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

여왕벌 49

바라쿠다 2012. 3. 24. 12:19

재윤이의 품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어깨를 흔드는 통에 잠에서 깨어난 숙희다.

" 지금쯤 나가야 되는데, 피곤하면 좀 더 자든지.. "

자신을 내려다 보는 재윤이의 얼굴을 보고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잠을 쫒는다.

" 아냐, 자기도 피곤할텐데 같이 가야지.. "

" 나는 이력이 붙어서 괜찮어, 숙희씨가 힘들지.후후.. "

재윤이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 밑에 서서 물줄기를 맞는다.

바쁜 마음에 계곡쪽에 비누거품을 묻히고 있는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재윤이가 방에서

자신을 보고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 얼굴도 이쁘지만 엉덩이도 귀여운데.후후.. "

샤워를 하고 나와 화장대 앞에 앉은 정숙이의 뒷모습을 보고는 응큼스럽게 웃는 재윤이다.

" 치 ~ 이쁜 여자가 다 죽었나 보다.. "

젖은 머리를 털면서 재윤이의 말을 맞받으면서도 그의 칭찬이 살갑기는 하다.

재윤이의 차를 타고 가락시장으로 향했다.       담배를 피우는 재윤이 땜에 열어놓은 창으로 새벽바람이 들어온다.

일상을 새벽과 함께 시작하는 재윤이의 부지런함에 새삼 그가 다시 보인다.

" 어이구, 오늘은 사모님과 같이 나오셨네.. "

특산품을 파는 한 가게로 들어서자 사장인듯한 남자가 반긴다.

" 버섯은 들어왔지..  요즘 물량이 엄청 딸려 고민이야.. "

자신의 가게인양 의자에 앉아있던 사장을 잡아 끌고는 대신 그 자리를 꿰어찬다.

" 알지, 정사장..  나한테 먼저 줘야 하는거, 이번에 물건을 맞춰주지 않으면 오랜 단골을 잃을 판이야.. "

" 두고 보자구,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 "

사장이 자동 판매대에서 뽑아온 커피를 마시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고는 일어섰다.

그렇게 들른 도매상이 과일과 특산품, 야채등등 합쳐 이십여곳에 이른다.

가는곳마다 재윤이를 대하는 거래처 사장들의 태도가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 한결같이 따사롭다.

그네들이 건네주는 커피나 음료는 입에 대지도 않은채 버려질거란 쓸데없는 생각이 떠올라 속으로 웃음 짓는 숙희다.

"이제 아침이나 먹자구.. "

어느새 먼동이 터 오는걸 본 재윤이가 시장안에 있는 한 식당으로 이끈다.     새벽이건만 식당안은 활기가 넘친다.

숙희에게 묻지도 않고 설렁탕을 두개나 시켜서 입에 떠 넣기 바쁜 재윤이를 보며, 평상시의 방탕한 생활과는 전혀 틀린

모습에 잔잔한 호감이 인다.

" 매일 들릴수는 없어..   이 시장만 하더라도 네개로 나뉘어서 이틀을 돌아야 하고, 청량리나 영등포까지 다니자면

일주일에 한두번 만나는게 고작이야..   더군다나 지방에도 일주일에 한두번 내려가야 하니까 몸이 두개라도 부족해.. "

" 와 보길 잘한것 같애, 전화로 주문만 받고 바람이나 피러 다니는줄 알았지.호호.. "

" 맞어, 바람둥이.후후..  하지만 애엄마하고 사이가 좋았다면 쓸데없는 방황은 안 했을거야.  나도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

남들이 볼땐 멀쩡하게 처자식까지 있으면서 행복하게 사는줄 알테니까.. "

새벽시장에 나와 설렁탕으로 아침을 때우면서, 고해나 다름없는 얘기를 풀어놓는 재윤이가 측은해 보인다.

" 다 먹었으면 일어나, 오늘은 영등포까지 들려야 해.. "

출근시간이라 올림픽도로가 많이 막히자 졸음이 밀려와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 한숨 붙이라구, 도착하면 깨워줄께.. "

조수석 시트를 뒤로 젖히고는 곧 바로 단잠에 빠져드는 숙희다.

 

아침에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의 강렬함에 눈을 뜬 정숙이다.

밤새 제임스와 강쇠의 저돌적인 공격으로 인해 꿈속을 헤매다 자신도 모르게 늦잠을 잔 것이다.

킹사이즈 침대라 자신의 양쪽에서 실오라기 하나 없이 알몸으로 곯아 떨어진 녀석들이다.

잘 생긴것도 맘에 들지만, 잊지못할 섹스의 기쁨을 안겨준 녀석들의 잠자는 모습조차 사랑스러워 보인다.

젊은만큼 강한 힘으로 자신을 번갈아 가며 헤집어 올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이 방에서 며칠간이고 갇혀 지내고 싶은 심정이다.

웬수같은 남편 재윤이를 떠 올리면서 주섬주섬 벗어놓은 옷을 몸에 걸치기 시작했다.

창문에 있는 커튼을 닫아 햇빛을 가리고, 잠자는 녀석들의 뺨을 번갈아 어루만지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출근시간이라 택시를 잡기가 만만치 않아 지하철 입구까지 걸어와서야 겨우 잡아탈수 있었다.

진희가 재윤이를 아침까지 붙잡아 둔다고 했지만, 혹시라도 웬수가 집으로 들어왔을까 봐 초조해진다.

딸아이 미정이가 엄마를 위해 여우짓까지 하면서 제 아빠의 눈가리개를 해 주지만, 행여 자신이 외박한걸 알기라도

한다면 예전의 큰 잘못까지 있었던 자신을 가만히 놔 두고 볼 위인이 아니다.

아파트에 도착해서도 현관문을 열고는 제일 먼저 웬수의 신발이 있는지 둘러보게 되는 정숙이다. 

안방까지 들여다 보고는 웬수가 들어온 흔적이 없자,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리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하루 저녁에 두 녀석의 팁으로 100만원을 줘야 했지만 그정도 액수면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지금 당장 웬수같은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 준다면, 삼박사일이라도 녀석들과 지내고 싶다는 달콤한 생각만이 들 뿐이다.

 

" 숙희씨 집이 어디랬지? "

피곤한 숙희를 차 안에서 모자른 잠을 자게끔 하고는 혼자서 일을 보고온 재윤이가 묻는다.

" 집은 왜.. 노량진 근처야.. "

" 그러면 여기서도 가깝네, 잘됐다.. "

알수없는 얘기를 꺼낸 재윤이가 운전을 해서는 근처에 있는 피부관리실에 차를 세운다.

" 한달치를 끊을테니까 앞으로 관리를 받아 봐, 잘 모르지만 좋아진다면 계속 다녀도 되고.. "

자신의 말만 하고는 피부관리실로 들어가는 재윤이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호기심에 재윤이를 따르기로 했다.

" 우리 애인 잘 부탁드립니다. "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원장과 몇마디 주고받지도 않고서는 선뜻 계산을 치룬다.

" 걱정 마세요, 태반 주사까지 맞으면 훨씬 더 젊어지실테니까.호호.. "

첫손님부터 우등고객을 확보한 원장이 과장된 친절로 아부를 한다.

" 그리고 뭣이냐, 손톱도 손질해 준다면서요.. "

여자들의 피부관리까지 꿰고 있는듯 거침없는 재윤이의 행동이 다소 당황스럽다.

" 원래는 안하지만 신부화장을 할때도 해 주니까 특별히 해 드릴께요.. "

" 그럼 부탁 좀 할께요..  지금 옷을 사러가야 하니까 미리 노란색으로 칠해 주세요, 발톱까지.. "

재윤이의 느닷없는 돌출행동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 그러세요, 남자분이 참 자상하시네요.호호..  이쪽으로 오세요.. "

졸지에 원장이 이끄는대로 내실로 들어가 가운으로 갈아입고, 가죽으로 된 시술침대에 누울수밖에 없었다.

한달에 이백만원이 아깝지 않을만큼 전신에 아로마 오일을 바르고 쓸어가는 원장의 손길이 정성스럽다.

밤을 새우다시피 한 정숙이가 나른함 속에서 한시간 가량 마사지를 받고는 손발톱에 손질까지 했다.

" 나이답지 않게 참 고우시네요.. "

고객카드를 본 원장의 칭찬을 듣고 대기실에 나오니 재윤이가 기다리고 있다.

" 그것봐, 내 말대로 하길 잘했지.후후.. 이쁠줄 알았다니까.. "

입이 함지박처럼 커지며 좋아하는 재윤이의 표정을 보자니 덩달아 흐뭇한 마음이다.

" 뭘, 자기가 이쁘게 봐 주니까 그런거지.. "

" 아니라니까, 거울도 안봤어? "

연신 치켜세우는 재윤이의 말에 도취되어 원장이 내미는 손거울을 들여다 보는 정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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