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사냥

남자사냥 35

바라쿠다 2012. 1. 31. 01:23

" 이게 도대체 무슨짓이야.. "

호텔 정문 앞에서 연주의 앞을 가로막은 성훈이가 기세도 등등하게 따지고 나온다.

" 당신이 그걸 내게 물어볼 자격이나 있을까.. "

어느정도 예상을 했던지라 성훈이의 화난 표정도 태연하게 맞받아 칠수가 있었다.

" 동창들 앞에서 네가 벌인 짓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알고 있기나 한거야.. "

" 그럼, 당연히 알고 있지..  내가 남편과 애들한테 받은 수모만큼은 될테지.. "

어차피 나쁜 결말이 난 만큼, 당당히 맞서서 눈을 마주쳐 보며 입가에 조소까지 띠는 연주다.

" 샛서방을 셋이나 두고 바람 핀 년이 감히 누구한테 대드는 거야,  너 죽고 싶어.. "

흥분한 성훈이가 금방이라도 주먹질을 할 기세다.

" 어이 ~ 형씨. 말조심하지..  너야말로 우리 누이한테 함부로 하다가는 밥숟가락 들기도 어렵게 만들어 줄테니까.. "

옆에서 지켜보던 사촌동생이 한발 앞으로 나서더니 성훈이와 맞선다.      주위에서 있던 사람들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보이자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촌동생과 눈빛을 겨루던 성훈이가 만만치 않다고 느꼈는지, 한발 뒤로 물러나는 표정을 짓더니 연주를 노려본다.

" 어디 두고보자,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

주위에 몰려드는 시선 때문인지 화를 억누르는 성훈이다.

" 억울하면 아무때나 찾아와라, 나 신림동의 짱구야. "      

사촌동생이 자신을 밝히면서까지 쐐기를 박는다.

"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지마, 다음번엔 당신 와이프와 애들한테도 설명을 해 줄테니까 기대하고 있으라구.. "

연주가 성훈이에게 일침을 가하고 돌아서자 사촌동생이 뒤를 따르고, 이를 지켜보던 구경꾼들 사이에서 초라한

패배자가 된 성훈이는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치욕스런 날로 기억이 될것이다. 

 

회사에서 퇴근한 영호는 부리나케 전철을 타고 동작역에 내렸다.

미진이가 친정집으로 오라고 핸폰으로 연락이 온 때문이다.      자신과의 일을 모친에게 얘기 했더니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단다.   

불러오는 배로 인해 더 이상 미룰수 없다고 판단한 미진이가 친정 엄마에게 의논을 한다고 했다.

동작역에 내려서 주공아파트로 들어가는 출구로 향했다.

" 어머 ~ 형부.  여긴 어쩐 일이래요.. "

아파트 사이길로 들어가 미진이가 가르쳐준 아파트 동수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아는척을 하길래 뒤를 돌아봤더니

미진이하고 같이 운동을 하는 멤버인 소연이다.

" 아, 네..  누굴 좀 만나느라고.. "

" 이상하다, 여기는 미진이 언니 친정이 있는 곳인데..  우리집 바로 앞 동이거든요.  언니네 집에 오실리는 없고.. "

" 아, 그냥.. 그러는 소연씨는 어디 가시나 봐요.. "

뭐라고 설명을 해주기가 어려워 얼버무렸다.     한쪽 마음으로는 솔직이 얘기해주고 싶은걸, 미진이가 걱정할까 봐

참기로 한 것이다.     

" 어머 ~ 우리 잘생긴 형부가 내 이름을 다 기억해 주시고,호호..  우리 애인들 만나러 가요.   혹시 언니 만나게 되면

같이 오세요..  요 앞에 있는 7080 호프집, 아시죠..  그럼 전 이만.. "

밝게 웃으며 돌아서는 소연이가 시야에서 멀어지기를 기다려,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로 걸음을 옮긴다.

 

" 반가워요, 어서와요. "

미진이를 닮은 반백의 노인이 영호를 반긴다.      염색을 하지않은 머리가 오히려 생동감이 넘친다.

" 처음 뵙겠습니다.   영호라고 합니다. "

현관을 올라서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옆에 있던 미진이가 이끄는대로 거실 쇼파에 앉았다.

" 지연이 에미한테 들은대로 성품이 착해 보이네, 이렇게 훤칠한 총각이 우리 딸이 어디가 이쁘다고 매달릴꼬.. "

잔잔한 미소를 띠고 영호를 바라보는 미진이 모친의 얼굴에도 한가득 온화함이 넘친다.

" 과일이라도 사와야 했는데 미진씨가 빨리 오라고 하는 바람에.. "

" 저런, 우리 딸의 말은 잘 들으시는 모양이구먼.호호.. 나도 그런 격식은 바라지 않아요.   그저 지연이 에미를 편케

해주는 사람이면 족하지.. "

" 엄마는.. 말을 잘 듣는게 아녜요,  황소고집이라니까..  이 나이에 애를 낳아달라고 얼마나 떼를 쓰는지 몰라요. "

" 그 나이에 아이를 갖는다는것도 축복이란다,  더더구나 네 마음 속에도 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핏줄을

안겨줘야 하는건 당연한게지.. "

미진이 모친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품은것 만으로도 한층 고무되는 영호다.

" 이해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이를 지울 생각이 없습니다. "

" 하지만 지연이가 어찌 생각할지 걱정돼 죽겠어요,  요즘엔 그 생각에 잠도 오질 않고.. "

그전부터 지연이 땜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미진이다.

" 지연이를 한번 보내거라,  그 애도 너를 닮아서 성품이 바른 아이니 별다른 일이야 있겠니.. "

" 미진씨가 어찌나 걱정이 많던지..   어머니께서 힘이 돼 주시면 좋겠습니다. "

자신의 딸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영호의 사람됨을 눈치채는 이여사다.

" 처음부터 만난 사이라면 애를 낳는게 당연하겠지만, 미진이 입장에서는 크나큰 모험일수도 있어요.  그런걸 이해

하고 감싸 주는게 남자로서 할일이고.. "

" 미진씨가 애기만 낳는다면 무슨일이라도 하겠습니다.    애를 지운다는것은 꿈속에서도 생각치 못할 일이거든요..

제 어머니도 애기를 많이 기다리시는 중이구요.. "

홀로 외롭게 살아오신 어머니도 자신의 핏줄이 미진이의 뱃속에서 자란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무턱대고 미진이가

자신의 며느리인양 좋아하셨다.     

미진이를 만나고 난 후에도 몇번씩이나 핸폰을 해서는 산모를 잘 챙겨 주라고 신신당부를 하신 분이다.

" 나도 미진이가 애기를 낳는걸 보고 싶은데, 자식이 하나밖에 없는 그분 심정이야 오죽하실까.. "

" 네, 벌써 미진씨를 며느리로 생각하시고, 임산부가 몸이라도 상할까 봐 걱정이 태산입니다. "

영호의 어머니가 미진이를 아낀다는 말에, 당사자인 미진이나 이여사까지도 흐뭇한 마음이 드는것은 인지상정일게다.

" 그렇게도 우리 딸의 안부를 챙겨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지..  언제 한번 어머니를 만나 뵙고 싶구먼. "

" 미진씨가 아이를 낳게끔만 해 주신다면 당장이라도 달려 오실겁니다. "

자신의 딸을 통해 핏줄을 원하는 영호의 간절한 말에 이여사의 마음이 녹아 내리는 중이다.      안그래도 제 남편과

이혼을 하게된 딸의 아픔을 지켜보던 이여사다.

" 나도 미진이 아버지께 의논을 드려야 할테니 조만간에 다시한번 만나세나.. "

세상 물정을 모르고 곱게만 커온 딸의 상처가 클까봐 근심이 많았는데, 저다지도 착해 보이는 총각이 그런 딸을 책임

지겠노라고 나타났으니 오히려 이여사쪽에서 고마워 해야 할 일이다.

" 어머니랑 할 얘기가 있으니 영호씨 먼저 집에 가서 기다려.. "

나중에 다시한번 만나기로 약조를 한 후에도 영호를 먼저 보내고, 친정 엄마의 속마음을 듣고 싶은 미진이다.

"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     

쇼파에서 일어난 영호가 이여사에게 인사를 하고는 현관에서 미진이에게 속삭인다.

" 요 앞에서 소연씨를 우연히 만났는데 미진씨와 같이  호프집으로 오라고 하던데.. "

" 소연이라면 이 앞에 박회장댁 며느리 아니냐.. "

둘이서 건네는 말을 들은 이여사가 아는척을 한다.

" 네, 같은 휘트니스 회원이라.. "

자신의 모친이 소연이에 대해 관심을 갖자 의아한 마음이 드는 미진이다. 

"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아닌 남자와 야밤에 고수부지에서 보기 흉한 꼴을 보였다는구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더라. "

아무리 이웃간의 왕래가 드문 세상이지만 주위의 보는 눈들은 있는것이다.     더구나 시부모와 같이 사는 소연이는

자연히 주위 사람들 눈에 띄일수 밖에 없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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