 내가 뭘, 그리고 그게 미숙이하고 무슨 연관이 있어야 하나.. "

" 그래, 맞어.. 어디 핸폰에 눈이 달린것도 아니고, 오는 전화를 어쩌겠어.. "

미숙이가 내 대신 변명을 하는 폼이 자존심을 상하기 싫다는 뜻으로 들린다.

" 원체 인기가 많은걸 어쩌라구, 옛날부터 여자들이 가만히 놔 두질 않았거든.. "

딴에는 아는척을 하는게지만, 도대체가 안심을 할수없는 위인이다.

" 넌 도대체 언제쯤 철이 들래, 내가 어쩌든지 니 멋대로 도마위에 올려도 되는거냐? "

'아무생각없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생각없어 50  (0) 2012.04.24
아무생각없어 49  (0) 2012.04.16
아무생각없어 47  (0) 2012.04.12
아무생각없어 46  (0) 2012.04.11
아무생각없어 45  (0) 2012.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