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안꼴 자알 돌아간다. 그래, 남편이 바람을 핀다고 가정이 있는 유뷰녀가 애인을 둘씩이나 만나고 다닌단 말이지. "
연주의 남편이 불륜 현장이 담긴 사진을 침대위에 던져 놓고 비아냥 거린다. 사진에는 승우와 벤츠에서 내려 모텔로
나란히 들어가는 모습과, 회집에서 술을 마시고 명수의 집으로 함께 들어 가는것이 날짜까지 찍혀있다.
그나마 성훈이가 보낸 사진이라 그의 기록만 빠진 셈이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려 봤지만 뚜렷한 방안이 없다.
"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안 그래도 시들해서 끊을 생각이야. "
남편도 젊은 여자와의 관계가 들통이 난 후, 자신에게 꼬리를 내리고 잡혀살고 있는 중이라 연주도 수긍할건 해야 했다.
그나마 남편이 하는 사업도 안정적이고 커가는 애들에게 못난꼴을 보여주는게 싫어서 참고 살기로 했던 연주다.
참고자 했지만 분한 마음이 삭혀지질 않아, 자신도 밖에서 남자를 만나면서 조금은 누그러지는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 말 한번 멋들어지게 잘하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기로 그렇게나 떳떳한지, 에잉 ~ "
완전히 남편에게 주도권을 뺏길수 밖에 없는 궁지로 몰려 버렸지 싶다. 불륜의 현장이 찍힌 사진때문에 어떻게
움치고 뛸 틈새마저 없어진 상황이다.
그것도 한 남자가 아닌 두 남자를 번갈아 만나고 다닌게 만 천하에 공개된 마당에 그저 남편이 주는 핍박을 고스란히
당해야 할 입장이다.
이제는 남편이 밖에서 무슨짓을 하던 알고도 모른척 해야 될 한심한 처지가 된 것이다.
한바탕의 곤혹을 치룬 연주는 잡다한 가구들을 몰아넣은 빈 방에서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휘트니스에 모인 사인방은 연주의 사건으로 인해 운동도 거르고 무거운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 그래도 그 정도로 끝난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어쩌겠니.. "
" 다행은 무슨.. 있는대로 창피는 다 당했는데, 더군다나 애아빠한테 말발도 안서고 오히려 눈치만 보게 생겼구만.. "
" 명근씨가 유성훈이와 주먹다짐까지 할뻔 했어, 남자 자식이 치사하게 그게 무슨 짓이냐며 동창들하고 집에다가
모두 까발린다고 하니까 그건 겁나는지 수그러 들더라구.. "
" 이대로는 분해서 못 넘어가, 어차피 창피는 있는대로 당했으니까 저도 한번 당해 봐야지. "
성훈이를 그냥 둘수 없다고 독이 오른 연주의 모습에, 어느 누구도 말릴수도 없는지라 그저 쳐다만 볼 뿐이다.
아무리 세상이 여자가 편한 세상이 됐다지만 이런 경우에 맞닥뜨리게 됐을때는, 어느 누구도 당당할수 없는게 현실이다.
나머지 멤버들도 연주 같은 경우를 당한다면 그 여파를 견디기 힘들것이다.
" 성격이 못돼서 당하고 가만히 있지 못할 위인이잖어.. "
명근이와 악다구니를 써가며 싸우던 성훈이를 겪어본 소연이가 미리부터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 내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을까.. 더 이상 망가질 체면도 없는 나야. 번거롭겠지만 소연이가 명근씨와 갑용씨랑
다리를 놔 줬으면 좋겠다. 지가 저지른 짓이 당한 사람한테는 얼마나 피해가 가는지를 보여줄거야. "
아주 작정을 한듯이, 뒤에 일어날 어떤 사태도 감수하겠다는 연주의 결심을 모른척 할수도 없는 일이다.
" 어서와요, 영호 말대로 참하게 생긴 분이네.. "
남들이 부도덕한 여자라고 자신을 매도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데 미룰수가 없었다.
안양에서 작은 한복집을 꾸려나가는 영호의 어머니를 홀로 찾아온 미진이다. 영호가 알려준대로 찾기가 수월했다.
전철역에서 내려 번화가쪽으로 길을 건너 백여미터쯤 가다가 보이는 소박한 한복집을 찾을수가 있었다.
" 이렇게 찾아 뵙게 되어 송구합니다. "
열살이나 많은 유부녀로서 그게 잘못된 길인줄을 알면서도, 이 상황이 되도록 만든것이 모든게 자신의 잘못으로만
느껴져 죄인처럼 얼굴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 날씨도 쌀쌀한데 찾느라고 힘들었으면 어쩌누.. 자, 이쪽으로 올라와요. "
출입구 안쪽에서 어쩔줄을 모르는, 미진이의 손을 잡아 자신쪽으로 잡아 끄는데 유난히 손길이 애뜻한 느낌이다.
가게 중앙에 방을 만들어 한복원단과 재봉틀등이 올려져 있고, 방바닥에 보일러가 들어오는지 따뜻하다.
" 딸아이 수학을 가르키는데 엄마를 닮아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영호가 말하대요. "
부드럽게 얘기를 하지만 언감생심 과년한 딸까지 둔 유부녀가 자신의 일점혈육인 영호를 탐내냐는 말로 들린다.
" 그저 면목이 없습니다. 영호씨를 제 갈길로 보내줘야 하는데, 어찌 임신한걸 알게 되고는 저렇게 애기를 낳으라고
고집을 부리네요. "
" 저런, 미진씨라고 했던가.. 내 얘기를 오해를 했나보네, 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니까 겁먹지 말아요. "
그제서야 영호 어머니의 얼굴을 대면할수 있었다. 이렇게 편안한 얼굴도 있을수 있구나 할만큼,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 온화한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영호를 닮아있다.
" 입이 열개라도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젊은 영호씨를 붙잡고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
"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호호.. 나는 우리 영호가 좋아하는 사람이 보고 싶었을 뿐이야, 미진씨가 오해를 하니까
내가 더 몸둘바를 모르겠네.. 미진씨를 불편케 했다고 영호에게 야단 맞기전에, 내 얘기부터 해야 할까봐.. "
천애고아로 홀로 살아온 그녀가 여고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영호의 아버지를 만났더란다. 안되는줄
알면서도 유부남이던 영호 아버지에게 처녀를 줬다고 한다.
첫정을 준 남자가 본 부인과 이혼을 하겠다는 말만을 믿고, 이년여를 두집 살림을 하는 그 사람과의 장미빛 인생을
꿈꿀만큼 철없는 나이에 영호를 낳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바램도 본부인과 그 형제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쳐 한바탕 난리가 나고서야 잘못된걸 뉘우쳤고,
결국 영호까지 뺏기고 그 남자와 다시는 만나지 말라는 협박을 듣고서야 모든게 끝이 나 버린걸 알았단다.
한가닥 희망을 걸었던 남자의 사랑도 한낱 지나가는 바람인걸 알고서는 죽음까지 생각을 했더란다.
몇년의 세월을 여린 여자의 몸으로 홀로 삭이며 살아가다가, 어찌하다 보니 또 다른 인연이 생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림을 차렸지만, 그 남자 역시 소문난 난봉꾼임을 알게 되고선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단다.
고교시절 은사의 소개로 역시 홀로 사는 한복의 명인을 만나 지금까지 살아온 영호 어머니는, 시간이 날때마다
먼 발치에서 커가는 영호를 몰래 보고 오는걸 유일한 낙으로 알고 살아 왔단다.
어느날 대학에 다니던 영호가 술에 만취되어 엉망이 된걸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 그의 하숙집에 데려다 주고는, 그
다음날 친엄마란걸 밝히고 출생의 비밀을 알려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어머니가 남자에게 버림 받은걸 안 영호는 변변한 연애한번 하지를 못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영호가 자신을 찾아와서는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나이도 많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까지 있으며 지금의
남편과는 이혼 수속중이라는 말까지 전부 전해 듣고는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 난 그런데.. 우리 영호가 평생을 보듬고 살 여자라면 조건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서로가 진심으로 아껴만 준다면
지나간 과거는 무에 문제가 되겠어. "
한 맺힌 인생을 살아온 여자로서, 조건보다는 서로간의 사랑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재삼 강조를 한다.
영호를 21살에 낳았으니 올해로 52살이다. 영호와 미진이가 10살의 차이가 나듯이 그녀도 미진이와 10살 터울인
것이다. 멤버인 정희 언니와도 별반 차이가 없는 큰 언니 뻘이다.
" 어쩌다 보니 영호씨에게 빠져 버렸지만 어머니 말씀대로 좋게만 생각할수 없는게 제 입장이예요. 영호씨와 같이
있는게 마냥 좋으면서도 제 집에서나 딸아이가 어찌 볼지 두렵기도 하고요. "
" 그건 두사람이 겪어야 할 숙제 아니겠어, 서로가 좋아하는만큼 그에 따른 어려움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지. "
" 영호씨가 어머니를 닮았어요, 상대를 아끼고 배려하는게 어머니와 똑같애요. "
" 내게 남은 욕심이 있다면 며느리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찬거리도 사고 싶고, 같이 음악회라도 가고 싶은데..
우리 미진씨가 귀찮아하면 어쩌지, 호호.. "
어쩌면 영호도 자신의 어머니처럼 외로움이 몸속 깊은곳에 자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자신이 입던 냄새나는 팬티를 욕심내던 사람이다. 이제서야 조금씩 그런 영호가 이해가 된다.
과연 영호의 외로움을 보듬어 안아 주면서, 남은 여생을 그와 같이 살아가는 행복을 누릴수 있을지 생각을 해본다.
" 어머니가 귀찮아만 하지 않으신다면 자주 오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