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103

바라쿠다 2019. 11. 19. 17:46
2019. 12. 01.
거실 벽에 붙은 일력지 한장을 찢으니 날자가 올해의 마지막 달임을 일깨운다.
모처럼 새벽까지 친구 녀석들과 달렸기에 오후가 돼서야 잠에서 깻다.
정갈해야만이 신빨이 스미기에 일어나는 즉시 몸을 씻는 습관이 몸에 뱃다.
워낙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는 놀새 체질이라, 그나마 영험했던 신빨은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이제 이 생활도 그만 접어야지 고민되는 요즘이다.
~띵똥~
CCTV의 알림음이 울리기에 화면을 보니 늘씬한 여인네가 계단을 오른다.
(저 년이 무슨 일로..)
몇달 전 인연을 끊자고 내친 고연숙이다.
~삐리리..~
현관 차임벨이 울려 할수없이 그녀를 맞이한다.
"..오랜만이네."
"일단 들어 와."
첫 만남에서도 지금과 같은 차림새였지 싶다.
여자의 패션이란게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는 모양이다.
늘씬함을 돋보이기 위함인지 무릎께까지 오는 치마에 하이힐 차림이다.
"어쩐 일인고.."
"..그냥.."
그 날처럼 윤기가 흐르는 얼굴이 아니라 푸석푸석한 느낌이다.
"인연 끊자고 했을텐데.."
"..한잔하고 싶어서.."
술이나 마시자고 예까지 왔을리는 없다.
그래도 한때는 애인처럼 지내며 무수히 살을 섞은 사이다.
너무 매정스럽게 구는 것도 숫놈이 할 짓은 아니다.

"2억씩이나.."
"ㅋ~ 응.."
예전 좋아하던 시절 자주 다녔던 민물 매운탕 집이다.
술의 힘을 빌어, 꺼내기 어려웠을 얘기를 담담하게 풀어 낸다.
피식 웃기는 하지만 처연한 지금의 심경을 대변하는 걸게다.
쌍둥이와 겹섹스를 겪으며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지냈단다.
하나도 갖기 어려운 연하의 애인을 셋트로 가졌으니 그 만족스러움이 오죽 했겠는가 
싶다.
뭐든 퍼 주고 싶은 마음에 2억씩이나 들여, 요즘 트랜드인 스터디 카페를 차려 줬단다.
예전처럼 술이나 퍼 마시는 주점이 아니라, 취미나 교양이 비슷한 젊은이들이 모여 
가볍게 한잔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주제를 토론하는 카페란다.
"차려 줄땐 아깝지 않았겠지."
"..그랬어."
"비슷한 또래끼리 어울리니 질투도 났을게구.."
"그건 아냐."
"아니다.." 
"너무 어리자너.. 언젠가는 풀어 줘야지 했어."
"그런데.."
"..일방적인 희생에 지쳤다고 할까.."
".........."
"얘들은 섹스에만 관심있어, 그것도 아쉬울때만.."
"그런거 아니겠어, 키우는 재미."
"안되더라구.. 제 놈들을 아끼는걸 알면 조금이나마 관심가져 주겠지 했는데.."
"사탕먹고 싶을때만 귀여움 떤다.."
"그런 셈이야, 국진씨 싫은 소리 할때가 그립더라."
옛말에 머리 검은 짐승 거두지 말라고 했다.
아끼고 싶은 마음이 생겨 애지중지하다가 결국엔 실망스러움에 봉착하는게 인간사다.
애정을 줘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돌아 오는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뿐이다.
젊은 청춘들이야 애욕만 찾을 뿐, 대접받는 걸 당연히 여겨 상대를 배려하는 인간미 
따위는 사치로 치부한다.
"자네 잘 되라고 한 소리야."
"알아, 이제야 알겠어.. 애들도 그만 봐야겠고.."
"이제부터 재밌게 살아."
"..그게 잘 안돼..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헐~"
이성적으로는 계산이 되는데 자꾸 쌍둥이들과의 섹스가 떠 올려 진단다.
그들에게서 거한 쾌락을 얻긴 하지만, 이내 참담스런 후회가 몰려 와 끊으려고 해도
몸은 쾌락을 갈구한단다.
말로만 듣던 섹스 중독에 빠진 듯 싶다.
순희의 보살핌을 받노라면 황홀한 애욕의 바다에 빠진 기분이 든다.
그 유혹이 감미로뤄 계속 찾게 된다면 나 역시 중독될수 있다.
그 중독이 이성을 마비시키면 온 몸의 정기가 빠지는 줄 알면서도 웃으면서 
죽음을 택하는게 쾌락의 무서움이다.
"나 한번 안아 줌 안될까.."
비로서 고연숙이 날 찾은 이유를 고해성사하듯 꺼낸다.
제 힘으로 유혹을 떨쳐 낼수 없으니, 날 통해 가능성을 보겠다는 얘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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