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사냥

남자사냥 41

바라쿠다 2012. 2. 15. 11:31

" 그쪽 어머니는 뭐라고 하셔.. "

큰 언니인 정희가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미진이 주변 사람들의 의중을 묻고, 나머지 멤버들은 아직도 놀란 표정들이다.

" 쓸쓸하게 살아오셨나 봐, 그 분도 애기를 낳아주면 고맙겠다고.. 나랑 손잡고 시장도 같이 가보고 싶다면서, 무척이나

살갑게 맞아 주셨어. "

" 그럼, 그렇게까지 고민을 할 일도 아니네.. 니가 그렇게 결심을 했다면 영호씨를 따라 가야지. "

" 지연이가.. 그 사람한테 과외를 받았는데, 아마 그 사람을 남자로 봤나 봐..  그 사람이 지연이를 설득한다고, 둘이 만나

얘기까지 했는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답이 없는거야..    지연이가 자기를 엄마의 남자로 인정을 해 줄때까지, 우리 둘이

만나는걸 자제하자고 해서 이틀동안이나 못봤어. "

" 그러니까 그 친구를 못 본다고 지금 이렇게 죽을상을 하고 있다는 거잖어..    얘가, 얘가..   아무리 빠져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빠져도 되는거야.. "            

어느정도 사태를 파악한 성미가 그까짓 일로 얼굴까지 수척해 지냐고 나무라는 투다.

" 지연이가 반대를 할까봐 그러는 거지, 그 사람이 보고싶긴 해도 참을수 있지만.. "

" 언니 ~ 너무한다.    걔가 어떤 앤데 끝까지 반대를 하겠수, 지연이가 지 엄마를 얼마나 끔찍이 챙기는데..   언니가

형부를 만나지 못하니까 별 걱정을 다하네..    그나저나 나이어린 형부가 멋쟁이네, 언니가 지연이 땜에 힘들어 한다고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했다니.호호..  나이가 어려도 남잔 남자네.. "

모든 의문을 풀었다는 듯 깔깔거리는 소연이다.       다른 멤버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 정말 그럴까, 정말 지연이가 내 편을 들어줄까.. "

" 당연하지, 이 년아..   이년이 이제보니 순 흉악한 년이네..   복이 많아서 열살이나 어린 총각한테 시집을 가게 됐으면

고마워 해야지, 고민거리 같지도 않는걸 가지고 야단법석을 떨어대는지 모르겠네..   더군다나 그 남자는 그런 너를

살뜰히 보살피잖어..   에고 ~ 완전히 한쌍의 바퀴벌레로구만..  배 아퍼서 도저히 안되겠다. "

한참을 떠들던 성미가 소주잔을 들어 원샷으로 넘기더니 자신을 째려본다.

" 그만 해, 이년아.  약해 빠지기는..   지연이가 착하니까 지 엄마 소원을 들어주겠지만, 설사 반대를 한들 어쩔건데..

그냥 너희 친정으로 보내 버리면 되지, 더군다나 너희 둘은 지금이 신혼이나 마찬가지잖어. "

 

" 무슨 술을 대낮부터 마셨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

승우의 벤츠에 앉아 조수석을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는 연주다.

" 어디로 데려다 줘, 쉬고 싶어. "

멤버들과 헤어진 연주가 승우를 불러냈다.       자신의 고민을 이해 해 주는 사람이 없어 기분이 우울한 것이다.

올림픽 대로를 따라 시원스럽게 달리는 중에도 연주는 눈을 뜨지 않았다.

미사리를 지나 모텔이 밀집한 곳에 이르러, 구석진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가 멈추고서야 눈을 뜬다.

" 벌써 다 온거야..   빨리 올라가자, 금방 들어가야 돼. "

보통때보다 서두는 연주를 지그시 바라보던 승우가 차에서 내려서는, 차 앞을 돌아 조수석의 문을 열고 연주의 손을

잡아 이끈다.

" 나, 이혼해야 할까봐.. "

모텔방에 들아가 연주의 치마를 벗기는 중인데, 머리위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들린다.

" 무슨 소리야, 갑자기..  다시는 그 놈이 너한테 해꼬지를 하지 않을텐데.. "

" 이번일로 남편이 내 눈을 마주치지도 않어, 바로 옆에 있는 내가 없다는 식이야. "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서도 천정만을 바라보고 있다.       방안 공기가 차가운데 이불을 덮을 생각조차 않는다.

" 니 남편도 너에게 잘못이 많다며..  자기 잘못은 그저 실수라고 하디, 뭘 잘했다고 너한테 덤태기를 씌우냐.. " 

연주와 만난 세월이 벌써 3년이 넘었다.     중간중간 연주에게서 들은 얘기가 많은 승우다.

" 모든게 뒤집어 졌어, 애들도 남자들이라서 그런지 날 쳐다보는 눈길이 예전같지가 않어. "

하기사 자신의 엄마가 아빠를 두고 바람을 폈다면, 딸이라면 몰라도 이해를 해주는 아들들은 없을것이다.   

" 그래도 그렇지, 지가 먼저 잘못을 했으면 너그럽게 품어주질 못하고.. 애들 앞에서는 체면을 세워 줘야지, 못난놈. "

설사 믿었던 마누라가 잘못을 했더라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갈 생각이 아니라면, 남자로서의 아량을 보여야 실수를

한 사람도 미안한 마음이 들터인데, 애들 앞에서까지 무시를 했다면 연주의 성격으로 봐서 참기가 힘들것이다.

" 몰라 ~ 빨리 안아줘.. "

몇년을 봐 온 연주지만 이토록 낙담을 하는 모습은 본적이 없다.      자신의 와이프와는 달리 통통 튀는 연주의 모습을,

살갑게 귀여워 해온 승우로서는 안쓰러운 마음 뿐이다.

그저 만나서 가끔 안을수 있는것 만으로도, 자신의 무덤덤한 인생중에 하나의 낙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승우다.

그런 연주가 잘못을 저지르긴 했어도, 한가득 짐을 짊어진 사람이 되어 세상의 고민을 혼자 안고 있는 모습은 보기가

딱한 것이다.

" 조금 생각을 해 볼테니까 너무 마음 쓰지말어. "       

연주의 젖가슴을 쥐고 머리를 묻는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지연이가 어머니한테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      

영호랑 지연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걸 기다리는 미진이에게 모친인 김여사에게서 핸폰이 왔다.

그 삼촌하고 결혼하는걸 반대하지 않겠다고 할머니를 찾아왔다 갔단다.     다만 당분간 할머니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두사람 사이에 자신이 끼여 있는게 불편하다고도 했단다.

" 어쩜 좋아, 내가 좋자고 지연이를 친정에 맡기는 꼴이 됐으니.. "

거실에 앉아있는 영호에게 모친과 통화한 내용을 설명해 주며 난감한 미진이다.

" 내가 얘기해 볼께, 내가 약속했잖어..  자기하고 지연이, 그리고 태어날 우리의 애기까지 내가 책임진다고.. "

자신 스스로도 적응이 안 될만큼 주변이 빠르게 변해가는걸 느낀다.      그 변화 한가운데 영호가 자리잡고 있다.

미진이의 몸만을 탐할때는 나이가 어린 철부지 같던 영호가 믿음직한 남자로 다가오는 것도 근래의 일이다.

안절부절 못하는 미진이를 대신해서, 감싸고 이끌어주는 영호가 신기해 보일 정도로 듬직하다.

" 삐리 ~ 릭..칙 ~ "

현관문이 열리더니 지연이가 들어선다.    애써 시선을 피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영호가 내 입술에 자신의 손가락을 붙이고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하고는, 지연이의 방문에 노크를 한다.

" 지연아 ~ 잠깐 나와볼래, 얘기 좀 하자. "

어찌할바를 모르는 미진이 자신과 달리 시원스레 지연이를 불러내는 영호의 처신만을 조심스럽게 지켜볼 뿐이다.

짧은 시간에 둘이 친해진게 이상하리만치 잘 통했던 것이다.     자신보다 생각 자체가 젊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영호를 믿기로 하고 오렌지 쥬스를 담아 거실 탁자에 내려놓고, 조금 떨어져 거실 바닥에 홀로 앉았다.

" 지연이가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난 축하를 해 줄때까지 엄마랑 결혼을 미룰거야..   엄마랑 약속했어, 지연이도

내 딸처럼 아껴주겠다고..   그래서 엄마도 나랑 결혼하는걸 결심했고, 양쪽 집에서 허락을 받았거든.. "

잠시 지연이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스치고 지나간다.     지연이의 입에서 나올 대답에 온 신경이 쓰이면서

초조해 진 미진이는 입이 바싹바싹 타 들어간다.

" 두 사람도 내가 있으면 불편하잖어, 당분간만 할머니 집에 있을께.. "

그나마 지연이가 이 정도만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있는게 기특하고 고마운 미진이다.

" 그건 안돼.. 지연이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릴거야, 너만 빼놓고 어른들만 재미나게 지낸다는건 말도 안돼..   지연이가

힘든건 알지만 엄마와 나를 위해서 양보를 해주면 안되겠니.. "

감정이 북받치는지 코끝이 빨개지는가 싶더니 눈에 눈물이 그렁대는 지연이다.

" 왜, 자기들만 생각해..   내 기분도 헤아려 줘야지, 몰라.. 맘대로 해. "

기어코 눈물을 쏟으며 영호의 말에 따르겠다는 말을 꺼낸다.     딸의 눈물을 본 미진이의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

" 고맙다, 지연아..  앞으로도 엄마한테 하는것처럼 너한테도 잘할께.. "

지연이의 어깨를 다독이는 영호가 고개를 돌려 미진이를 보며 윙크를 한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 미진이가 둘의 곁으로 다가가, 지연이를 뒤에서 껴안으며 소리없는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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