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44

바라쿠다 2016. 12. 29. 01:35

" 늦었네. "

" 응, 애는.. "

도사님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길었지 싶다.

오랜만에 남자와 데이트 하는지라 집 생각은 잠시 접기로 했다.

다행히 엄마가 있어 그런 시간이나마 낼수 있다.

" 저 방에서 자, 밥 먹어야지. "

" 아냐, 나가봐야 돼. "

조금후면 시술소로 나가야 할 시간이기에 옷이나 갈아 입으러 들어 온 것이다.

" 니가 고생이다. "

" 고생은..  엄마가 힘들지. "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남편이 차도를 보이기에 한결 맘이 가벼운 순희다.

도사님 얘기를 듣고 긴가민가 했지만 저렴한 20만원만 내라고 했기에 속는 셈치고 따랐다.

운이 좋았는지 신력이 쎈 도사님을 만나 애아빠가 차도를 보였다.

듣기로는 수십배의 경비가 있어야 위령제나마 할수 있다는 얘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모든 시름을 잊게해 준 도사님이 고마워 작은 보답이나마 하고자 했던 것이다.

" 애아빠는.. "

" 좋아, 재활 잘 된대. "

" 얼렁 일어나야 할낀데.. "

" 그리 된대요. 걱정하지 마. "

" 에구, 무슨 놈의 팔짜가.. "

" 엄마는 참.. "

어려서부터 굴곡많은 생활이 이어 졌다.

큰 욕심이야 내 본적 없다 생각하지만 뜻과는 달리 인생은 꼬이기만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놓치는 않았기로 주어진 운명대로 열심히 살아 왔다.

하지만 새로이 만난 지아비가 사경을 헤맸고, 그 이유가 두고 온 아이의 죽음과 연결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세상을

살아갈 의욕마저 잃었다.

그러던 차에 도사님과 인연이 되어 숨통이 트이게 됐다.

여느 남자와 달리 온정을 베풀어 준 그가 구세주인 양 보인다.

그를 위해 작은 기쁨이나마 주게 되어 기쁘기까지 하다.

 

" 꼭꼭 씹어 먹어. "

" 우리가 애들인가, 엄마는.. "

" 그러게. "

애들이 일찍 집에 들어왔기에 저녁이나마 차려주게 되어 흐뭇한 희정이다.

마냥 집에서 쉴 형편이 못되는지라 오늘부터는 식당에 나가려 한다.

국진이야 식당을 차리라고 하지만 그에게 기댄다는 것도 양심이 허락치 않는다.

" 친구 안만나? "

" 친구? "

" 응, 그 삼촌. "

" ..왜. "

다행히 큰 녀석에게 나쁜 인상은 주지 않았지 싶다.

애들이 다 큰지라 혼자가 된 지금 몸가짐마저 조심스럽다.

" 쉴때 그 삼촌하고 술이나 마셔. "

" 얘는~ 그 삼촌이 한가한 사람이냐. "

" 엄마를 좋아하는것 같든데.. "

" 그래도 그러면 안돼, 그 사람은 총각이구.. "

인아 역시 국진이를 새로운 인연으로 생각하라며 부추겼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로 언감생심 그런 욕심까지 부릴수는 없다.

애들이 커 스스로 살아갈때까지는 뒷받침 돼 주어야 한다.

" 우리들 땜에 안된다는거야? "

" 누가 그렇대, 서로 비슷해야지. "

" 뭐가 그렇게 복잡해, 좋아하는 맘만 있으면 되지, 그치 형? "

" 꼬맹이들이 뭘 안다고, 니들 앞가림이나 해. "

웬수같은 남편이었지만 죽은지 불과 며칠만에 그런 말조차 입에 담는건 경우가 아니라고 본다.

세상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기에 지켜야 되는 도리는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 애 아빠는 뭐해. "

" 노가다, 지방 다녀. "

회사일이 일찍 끝났기에 인아를 불러 내 매운 갈비찜을 안주삼아 한잔 하는중이다.

" 힘들겠다. "

" 힘들긴, 쥐꼬리만큼 가져 오는데.. "

세번째 만남이지만 서로의 가정이나 사생활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국진이 소개로 몇번 만나다 보니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원나잇으로 즐기고 헤어지면야 별로 알고 싶지도 않겠지만 아무래도 자주 보게 되리란 예감이다.

늘씬한데다가 눈에 띄는 미모인지라 주변 테이블에서 힐끗거린다.

" 딸은 몇살이야.

" 21.. 그년 땜에 내가 미쳐. "

더군다나 만날수록 자꾸 새록새록 정이 간다.

와이프와 잠자리마저 시큰둥해서 그런지 착착 감기는 인아가 자꾸 생각이 난다.

" 후후.. 딸 하나라며.. "

" 완전 골통이라니까, 그 나이에 취직할 생각도 없나 봐. "

" 너 닮았나 보지,킥~ "

" 칵~ 까분다.   하긴.. 나도 그 나이때 신나게 놀았지. "

워낙 남자의 시선을 끌만큼 시원스레 생겼으니 주위에서 그냥 놔 두지는 않았으리라.

" 취직하려나, 딸. "

" 좋은자리 있어? "

" 큰데는 아니구, 우리 사무실.. "

" 월급은.. "

어차피 일손이 딸려 여직원 하나를 더 충원해야 한다.

힘든 일이야 없고 은행 심부름이나 거래처와의 입출금만 확인하면 되는지라 별 어려움은 없다.

인아와의 인연이 언제까지 갈지는 몰라도 나쁘게 헤어지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 오늘 들어갈거야?

" 글쎄.. "

" 자자 같이..  거기 가서 얘기하구.. "

여고시절 동창들과 2박3일씩이나 와이프가 제주도로 놀러갔기에, 본의 아니게 싱글이 된 이런 기회를 놓치긴 싫다.

'잔생(殘生)'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생 46  (0) 2016.12.29
잔생 45  (0) 2016.12.29
잔생 43  (0) 2016.12.28
잔생 42  (0) 2016.12.28
잔생 41  (0) 2016.12.28