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27

바라쿠다 2012. 2. 21. 20:30

" 아빠 ~ 우리집 가훈,히히.. "

저녁에 매운탕을 끓여 식탁에 마주 앉았을때 성미가 술병을 집어들자 소영이가 우선권을 내 세워 뺏어 든다.

" 그게 무슨 소리야, 가훈이라니.. "

술병을 소영이에게 뺏기고, 술을 따르는 소영이를 어이없어 하며 바라본다.

" 우리집에 가훈이 하나 생겼어.히히..   아빠가 술 드실때 첫잔은 내가 따르기로.. "

" 원, 별 이상한 말도 다 들어보네.. "

" 소영이가 이쁘다는 말이야, 억울하면 당신도 애교를 떨든지.후후.. "

" 에그 ~ 됐네요, 소영이가 따라주는 술이 더 맛있다며.. "

짐짓 삐진것처럼 눈을 흘기며 투덜댄다.      자신의 딸을 이뻐해 주는걸 고마워 하는 그녀다.     소영이가 나를 어려워

않고 잘 따르는 것도 다행이라고 했다.      

이렇게나마 모녀의 슬픔을 어루만져 줄수 있다는게, 남자로서의 도리를 한 듯 뿌듯함이 인다.     

풍족하지는 못해도 웃고 살수만 있다면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다만 성미에게 더 많은 욕심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삐지기는.. 이리와, 당신도 한잔 해.. "

성미에게도 술을 따라주고는 가볍게 잔을 부딛쳤다.     못 이기는 척 술을 마시는 성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 소영이는 내일 학교 끝나면 전화하거라, 아빠하고 침대나 보러가자. "

" 네, 아빠. 말밥이쥐 ~ "

" 당분간 바쁠거야, 국밥집을 챙길수 있는 시간이 없어..  당신이 알아서 엉덩이 찜을 메뉴로 올리도록 해 봐. "

" 뭐 땜에 바뻐.. 오빠가 하는일이 뭐가 있다고.. "

여자문제 만큼은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미가 의심의 눈초리를 담는다.     국밥집을 차린게 내 힘만으로 되지 않은걸

어렴풋 짐작을 하는 그녀다.     

자신도 마지 못해서 받아 들이고는 내 동선을 유심히 살피는 중이다.

" 아, 이 사람아..  그냥 있으면 누가 밥 먹여 준다디..  술장사를 봐 주기로 했어, 빌린돈 갚을때까지..  그리고 아파트

월세라도 벌어야지.. "

어쩔수 없이 여자들과 만나고 다니는걸 묵인을 하고는 있지만 마음은 편치 못할것이다.

 

사당동 가구거리에서 내내 팔장을 끼고 침대구경을 하면서 재잘거리는 소영이다.

" 근데, 우리 담샘이 아빠가 지금 하시는 일이 뭐냐고 물어 보더라..  그래서 걍 사업해요, 그랬더니 또 무슨 사업이냐

물어 보잖어.. 그래서 잘 모르겠다고 그랬어. "

인숙이가 나에 대해 궁금한걸 소영이에게 물어본 모양이다.

" 다음부터는 걍 놀구 먹는다고 그래라.후후.. "

" 에이 ~ 그래도..  아빠가 백수란걸 알면 쪽 팔리잖어..  그건 마음에 안든다, 뭐. "

" 놀긴 노는데..   맨날 차 끌고 골프나 치러 다니고, 해외 여행이나 다닌다고 해라..   그래야 우리 막내딸이 쪽 팔리지

않지. "

" 정말, 그러네..   아빠, 그렇게 평생 놀구 먹으면 되겠다.히히.. "

" 그나저나 요즘에 남자친구는 만나니? "

" 네, 먼저번에 아빠가 놀러가라고 한 당구장에 데리고 갔거든..  거기 삼촌이 게임비도 받지 않고, 나한테도 우리

공주님,공주님 하면서 잘해 주니까 그 자식이 나를 다시 보더라니까.. "

후배 녀석이 소영이를 띄워주려고 신경을 써 줬지 싶다.     조금씩 성장해 가는 소영이가 밝은 성격을 갖게끔 하는게

지 엄마와 내가 해줄수 있는 일일게다.

" 당구는 쳐 봤어? "

" 배우고는 싶은데, 그 동안은 시간이 없었잖어.. "

" 그럼, 침대 사고 당구장에 가보자.   우리 막내 딸이 당구에 소질이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 와우 ~ 아빠가 당구도 칠줄 알어.. "

" 말밥이쥐 ~ 모르긴 해도 소영이 남자 친구한테 이길 정도는 될걸.. "

" 나도 배워서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히히.. "

" 야채소스 만드는건.. "

" 아니, 못했어..   집에서 하기도 그렇고, 가게서 하는건 더 어렵잖어.. "

" 니가 공부를 잘해서 니 앞길을 갈수도 있겠지만, 먼저번에 얘기한 것처럼 그 쪽으로 갈지도 모르니까 한번 해 보라고

한거야..  넓은 집으로 이사가면 아빠랑 같이 해보자. "

" 옆에서 가르쳐 주면 더 쉽지.. "

 

어찌 될지는 몰라도 소영이의 앞길까지 챙겨주고 싶은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어릴때부터 어른들의 눈치만 보고

커 왔을 소영이가, 뚜렸한 목표를 정하고 의욕을 갖게끔 해주고 싶다.

소영이가 맘에 들어하는 침대를 골라 이사날짜에 맞춰 배달까지 부탁하고는 당구장으로 향했다.     

자주  놀아줘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한집에서 산다는게 결정이 되질 않아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조금이나마 시간이 있을때 같이 어울려 주려고 한다.      다행히 소영이가 밝아 보여서 마음만은 개운하다.

" 어서오세요, 형님.   안 그래도 언제쯤 오실까 했는데.. "

" 그래, 여전히 장사는 잘 되지..   오늘은 너랑 술 마시러 온게 아니고 우리 막내 딸하고 당구치러 온거야, 먼저번에는

게임비도 받지 않았다면서.. "

" 그거야 당연하죠, 제 조카나 마찬가진데 게임비를 받으면 되나요.. "

" 무슨 소리야, 게임비는 받아야지, 그런식으로 잘 보일려고 하지 말고 돈이나 많이 벌어.. 게임비는 내가 올때마다 주마,

그리고 제수씨 좀 나오라고 해라..   내가 부탁할게 있어. "

'이차선 다리'에 여자를 충원해야지 싶다.      아무래도 장사가 잘 되려면 사람이 북적어야 된다.      반반한 여자가

있으면 소문도 빠르게 퍼질테고, 그래야 매상이 오르지 싶은 것이다.

제수씨가 여자들을 데리고 장사를 해 본 경험이 있는지라, 쓸만한 사람을 소개 받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구장에서 볼일을 끝내고 소영이와 헤어져 '이차선 다리'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8 시다.

술들을 마시고 기분을 내러 오는 2차 집의 성격을 띤 가게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할수 있는데도 홀에는 테이블

두개에 손님들이 있고, 작게 꾸며 논 룸에는 친구 민식이가 수정이와 미진이랑 양주를 마시고 있다.

" 오빠 ~ 왜 이제서야 오냐, 민식이 오빠는 벌써 왔는데.. "

그저 장사는 뒷전이고 노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수정이다.      홀에서는 수봉이 혼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명색이 사장이라는 여자는 아는 손님과 술 마시며 딴짓을 하는중이다.

" 니들은 장사를 하는거냐, 아니면 여기에 놀러 온거냐..   홀에서는 수봉이 혼자서 테이블 두개를 맡아 정신이 없는데,

니들은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을래.. "

" 민식이 오빠가 양주를 큰걸로 팔아 주니까 손님은 손님이잖어.. " 

" 얘는 손님이 아냐, 여기 도와주러 온 친구지.. 그런식으로 장사 할거면 차라리 문 닫어, 그리고 너도 술 팔아준다면서

이 여자들 붙잡고 장사 방해할려면 여기 오지 말어..  아 ~ 빨리 안나가.. "     

큰소리가 나서야 입을 삐죽이며 수정이가 나가고, 미진이도 무슨 할말이 있는듯 미적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 적당히 해라, 나까지 무안하게 왜 그러냐? "

" 모르는 소리 하지마, 여기 장사 망치면 쟤한테 코가 꿰일지 몰라.. "

" 너한테 목 매어서 그러는데 그냥 받아주지 그러냐, 듣기로는 한 재산 있다던데.. "

있는 재산을 쓰면서 살아가는 걱정이 없는 녀석이다.     사업을 한답시고 마누라 몰래 여자들이나 후리는 재미로 사는

놈이라 생각하는 자체가 나랑은 많이 틀린다.

둘이서 앉아 있는데 수봉이가 들어선다.      혼자 홀을 맡아 정신없이 일하다 수정이와 미진이가 돕자, 움직일수 있는

짬이 생긴 것이다.

" 저기 ~ '아지트' 언니가 사장님 뵈면 한번 들리시라구.. "        

" 이리 잠깐 앉아 봐. "          

수정이가 하는 행실로 볼때, 수봉이가 어떤 불만을 갖기 전에 단도리를 해야 했다.

" 혼자서 꾸려 갈려면 힘들거야, 먼저도 얘기 했지만 장사라곤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니까 니가 많이 도와줘야 돼.. 

다른 곳에도 사람을 부탁해 놨으니까 조금만 참아, 수봉이가 고생을 하는건 내가 아니까.. "

" 괜찮어요, 내가 원래 성격이 좋으니까.호호.. "

나이는 어려도 궂은걸 많이 겪어본 덕에 붙임성이 있는지라 그나마 다행이다.

" 그래도 니가 있어서 이만큼이나 견디는 거야, 너 없으면 어찌 했을지 모르겠다. "

" 알았어요, 나중에 월급이나 많이 챙겨 주세요. "        

안심 하라면서 제 할일을 하기 위해 룸을 나선다.       일단, 한시름 놓게끔 시간은 벌었지 싶다.      

아무리 사장이라지만 종업원에게 멋대로 무시하는 인상을 주게 되면 뒤도 안보고 가버리는게 이곳의 생리다.      

어떤 틈새가 벌어지기 전에 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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