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118

바라쿠다 2019. 12. 30. 16:24
~깜깜 무소식이네.~
~미안, 좀 바빠..~
~술마실 시간도 없어?~
그리고 보니 순희를 찾은지가 두어달 됐지 싶다.
인연으로 엮이지야 않겠지만, 가끔씩 찐한 쾌감을 선사한 그녀를 모른척하기 뭐해 
한잔하기로 했다.
~뭐하는 사람이야?~
~ㅋㅋ.. 집주인.~
순희가 좋아하는 등심과 갈비살이 뿌연 연기와 함께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술자리에서 자랑스레 내민 순희의 핸폰에 재밌는 사진이 수십여장 된다.
스님처럼 머리를 삭발한, 꽤 나이 들어 보이는 화상의 기상천외한 장면이 담겨 있다.
섹스란게 원초적인 본능이고, 그에 따르는 남녀간의 교감이 섞이는건 당연하다.
발가벗겨 진 남자의 목에 개 목걸이가 채워 져 있고, 마치 주인인 양 그 줄을 나꿔잡은 
순희가 득의에 찬 미소마저 띠고 있다.
~이래도 되는거야?~
~좋아해, 노예근성이 있거덩..~
~..설마..~
~자기도 한번 해 볼래? ㅋ~ 매조자너..~
~아닌것 같애, 거기까지는..~
순희 얘기처럼 억압받으면서 묘한 짜릿함이 생기긴 했었다.
하지만 사진처럼 견공 취급까지 받는건 못할 짓이지 싶다.
그리고 보니 날 불러 낸 이유가 또 하나의 장난감을 수집하기 위함이라 짐작된다.
~숫놈들 다 거기서 거기야..~
~비슷한 보살이 있더라.~
~나랑?~
~응, 남자를 발아래 두려는..~
자신의 사주를 염려해 두어번 찾아왔던 인희가 떠 오른다.
순희와 맥락이 똑같지야 않겠지만, 남자를 디딤돌로만 여기는 그녀였다.

"여기~"
"복 받으시겠다, ㅋ~ 술고픈지 어찌 알고.."
"미인이시다.."
대봉씨도 춘천일이 바빠 현장에 있고, 무료한 시간 불러 낼 친구도 없기에 재미꺼리 
없을까 궁리중이었다.
자칭 봉거사께서 술이나 한잔하자면서 톡이 왔다.
혼자려니 했는데 처음 보는 젊은 여자와 대작중이다.
"사진 보여줘 봐."
"ㅋ~ 여기.."
느닷없이 동석한 여자가 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건넨다.
"어머~ 재밌다."
눈 앞의 여인이 나이먹은 남자를 마치 애완견 다루듯 하는 사진이 꽤 여러장이다.
과거 스폰서였던 서박사 역시 자신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시늉까지 하는 편이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숫놈을 대 놓고 개 취급하는 눈 앞의 여인이 다시 보인다.
"ㅋ~ 다섯살이나 많네, 우리 또래로 보여요."
"걍 편하게 지내자구.."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ㅋ~ 그러시던지.."
"헐~ 죽이 척척 맞네 그려.."
사실 대 놓고 저지르질 못해서 그렇지, 밝히는 숫놈 손아귀에 넣고 다루는건 일도 
아니다.
까짓 숫놈 내 맘대로 다루었으면 싶은데, 친구년들은 그런게 아니라며 배놔라 콩놔라 
참견들이다.
오랜만에 맘이 통하는 동생을 만났다.
꼴에 남자입네 거드름을 피우지만, 맘에 있는 여자와 단 둘만의 공간에 있게 되면
이 보다 더한 짓도 서슴치 않는게 발정난 숫놈들이다.
순희만 하더라도 남들 눈이 의식되기에 아무도 없는 눈밭에 가, 숫놈을 깔아 뭉개는 
우월감을 느끼고자 했을 것이다.
"언니는 장난감없어?"
"ㅋ~ 나도 한마리 키워."
남녀관계가 동등하다고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저자세가 
됨도 불사하는 숫놈이라면,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 
서박사나 선미의 전남편도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위인들이다.
"ㅋ~ 보고싶다, 언니 장난감.."
"ㅋ~ 같이 볼까.."
가운데 다리가 하나 더 있노라며 우쭐대는 숫놈이지만, 욕정을 풀기 위해서는 암컷이 
있어야 한다.
제깟것들이 씨 뿌리는 우월성을 내 세우지만, 그걸 품어주는 밭이 있기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법이다.
어떤 놈이 꼬리를 더 잘 흔드는지 견주어 봄도 재밌지 싶다.

"그럴 공간이 없어, 모텔갈수도 없고.."
"별장어때, 내 장난감 별장있다던데.."
성향이 비슷하지 싶어 만나게 해 줬더니, 물만난 고기들이다.
의기가 투합돼 둘이 마신 주량이 꽤 많다.
좋아서 만나는 남녀 사이에 섹스말고도 애뜻한 감정이 실려야 함은 천륜이다.
상대가 아플땐 걱정이 돼야 하고, 고민이 있어 뵈면 안타까워야 한다.
그게 기본적인 순리이고, 좋아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임을 모른척 해선 안 된다.
"못 말릴 화상들일세.."
"ㅋ~ 거사님도 같이 가지, 재밌을텐데.."
"그래요, 이런 구경 언제 하겠어.."
"먼저 일어날께, 스케줄이나 잘 짜시게들.."
세상이 어찌 바뀌었는지 애뜻해야 할 남녀사이가 주도권 다툼을 겨루는 철부지들이 
많다 들었다.
사랑을 받는게 아니라 뺏으려 한다.
상종해야 할 인간과 그렇지 못한 버러지들이 뒤섞였다.
기본적인 예우를 해야 함에도, 자신에게 빠져 있는 귀한 인연을 부리려 든다.
하늘이 무섭지 않은 대표적인 망나니의 표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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