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107

바라쿠다 2019. 12. 3. 12:19
"여기~"
"짜식~ 지각이나 하고.."
"미안.. 차가 막혀서.."
"ㅋ~ 벌주부터.."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연말연시다.
곰살맞게 변하겠다는 국진이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하루 걸러 한번씩은 톡이나 통화는 했는데 일주일씩이나 소식이 없었다.
~아직도 그대로야?~
~응, 미치긋다.~
~꼴리게 만들면 되지..~
~어떻게..~
인아년이 묘수랍시고 짜 낸 계획대로 국진이를 불러 냈다.
사우나도 다녀 오고 피부샵에서 마사지까지 받았다.
올해 안에 어떻게든 예전의 다정스런 모습을 보고 싶은 희정이다.
"나이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무슨 송년회.."
"봉씨 너무 무심하다, 용호씨랑 딴판이야."
"ㅋ~ 혼날줄 알았다니까, 자고로 남자는 여자를 하늘처럼 받들어야 돼."
"언제부터 꺼꾸로 변했어.."
"나이는 어린 사람이 꽉 막혔네.. 희정이 너 힘들겠다, 사람 만들려면.."
다행스럽게 인아의 뜻대로 술 마시는 분위기가 부드럽다.
거푸 주는대로 받아 마시는 국진이도 오늘의 모임이 즐겁기는 한 모양이다.
"인아씨 그 자켓 이쁘다."
"짜식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크리스마스 선물, 용호씨가.."
"에고~ 부러워라.."
" 부럽긴.. 더 좋은거 사자구.."
"ㅋ~ 진짜?"
"속고만 살았나?"
"얘, 믿지 마.. 요즘 연락도 안 한다믄서.."
"가자, 당장.."
인아가 변죽을 울리자 국진이가 흥분한 모양이다.
술도 기분좋게 한병씩 나눠 마신 셈이고 안주도 별반 없다.
어차피 2차를 갈 생각이었으나, 국진이를 따라 나서는 게 더 재밌지 싶다.

"완죤 꽐라됐구만."
"ㅋ~ 그러게.."
"떽~ 형한테 꽐라라니.."
"신경 꺼, 용호씨.. 배 아파 저러는거야."
넷 중에 용호선배가 술이 젤 약하지 싶다.
고기집에서 1차를 했고 백화점 쇼핑후 나이트에서 양주까지 마셔 댔다.
시간이 12시가 넘어 헤어지려고 했으나 부득불 더 마시겠단다.
어찌할까 의견을 모으는 중에 동석이가 친구네 놀러 갔다는 바람에 희정이 집까지 
오게 됐다.
이 곳에 와서도 족발이며 생선회까지 배달시켜 마신 술이 꽤 많다.
크지 않은 주방식탁에 올려 진 먹거리가 풍성하다.
오랜만에 희정이를 만났기에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어쩌다 거리를 두게 된 뒤로, 다시금 예전처럼 격의없이 추근거리고 싶었으나 웬지 
서먹스러워 눈치를 보게 된다.
"ㅋ~ 역시 인아가 쵝오야~"
"어? 왜 환자를 만들어, 배 아플 이유가 뭔데.."
제 눈에 안경이라지만 인아 앞에만 서면 한층 작아지는 용호 선배다.
미모로 보면야 신림동에서 따라 올 여자가 없고, 남자 구워 삶는 기술도 뛰어 나지 싶다.
딴에는 젊은 애들 유행어를 쓰는데 혀가 꼬인다.
"우리 금슬이 좋으니까 그런거자너, 봉씨랑 희정이는 냉전중인데.."
"참 어이가 없다, 자랑할걸 해야지."
"ㅋ~ 인아 홧팅~"
"자기 술 취했어, 그만 자.. 안방 좀 쓸께."
"안방을?"
"술 깰때까지.. 어쩌냐, 이 상태로 집에 보내기도 그렇고.."
취한 선배를 부축해서 안방으로 향하는 인아의 뒤를 지켜 볼 뿐이다.
친한 친구지간에 매정하게 거절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나지 싶은 마음일게다.
"저러고 싶을까.."
"냅 둬, 용호씨 취해서 그러는건데.."
"자기 침대에서 자겠다자너.."
"..할수 없지.."
~아이~ 왜 이래~
안방의 열린 문틈으로 실랑이하는 소리가 흘러 나온다.
술이 떡이 된 인간이 인아에게 추근대지 싶다. 
"헐~"
"뭐하는 짓들이래.."
가까운 거리인지라 소근거리는 소리마저 들린다.
주객이 전도 돼 멍하니 듣고 있어야 할 들러리가 된다.
~누가 보면 어쩌려구..~
"문이나 닫던지.."
"ㅋ~ 야동 재밌짜너.."
"구경하자구?"
"입만 열면 자랑질 했거덩.. 지 년한테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 한다나.."
~살살..~
"해야지, 이리 와.."
거실을 가로 질러 안방을 향하는 희정이 뒤를 쫒는다.
반쯤 열린 안방 문틈사이로 이미 알몸이 된 둘이 엉켜 있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옷가지들이 방바닥과 침대에 널브러 져 있고, 인아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쳐 박은 선배의 뒤통수가 보인다.
~..그래.. 거기..~
생긴 모습대로 섹스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파 묻힌 선배의 양쪽 귀를 잡아 조종하듯 이리저리 방향을 틀고,
간혹 끌어 당기기도 한다.
애무에 집중해 지그시 감겨 있던 인아의 눈이 떠 지며 우리 쪽을 쳐다 본다.
~..더.. 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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