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건달

마지막 건달 9

바라쿠다 2018. 12. 30. 21:15
"미숙씨랑 은주 타임노래방~"
"우쒸~ 쉬고 싶은데.."
"안돼, 지명이야.."
은주가 앙탈부릴만큼 새벽 4시가 넘었다.
이맘때면 마음맞는 동료들과 한잔씩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리는 시간인 것이다.

"또라이들 아냐.."
"그러게.. 한시간만 버티자구.."
"끝내고 한잔하자 언니.."
"그러자.."
실장의 봉고차에서 내려 노래방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사장님 안뇽~"
"어서 와, 3번 방이야.."
"누군데 우릴 찾아요?"
"몰라, 한번 왔었겠지.."
지명이라 함은 예전에 만났었다는 얘기다.
술이 취해 찝적거리는 진상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미숙씨 여기.."
3번 방으로 들어서자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담배연기가 자욱하다.
안쪽에서 손을 들어 아는척하는 손님은 낯이 익는 얼굴이다. 
"한잔해, 담배도 피고.."
"오랜만이네요.."
아는척 한 손님옆이 내 자리라 여겨 그 곁에 앉고, 은주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것으로 짐작되는 패딩이 놓인 쇼파에 엉덩이를 걸친다.
테이블에는 캔맥주와 소주로 짐작가는 프라스틱 병, 간단한 마른 안주까지 있다.
"나도 하나 줘.."
~빰빠라 빰빠라 빵빠방~
손님이 건네주는 담배를 은주와 한모금씩 연기를 뿜는데 노래 끝을 알리는 음이 
울린다.
"이쁜이들 오셨는가.."
"ㅋ~ 보는 눈은 있네.."
술 따르는 파트너의 손등에 사마귀가 있는걸 보고는 기억이 살아난다.
몇달전인가 함께 몸을 섞은 적이 있는 그 사람이다.
나이는 60가까이 됐지 싶은데, 하필 돈이 궁할때라 모텔까지 따라 갔다.
듣기로는 건설현장에서 일 한다며 자랑할 건덕지도 없는 얘기를 했지 싶다.
한번 몸을 줬다고 우습게 여기지 싶어 착잡함이 밀려 온다.
"보고 싶더라구.."
"나도 그래쪄~"
술마시고 번갈아 마이크를 잡는 중간에 간간이 말을 건네 온다.
상대하고픈 마음이야 당연히 없지만 손님 기분을 상하게 할순 없다.

"같이 있고 싶어 왔어.."
"미안해요, 집에 일이 있어서.."
노래방 사마귀의 들이댐을 애써 뿌리쳤다.
아무리 함부로 내돌린 몸뚱아리지만 귀찮기만 하다.
복잡한 세상살이 부대끼며 산다는 자체가 버겁다.
"언니 몸 사리네.."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친 뒤 은주랑 술을 마셔도 맹숭맹숭하기만 하다.
전남편 인수가 다녀간 뒤로 자꾸만 민아가 떠 오른다.
핏덩어리인 딸을 버리다시피 시댁에 두고 와서도 가끔씩 못견디게 보고 싶었다.
이제는 마음의 짐을 벗은듯 잊혀졌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만 가자, 졸리네.."
독하게 마음먹고 버린 딸아이의 얼굴이 자꾸 떠 오른다.

매서운 초겨울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날이 밝아 여명이 흑석동 산기슭을 널리 비춘다.
예전 아이를 두고 나올때의 그 집 그대로다.
낡아빠진 연립에서 하나둘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나오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이더니 귀여운 초등학생이 나타난다.
(당신닮아 이뻐..)
전남편의 말마따나 내 어릴적 사진과 흡사한 아이가 현관을 나선다.
누가 봐도 핏줄인걸 의심치 못할만큼 닮은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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